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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그린벨트에서 야만의 우상 DMZ를 본다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1989년 이전 유럽 동서 냉전의 유산이었던 '철의 장막'이 '유럽 그린벨트'로 거듭나고 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북쪽의 발트해부터 남쪽의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중국 만리장성의 두 배쯤 되는 1만2500㎞에 걸쳐 있다. 유럽 24개국 관계자들은 독일 튀링겐주 아이제나흐시에서 이달 15일부터 19일까지 제10차 유럽 그린벨트대회를 연다. 이번 행사는 독일 중부의 튀링겐주 환경부가 행사비용을 후원하고 아이제나흐시가 장소와 시설을 제공했다. 주 환경부장관이 직접 발표와 토론에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한국 국민신탁 관계자들과도 대담을 가졌다. 행사 장소인 아이제나흐시 바르트부르크성은 16세기 종교개혁 때 마틴 루터가 교황의 감시를 피해 숨어 지내며 신약성서를 번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독일은 과거 동독과 서독 사이의 장벽을 독일 그린벨트로 복원하기 위해 2010년 자연환경보전법을 개정하고 '국가자연유산' 제도를 마련했다. 튀링겐주가 제일 열성적이다. 국가자연유산은 이름만 보면 흡사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제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이 '점(點) 개념'이라면, 국가자연유산은 '면(面) 개념'이다.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을 하나로 모아 국내판으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에는 이미 여러 곳이 국가자연유산들로 지정됐다. 하지만 독일 연방환경부는 이 제도가 아직 완전히 정착된 게 아니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면서 올해 말 쯤 중간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방환경부 관계자들이 조심스러워하는 것과 달리 주 환경부는 제도 정착에 자신감을 보인다. 국립공원만으로는 그린벨트를 보호구역으로 만들기에 한계가 있어서다. 대회 중에 특별히 주목을 받았던 행사는 동독 출신의 마리오 골드슈타인이 선보였던 멀티비전 쇼 '죽음의 띠에서 생명선으로'였다. 그는 자유를 찾아 철의 장막을 넘었다가 두 차례나 투옥된 이력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었다. 쇼는 철의 장막 저편에서 고초를 겪다가 탈출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까지 곁들여,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함을 더했다.유럽 그린벨트대회와 멀티비전 쇼를 통해 나타난 오늘날의 그린벨트를 보고 있자면 "저런 하찮은 인위적인 장막 뒤에 엄청난 동서 냉전이 도사렸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넘기 위해 목숨을 걸었나 보다"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허물어진 후에는 '그저 그런 것'이 허물어지기 이전에는 그렇게 맹위를 떨쳤나 보다. 냉전시대의 정치가들과 군인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어쩌면 현세의 모든 인류가 철의 장막이라는 허상에 단단히 속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분명 과거 철의 장막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처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왕래를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자유와 권리까지도 억압하였던 폭력의 우상이었다. 유럽 그린벨트의 잔영 위에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가 오버랩된다. 군사 정전협정(1953년) 당사국들은 "군사분계선에서의 무력충돌을 방지한다"면서 DMZ를 설치했지만, 이로 인해 남북 왕래가 끊어졌고 결과적으로 분단은 고착화됐다. DMZ는 평화를 내걸었지만 오히려 평화를 쫓아냈던 야만의 우상이 됐다. 빅 브라더들은 그 뒤에서 자기들만의 셈법에 따라 남과 북의 사람들을 이용했다. 남북 교류협력 또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지나온 과정을 재해석한다면, DMZ는 남북이 필요로 했던 게 아니라 이를 설정했던 열강들의 필요였을 뿐이다. 식민지도 아닌 독립국가에서 국제연합(UN)과 강대국들의 허락 없이는 DMZ를 넘을 수도 없었고 그 주변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도모할 수 없다면, DMZ는 '원형이정'의 섭리에 따라 초극되어야 할 허상이다.냉전시대 철의 장막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유럽 그린벨트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DMZ도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무너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최초의 폭력이 노예를 만들었고 그 노예의 비굴함이 폭력을 영속화시켰다"고 말했다. 야만과 미개의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지상 최후의 우상이 국제법의 보호 아래 한반도에 버젓이 버티고 있다.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유물이다. 아직 DMZ에는 어둠이 짙지만, 오늘의 유럽 그린벨트에서 DMZ의 내일을 본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철강사 담합과 공정위의 '무도리'지난 2009년 4월.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 게임 대회 도중 관객과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컴퓨터에 이상이 발생해 경기 중단을 요청한 선수가 몰수패를 당한 것이다. 중단을 요청하려면 게임 채팅창에 'ppp'라고 쳐야 하는데, 'pp'만 입력했기 때문에 규정 위반에 따른 실격이라는 이유였다. 1초의 실수로 승패가 엇갈리는 게임 특성상 경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 선수가 pp를 친 건 누가 봐도 다급하게 중단을 요청하는 신호였기에, 규정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해서 내린 이 판정은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했고 현재도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이 공유되며 마니아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황세준 기자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맞게 해석해서 적용해야 할 필요도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철강사 담합사건 제재도 비슷한 맥락에서 철강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9일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대한제강, 환영철강, 와이케이스틸 등 6곳이 철근 판매가격 할인폭을 축소키로 합의했다며 총 11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철강사들이 공정위의 '의결서'를 받으면 제재 효력이 발생한다. 각 사는 의결서를 받는대로 행정소송 제기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행정소송이 진행되면 고등법원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사법부가 '행정존중'과 '법해석' 중 어디에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철강사들의 희비는 엇갈릴 전망이다. 공정위는 철강사 영업팀장들이 서울 마포구 식당과 카페에 모이거나 전화통화를 한 점을 담합의 결정적 증거로 판단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의 유형' 중 하나인 '가격의 결정·유지·변경, 가격인상, 인하, 유지하는 행위를 할 것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합의하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는다'는 담합 제재의 목적 측면에서 보면 맥락을 고려해 법을 해석치 않고 곧이곧대로 적용한 제제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철근 소비자는 건설사와 유통업체, 판매자는 철강사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할인폭을 조정하는 것은 시장가격 폭락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의 권고로 채택한 가격결정 방식이다. 건설사 측 실무자와 철근 제조사 측 실무자들이 대표로 만나는 '철근가격협의체'를 통해 분기 단위로 가격을 정하면 유통 시세에도 반영되는 구조다. 자연스레 협상 테이블에서 건설사들과 철강사들의 제시 가격이 공유될 수밖에 없다. 협의체 가동으로 철강사들이 이득을 본 것도 아니다. '갑'의 위치에 있는 건설사의 할인 요구에 고철 등 원재료값 인상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더욱이 공정위 발표를 보면 기업별 철근가격 할인폭은 같지 않다. 국내 업체들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중국산 등 수입재가 유입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담합을 통한 가격 유지는 어렵다는 게 철강업계의 설명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28일 공정위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입법예고안에 대한 건의문에 '정보교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을 포함한 것은 그간 공정위의 제재가 무도리('유도리'의 반대의미로 속어)하게 이뤄졌다는 방증이 아닌지 고민해 볼 대목이다. 황세준 산업1부 중공업팀장 hsj121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