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1년 전 12·3 비상계엄 당시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43원까지 치솟으며 한국의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계엄이 철회되면서 환율은 일시 안정되는 듯 보였으나 최근 원·달러 환율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습니다. 금융권에선 이를 두고 전 세계적인 달러 기조 강화 등 여러 구조적 요인이 겹친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계엄 당시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비상 대응 체계로 전환했고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서 외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습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심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확인된 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계엄으로 환율 급등 후 안정→다시 고공행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불과 6시간에 불과했지만 한국 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막대하다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특히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급격한 머니 무브 현상과 국내 투자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비상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당시 회의에서는 외환시장 동향과 금융시장 전반 리스크, 해외 자금 유출 가능성 등을 점검했습니다. 금융시장 전반의 충격에 대비해 유동성 공급 방안과 금융기관의 유동성 상태 점검 등을 논의했습니다.
환율 급등과 원화 약세는 시중은행과 금융사 전체에 부담을 줬습니다. 금융권에선 특히 외화 조달이 많았던 금융사들은 헤지 비용 상승과 조달 비용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원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물가 등 실물 경제의 타격은 물론이고 금융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당시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갑작스러운 환율 리스크와 유동성 불안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일부 은행들은 파생상품을 통한 헤지 포지션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외화 조달 루트와 달러화 유동성 확보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울 명동 시내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높아진 환율, 물가에 미칠 영향 지켜봐야"
문제는 환율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계엄 뒤 치솟았던 환율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다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습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한은에서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높아진 환율이 향후 물가에 미칠 영향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부총재보는 "11월 소비자물가는 고환율 등으로 석유류 가격이 상승하고 농축수산물 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2.4% 상승했다"며 "근원물가 상승률은 서비스 가격이 낮아져 2.0%로 하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소비자물가가 두 달 연속 2% 중반의 상승률을 보이고 생활물가도 높아진 만큼 향후 물가 상황을 경계심을 갖고 점검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1월 기준 환율은 1470원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환율 1500원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경계감을 높아지고 있습니다. 환율 상승이 단순히 정치 이벤트의 여파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시각도 적잖습니다.
금융권에선 환율 상승의 원인을 글로벌 금융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달러의 강세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여기에 미국의 금리 수준이 한국보다 높거나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자본이 달러로 모이는 강달러 구조가 만들어졌단 겁니다. 이에 따라 원화 수요가 줄어들고 약세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입니다.
개인과 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 움직임 역시 고공 환율을 만드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이나 채권 투자가 증가한 점은 달러 수요를 키우고 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달 20일 기준 393억99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10월말 352억9700만달러에서 11.6% 급증한 규모입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만약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그건 서학개미들의 해외주식 투자 때문"이라면서 "젊은 분들이 하도 해외 투자를 많이 해서 '왜 이렇게 해외 투자를 많이 하냐'고 물어봤더니 '쿨하잖아요'라고 답해서 깜짝 놀랐다. 유행처럼 막 커진다는 면에서 걱정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즉시 환전하지 않고 유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 흐름은 환율 상승을 견인한다는 분석입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리서치본부 부장은 "해외 투자 자금이 단기간에 줄지 않는 한 현재의 환율 환경은 유지될 것"이라며 "해외 자금 유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이 견조하게 버티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자산 매도 역시 고환율에 영향을 끼친다는 평가입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주식 매수가 늘어나며 대외금융부채도 많이 늘긴 했지만 대외금융자산 증가 폭이 더 커서 해외로 나간 자금이 더 많다"며 "수급 측면에서 환율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수출 둔화나 내수 부진, 성장 둔화 등 국내 경제 여건도 환율에 부담을 주는 요인입니다. 펀더멘털 약세가 원화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려 자본 이탈의 요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와 국내 펀더멘털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환율이 일시적으로 올랐다가 다시 안정되는 패턴이 반복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면 수입물가와 원재자 가격이 오르는 등 소비자 물가, 기업 수익성 등이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금융권에선 외화 부채가 있는 기업과 금융사들의 환 리스크 부담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외환 헤지 비용도 늘어나 금융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지난해 계엄 사태는 한국 금융시장이 여전히 글로벌 충격에 민감한 구조임을 보여줬다"며 "앞으로는 위기 발생 후의 속도전보다, 위기 이전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핵심"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는 "외화 조달 만기 분산, 은행·보험·증권 전 부문의 외환 익스포저 통합 모니터링, 비은행권의 외화 유동성 규제 강화, 정책당국의 환율 급등 시 자동 안정장치 마련 등 구조적인 외환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