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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형칼럼)안철수 귀하…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2022-03-03 16:08:36 2022-03-03 16:19:45
"이재명이 싫다고 윤석열을 찍으면 1년 뒤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것입니다.”
불과 9일 전 안철수 국민의 당 전 대선 후보께서 울산 유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그 말에 모두 놀랐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안 전 후보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일종의 결기라고나 할까요. 저렇게 극단적 표현을 동원할 만큼 간절하구나. 양강 후보에게 기죽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구나. 진정성마저 느꼈습니다. 
 
이 말씀 뿐일까요. 선거운동 첫날 불의의 사고로 숨진 선거운동원의 빈소에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하셨지요. 결연하고 비장한 기운이 담긴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오늘 아침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단일화는 절대 없다 수 차례 공언하셨고, 어제밤 TV토론까지 나가셔서 태연하게 다른 후보들과 논쟁도 벌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룻밤새 돌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년 뒤 손가락 잘라야 할 일'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손가락 자르는 것보다 손바닥 뒤집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설마 설마 이번엔 아니겠지' 했는데 또 중도사퇴라니요. 짧다면 짧은 10년 정치 인생에서 선거 중 중도하차가 벌써 4번째입니다. 이쯤되면 '상습 사퇴자'라 불러도 되는 것 아닐런지요.
 
그냥 이렇게 윤석열 후보와 두 손 맞잡고 환히 웃으며 국민들에게 몇마디 던지고 '새 출발'하면 되는 겁니까. 그동안 안 전 후보를 지지하고 응원한 사람들을 생각은 하신 겁니까. 이들은 거대 양당의 싸움에 질려 안 후보에게 마음을 의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약속'과 같은 것입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어떻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이들의 희망을 저버릴 수 있나요.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다는 정치판이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최소한 자신의 '언행불일치'에 대한 이해는 구한 뒤 '통보'하는 것이 국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인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 때문에 그렇다고요? 그렇게 구태의연한 정치 행보로 권력만 교체하면 되는 것인가요?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얼굴만 바뀔 뿐 정치가 바뀔까요? 목적이 순수하니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로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후보께서는 "새 정치 하겠다"는 말을 기회있을 때마다 하셨습니다. 거대 양당의 구도를 깨고,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중도 세력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국민 통합에 앞장서겠다 하셨습니다.
 
심지어 오늘 아침 국민의 힘과 합당하겠다고 선언하실 때도 "다당제가 제 소신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다당제를 위한 정치개혁에 민주당도 함께 해 줄것을 당부까지 하셨네요. 아니, 정작 후보 본인은 자기 당을 없애는데 다당제를 하겠다는 말은 또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이해해 보려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 기습작전 같은 단일화 선언에 여론은 들끓고 있습니다. 물론 안 후보의 기대처럼 그동안 자신을 지지했던 표심이 윤 후보에게 많이 옮겨갈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정치라는 것은 반드시 셈법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선거는 더욱 그렇습니다.
 
당장 상당수의 재외국민 투표가 사표가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국내에서 투표하는 것과는 달리 해외에서의 재외국민 투표는 쉽지 않습니다. 투표장까지 가기 위해 버스나 기차는 물론, 비행기까지 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인은 "투표가 우리 민주주의에 있어 얼마나 큰 가치인지 아니까 그 먼 걸음도 감수하고 내 표를 던지러 기꺼이 나서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투표까지 마쳤는데 단일화, 이건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자 대한민국 선거판에 대한 우롱"이라고 비판한 뒤 "후보 사퇴 기한을 재외국민 투표 이전으로 제한하는 '안철수법'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네. 청원인처럼 많은 해외 동포들의 노력과 염원이 무효가 됐습니다. 이들의 실망과 배신감은 얼마나 깊을까요. 
 
이 대목에서 묻고 싶습니다. 안 후보님의 정치적 자산은 무엇입니까. 10년간 정치하신 결과 지금 국민들 앞에 무엇을 내세우시겠습니까.  
 
안 후보님,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국민은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들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디 후보님의 노림수가 악수가 아니길 바랍니다. 건승하시고, 나중에 혹여 고위직에 오르시거든 소망하셨던 새 정치 꼭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평소 늘 하셨던 말씀대로 그때에도 국민만 보고 가시길 바랍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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