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계엄 막은 시민들…긴박했던 12월3일 '그날 밤'
한파 속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가득 채운 여의도
폭설 속에서 '윤석열 체포'를 외친 '키세스단'
내란 세력 청산까지 길었던 지난 7개월의 시간
2025-07-22 18:20:19 2025-07-22 18:58:41
 
 
[뉴스토마토 이진하·한동인·김태은 기자] 지난해 12월3일 밤 10시25분 느닷없이 속보가 떴습니다. 현안 브리핑을 한다고 했던 당시 대통령 윤석열씨가 '비상계엄'을 기습 선포했습니다.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왔고 어느 때보다 길었던 탄핵의 밤을 건너기 위해 소중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매서운 추위는 얇은 은박지로 맞서며 '키세스단'을 만들었습니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의 염원은 윤석열씨를 파면으로 이끌었고, 끝내 특별검사법이 게시돼 그날의 밤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12월3일부터 이어진 내란 정국에서 시민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회로 와주십시오"…국회로 달려온 시민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의원들은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이날은 본회의를 하루 앞둔 날이라 많은 의원들이 지역구보다 수도권과 국회 인근에 있던 덕에 많은 의원들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 입구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였고, 일부 의원들은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향했습니다. 
 
담을 넘고 항의 끝에 들어온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무사하게 들어갈 수 있던 것은 의원들의 손과 발이 돼준 보좌진들의 노고도 있는데요. 이들은 넘어져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국회로 들이닥친 계엄군을 막아서다가 상처가 난 이들도 있습니다. 소위 MZ 사원들에게 '꼰대'라고 불리던 선임 보좌진들은 과거 시위 경험을 살려 국회 입구를 계엄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소파와 책상으로 벽을 쌓기도 했습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지역에서 몰려든 시민들이 경찰의 방해를 저지하며 담을 넘는 의원들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유튜브 라이브 덕이라고 회자됩니다. 실제 다시 8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 대표의 호소를 듣고 달려온 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의 빠른 판단이 시민들을 국회로 불러 모았고, 국회를 향하는 장갑차를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을 올리고 투표까지 이뤄진 것은 3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각 차원에서 공식 해제까지는 계엄 선호 후 6시간 만인 새벽 4시30분쯤이었습니다. 시민들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을 가결했음에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국회에 남아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며 계엄군들과 맞섰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주간 전국서 모인 시민들의 응원봉 물결
 
비상계엄 해제까진 이뤄졌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내란은 공권력도 무력해졌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해야 이 내란이 끝날 것으로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불안했던 그날 밤의 기억을 잊지 않고 여의도 광장에 모였습니다. 과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탄핵을 염원하던 촛불은 아이돌의 응원봉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저지로 인해 탄핵안이 쉽게 가결되지 않았습니다. 탄핵안 가결을 위해서는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의 의석수를 모두 합치고도 8석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첫 번째 탄핵안은 의결 정족수 미달로 투표 자체가 '불성립'됐습니다. 당연히 가결될 것이라 믿었던 시민들은 한숨 섞인 탄식을 내놨지만, 이후 좌절하지 않고 더 많은 인원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2주간 국회 앞 대로는 퇴근 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린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면 시민들도 품속에서 응원봉을 꺼내 들고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탄핵'을 외쳤습니다. 함성도 있었지만, 한파를 이겨내고자 시민들은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선 이들은 집회에 참여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주말을 거친 후 윤석열씨가 탄핵됐습니다. 지난해 12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그 결과 윤씨는 헌정사상 세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대통령이 됐습니다. 
 
1월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1박2일 민주노총 철야투쟁에서 시민들이 은박 비닐을 덮은 채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폭설 속 '윤석열 퇴진' 외친 '키세스단'
 
윤석열씨는 탄핵됐지만, 내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여부마저 확실하지 않았고, 곳곳에서 그 흔적들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총칼에 맞선 시민들은 다시 한파와 폭설 속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습니다. 탄핵안 가결 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윤씨에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자신의 체포를 막기 위해 군인을 사병화하며 저항했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시민들은 윤씨가 머무는 관저 인근에 모였습니다. 한파 속에 시민들은 은색 방열 담요를 두르고, 길 위에 앉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철야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해외의 유명 초콜릿 과자와 닮았다고 해 '키세스단'으로 불렸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누리꾼에게 공유됐고, 시위 참가자들은 눈발이 거센 상황에서도 길에 앉은 채 시위용 응원봉을 흔들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인근 지역에 선결제를 통해 이들을 응원했습니다. 국회 앞 여의도 시위부터 시작된 선결제 행렬은 한남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유명 연예인들도 자신의 응원봉을 든 팬들에게 힘을 보탠다며 선결제에 나섰습니다. 인근 교회는 화장실을 개방해 집회하는 시민들을 응원했습니다. 그동안 집회 장소로 이용되던 '광화문광장'을 계승하는 저항의 상징 장소가 한남동으로 이동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하의 날씨와 거센 눈보라에도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투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3박4일까지 이어진 집회는 투쟁에 지쳐 시민들이 돌아가면 그곳을 다른 시민들이 채워주면서 이어졌습니다. 2030 성인들도 있었지만, 10대 청소년들도 불안한 정국에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거리에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이 상황이 끝나기 위해서는 '윤석열 체포'뿐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윤석열씨에 대한 2차 체포영장이 집행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로 경찰과 공수처 관계자들이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란 우두머리'로 헌정사 최초 현직 대통령 체포
 
지난해 12월31일 서부지법에서 헌정사 최초 현직 대통령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16일 만에 윤씨가 체포됐습니다. 체포에 성공한 후에도 공수처는 체포 시한 만료 이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후 10일 내 조사를 끝낸 후 검찰에 기소를 요구, 송치하는 단계를 모두 거쳐야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체포의 적법성을 가리는 법원 체포적부심사가 진행되자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윤씨의 체포를 규탄하는 지지자들이 몰렸습니다. 
 
반면 도심 곳곳에서는 체포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집회의 장인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또다시 윤씨의 구속을 위해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들었는데요. 평일에는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함께 나와 거리 행진을 하며, 시민들 속에서 '구속'을 함께 외쳤습니다. 
 
다만 주말에는 이 광장이 둘로 나눠졌습니다.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과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인데요. 경찰은 충돌을 고려해 경찰 버스로 차벽을 만들었습니다. 윤씨의 구속과 수사를 촉구하는 이들은 광화문에서 인사동으로 행진하며 밤까지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대학생 단체부터 각종 시민단체는 물론 전국 각지에 있는 노조까지 나섰습니다. 주말 낮에는 응원봉 대신 각종 깃발들을 들고 광장에 모였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저항의 내용을 담은 깃발도 있었지만, 해학의 민족답게 재치 있는 글귀가 적힌 깃발들도 화제가 됐는데요. '전국 집에 누워 있기 연합' '내향인 연합' '전국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협회' 등 이색 깃발들은 광장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25일 서울 강남구 세곡동사거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트랙터들이 이동하고 있다. 전농은 이날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윤석열씨 탄핵 촉구 집회를 한 뒤 트랙터와 트럭을 이끌고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전에 없었던 '남태령 대첩' 뒤엔 '난방버스'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서도 시민의 힘은 발휘됐습니다. 지난해 12월21일과 올해 3월2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윤씨에 대한 체포와 구속 촉구를 위해 각지에서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윤씨의 출근을 위해 교통 혼잡까지 초래하며 교통 통제에 나섰던 경찰들은 트랙터로 인한 '교통 혼잡'을 내세워 남태령고개에서 차벽 설치에 나섰습니다. 트랙터는 차벽에 막혀 고립됐고,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경찰은 9년 전 박근혜씨 탄핵 당시에도 농민들을 남태령에서 막은 바 있는데요. 그런데 이번에는 남태령고개의 모습이 사뭇 달랐습니다. 
 
SNS 등을 통해 농민과 경찰의 대치 소식이 시민들에게 전파됐고, 시민들은 남태령으로 향했습니다. 시민들은 특정한 단체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강추위 속 농민들을 위한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배달 오토바이를 통해 커피와 어묵, 그리고 방한용품 등을 시위 현장에 실어 날랐습니다. 
 
당시 '난방버스'가 화제가 된 바 있는데요. 추운 날씨 속에 농민들이 탔던 버스는 다시 시민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며 외롭지 않은 싸움을 만들어낸 겁니다. 
 
윤석열씨가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2일 만에 석방…124일 만에 재구속된 윤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집회는 결국 새 정부의 탄생을 만들어냈습니다. 역대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최다 득표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남발했던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혔던 각종 특별검사법(특검)은 정권 초 국회 문턱을 줄줄이 넘어섰습니다. 새 정부의 탄생으로 특검 또한 본격 내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지난 3월 52일 만에 석방됐던 윤씨는 다시 구속됐습니다. 
 
김재하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대표는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2.3 내란을 막아낸 시민영웅 기념식'에서 "여의도,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 안국동 등에서 수많은 미담과 무용담이 쌓여지고 시민 영웅들이 탄생했다"며 "내란 세력의 저항으로 전국이 교착되고 수많은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여기 계신 시민 여러분 영웅들뿐만 아니라 이름 모르는 수많은 영웅들이 기존의 역사적 경험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날 시민 대표로 참석한 박수민씨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당시 나고 자란 그 평화롭던 광주가 전두환 계엄사령부에 의해 어떻게 도륙 나고 유린되었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보았고, 무고한 시민들의 필사적인 항쟁을 보았다"며 "또다시 계엄이 선포되자 두근거리는 심장을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렸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광주의 마지막 밤, 박용주라는 젊은 청년은 하느님께 일기를 썼다고 한다.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찌르고 아프게 합니까. 그리고 국회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현재가 과거를 돕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더욱 성숙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해원의 정치를 이재명정부께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이 영광된 자리를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꼭 기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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