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2.09 (금요일)

'보수 아이콘' 김기춘 실장의 말로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7일 최순실 국정조사 2차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멀게는 자그만치 유신시대부터 불과 엊그제까지 보수 또는 수구세력의 히어로이자 아이콘이라 불렸던 이가 무능력자 흉내를 내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동정을 구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전반부 '왕실장'으로 불리며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누구인가? 지난 1964 검사로 임관해 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뒤 2년 뒤인 74년 30대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했다. 이어 81년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22대 검찰총장을 지냈고, 92~92년엔 법무장관까지 지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력을 가진 거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숱한 공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음습한 중정시절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지난 1991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부산 초원복국 사건 등에서 주역으로서 유감 없이 역량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15, 16, 17대 총선에서 내리 3선을 하면서 국회 법사위원장을 역임하며 보수정치세력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그가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할 당시 보여준 단호함 또는 표독스러움을 기억하며 아직도 치를 떠는 이들이 많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그야말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다. '기춘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리며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청문회 내내 거론됐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만 봐도, 그가 얼마나 종횡무진으로 권력을 휘둘렀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공작능력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를 넘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야권 인사 고소·고발 등 사법·입법부를 가리지 않았고, 언론길들이기, 민간기업 인사까지 마수를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아온 인생이 이러하다면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그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됐다. 대통령도 제대로 못만나고, 문고리3인방에 차단돼 보고도 제대로 못받으면서 무능하게 자리가 꿰차고 앉아 있었던 '뒷방 늙은이' 코스프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확신과 결기를 가지고 청문위원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게 차라리 그 다웠을 거라는 얘기다.  압권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청문회 내내 족히 100번은 "최순실을 몰랐다"고 믿어달라고 하던 그는 네티즌이 제보한 피할 수 없는 영상증거가 제시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제보니까 최순실 이름을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 죄송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참으로 딱한 말로가 아닐 수 없다. 이우찬 사회부 기자 


거짓말의 과학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올린 "우리나라 사람은 왜 그렇게 시위를 잘할까?"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다. 페친 만이 아니다. 외신들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의 촛불집회는 21세기 지구촌의 가장 강력한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또 '한국의 촛불집회는 2017년 가장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은 왜 그렇게 시위를 (평화적으로) 잘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아무래도 과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들의 몫인 것 같다.  나는 최근 일련의 사태와 '국정농단 청문회' 등을 보며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잘할까? 우리나라만 그렇다고 속단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온 국민이 집단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할 정도로 부글거리는 데 대통령부터 줄줄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건 뭔가 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면 들통 날 거짓말을 태연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잘할까?  물론 지도자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나도 그렇다. 어쩌면 어젯밤 잠들기 전 마지막 말이 거짓말이었고, 오늘 아침 눈 뜨고 일어나 처음 한 말이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읽었던 칼럼의 한 대목처럼 '나도 거짓말로 하루를 시작해 거짓말로 하루를 마무리한 날'이 많았다. 심지어 '살이 쪘다고 불평하는 아내에게 아직도 20대 같다고 말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 특히 뇌 과학자들에게 '거짓말'은 오랜 관심사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사람이 하루 평균 200번 이상의 거짓말(하루에 200마디를 말하기도 쉽지 않으니 아마도 심리상태까지 포함한 듯하다)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흥미로운 성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뇌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사람의 거짓말에 작용하는 뇌의 활동을 분석하고 <네이처 뉴로 사이언스>에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인간의 뇌에는 부정직한 행동을 하면 이를 꺼리게 하는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부위가 있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 거짓말을 반복할수록 이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측두엽 안쪽에 거짓말에 민감하게 반복하는 편도체가 있는데 초반에 하찮은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행동에도 이 편도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거듭할수록 편도체 활동량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상습적 거짓말쟁이들이 망설임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거짓말은 할수록 는다”는 속담은 과학적 진리였던 셈이다.   거짓말을 가려내기 위한 기술도 끊임없이 진화했다. 주로 범죄 수사에 사용되는 '거짓말 탐지기'도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바이브라 이미지(Vibra Image)라는 첨단 기법을 적용한다. 각종 센서를 부착해 호흡이나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 대신, 특수 영상장비로 신체의 미세한 떨림을 촬영해 거짓 여부를 판단한다. 그래도 거짓말을 100%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사람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거짓말은 생존을 좌우한다. 주머니쥐가 천적인 고양잇과 동물을 만나면 죽은 시늉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광대꽃하늘소는 아무 힘도 없으면서 마치 독침을 지닌 벌처럼 거짓시늉을 한다. 꼬마물떼새는 암컷이 알을 품고 있으면, 수컷은 날개를 다친 것처럼 속여 포식자를 유인한다. 심지어 북극여우는 먹잇감을 독차지하기 위해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거짓 신호로 보내 새끼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사람의 거짓말도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다만 사회적 관계를 통해 거짓말의 본능과 역기능을 순치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덜 끼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결국, 지도자들의 잦은 거짓말은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자신이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거짓말, 특히 지도자의 거짓말이 용인되는 곳은 퇴화한 사회다.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속고 속이는 정글과 다를 바 없다. 선진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명국가라고 믿으며 열심히 살았는데 정글이었다니. 그래서 우리는 또 분노한다.   거짓말은 할수록 는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특히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행위는 뇌 특정 부위의 손상 때문이라는 사실도 과학은 증명했다. 결국, 지도자들의 상습적 거짓말은 병이다. 벌(罰)과 치료가 동시에 필요하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