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크는 좁지만 기술은 정교…HJ중공업, 이유 있는 MRO 자신감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가보니
1200척 함정 건조해내…정비 거점
2025-11-04 12:00:00 2025-11-04 14:16:16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지난달 31일 해양기자협회가 찾은 부산 영도 앞바다. 회색 선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용접 불빛이 바다 위로 튑니다. 크레인이 천천히 팔을 뻗고, 쇳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섞이는 곳. 해군작전사령부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HJ중공업 영도조선소는 미국 항공모함도 정박할 수 있는 수심과 부두를 갖춘 함정 정비(MRO)의 거점입니다. 
 
지난달 31일 해양기자협회가 찾은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상선 도크에서 9000TEU급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부지가 좁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빨간색과 흰색을 띤 3000톤 크레인이 해상에 떠 있는 상태로 선체 블록을 조립하는 ‘스키드 공법’이 적용되고 있다. (사진=윤영혜 기자)
 
독도함 돌아온 자리, 기술 쌓인 90년
 
야드는 방산 구역과 상선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방산 구역에는 커다란 독도함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었습니다. 독도함은 해병대와 장비를 한꺼번에 실어 나르는 대형 수송함입니다. 2007년 인도된 독도함은 20년이 다 돼 영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자 장비와 레이더를 교체하는 MRO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뒤쪽에 뚫린 웰독(Well Dock: 침수 갑판)에는 고속상륙정 두 척이 들어갑니다. HJ중공업은 독도함을 시작으로 후속함 마라도함을 2021년에 인도했고, 이후 해양경비함과 고속상륙정 등 각종 함정을 잇달아 건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1200척의 함정을 만들었습니다. 국내 조선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실적입니다. 
 
독도함 건너편에서는 차세대 고속상륙정(LSF)이 조립 중이었습니다.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LSF는 검은 스커트(공기주머니) 아래 송풍기가 달려 수면 위에 뜬 채 최고 시속 74km로 항해합니다. 권재관 HJ중공업 특수선사업팀 공정관리파트 부장은 “전차나 병력을 싣고 완전 무장한 채 바다 위에 1~2.5미터가량 떠 미끄러지듯 이동한다”며 “국내에서 HJ중공업만이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방산 구역을 지나 상선 도크로 향하자 붉은 선체의 9000TEU급 컨테이너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길이 300미터, 폭 50미터로 선수 쪽이 샤프하게 디자인돼 저항을 최소화하는 형태였습니다. 도크는 세 개뿐이지만 7000~9000TEU급 선박 대형 블록이 동시에 들어가 조립되고 있었습니다. HJ중공업은 좁은 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스키드 공법’을 적용 중입니다. 정철상 HJ중공업 전무는 “부지가 좁아 1000톤 이상 크레인을 세울 수 없다 보니 바다 위에 3000톤 크레인을 띄워 블록을 조립한다”며 “도크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인다”고 했습니다. “도크 회전율이 곧 매출”이라며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HJ중공업은 설계 1년, 제작 1년의 주기로 맞춤형 선박을 완성하는 체계를 갖췄습니다. 좁은 도크지만 기술은 정교하고, 생산 공정은 끊김이 없습니다. 
 
송풍 팬을 통해 공기를 불어넣어 선체를 수면 위로 띄워 고속으로 이동하는 공기부양정인 고속상륙정(LSF)이 시운전중인 모습. HJ중공업이 독보적 기술력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건조하고 있다. (사진=HJ중공업)
 
작년 흑자 전환…중소조선 '저력'
 
1937년 설립된 HJ중공업이 다시 도약의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11년 만에 적자 고리를 끊은 뒤 조선 부문 실적이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입니다. 2021년 새 경영진이 들어선 이후 지난해 연말, 회사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9000TEU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하고 있지만, 설계 변경을 통해 최대 10500TEU급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해외 선주들과 협의 중이며, 올해 연말 이전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관 회의실에서 만난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이사는 “내년에는 흑자 폭이 더 커질 전망”이라며 “부침을 겪는 동안 건설 부문 비중이 커 조선 부문 실적이 저평가됐지만 현재 매출 규모가 대등해졌고 앞으로는 조선이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출·영업이익 모두 펀더멘털이 좋아 옛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는 그의 말에는 HJ중공업의 저력에 대한 확신이 묻어났습니다. 
 
유 대표는 ‘마스가의 꽃’으로 불리는 군함 건조 및 MRO와 관련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국내 최초의 조선소인 영도조선소가 미 해군 MRO 사업의 유력 후보지로 떠오르면서 HJ중공업은 미 해군 정비 라이선스(MSRA) 취득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 9월 실사를 마치고 이달 내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독도함과 고속경비정 등 국내 함정 MRO 실적을 쌓아온 만큼 국제 정비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입증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 대표는 “라이선스가 나오면 대형 군함 입찰 참여가 가능해진다”며 “기존 실적 위에 성장을 더하는 ‘보너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31일 부산 영도조선소 본관 회의실에서 유상철 HJ중공업 대표이사가 해양기자협회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HJ중공업)
 
조선 시장이 초대형 선박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유 대표는 중소형 조선소가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허리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근해·연안에서 운항하는 중소형 선박을 국내에서 건조할 곳이 사라지면 결국 외국 조선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빅3 대비 중소는 대한조선, 케이조선, HJ중공업이 남았는데 국내 기술과 일자리를 지키려면 중소형 조선사의 생존에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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