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궁민관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유명무실해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더 이상 기대하는 것도, 실망할 일도 없다. 다만, 최근의 정치적 구설 등 경영활동에 방해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재계 관계자의 이 같은 설명은 전경련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회원사들을 보호하고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단체가 되레 방해꾼으로 전락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전경련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재계의 한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유시장경제 창달을 목적으로 기업들을 대변한다'는 기본적 지표는 상실한지 오래다. 회장단 회의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을 포함한 주요 그룹 총수들의 외면 속에 운영조차 어렵다. 대부분의 활동들은 회원사이 아닌 정권의 요구에서 비롯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표적이다. 하물며 재계에서는 "회원사를 위해 전경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경련 자체 영달을 위해 회원사를 동원한다"며 주객전도의 현실에 혀를 차를 소리도 나온다. 그만큼 불만이 쌓였다. 적폐다.
이에 더해 보수단체 어버이연합 우회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정경유착 논란 등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한다는 비난에까지 직면했다. 이쯤되면 정치단체다. 존재이유는 이미 망각했다. 해체론이 더욱 힘을 받는 이유다. 회비를 비롯해 전경련 활동에 각종 출연금을 부담해왔던 기업들은 '공범'으로 내몰렸다.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기부한 한 회원사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우리도 피해자"라며 "전경련으로 인해 반기업 정서만 더해졌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장에서 난타 당한 공기업들은 이참에 탈퇴 러시를 연출했다. 공기업 회원사 19곳 가운데 9곳(인천공항공사·한국전력·한국석유공사·가스공사·서부발전·에너지공단·석유관리원·산업단지공단·선박안전기술공단)이 전경련에서 탈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기업들은 탈퇴 명분이나 있지만, 600개 회원사 가운데 510개에 달하는 민간기업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탈퇴마저 쉽지 않다. 공기업들의 전경련 탈퇴가 이어지고 있는 현재까지 탈퇴 의사를 밝힌 민간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그룹사 관계자는 "전경련 탈퇴는 단순히 연합회를 탈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며 "정치권과의 역학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먼저 탈퇴했다가 정치권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보다는 전경련 해체를 기다려보는 방향이 나을지도 모른다"며 말을 흐렸다.
전경련의 안과 밖에서 존재의 이유가 실종된 작금의 상황에서 여전히 이승철 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전경련은 말이 없다. 해체론에 직면한 상황에서 전경련 생존의 근거는 반성과 그에 근거한 대변혁 뿐이다. '기업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성장, 일자리 창출,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성장의 과실을 온 국민이 누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전경련 기업경영헌장 7대 원칙 중 1대 원칙을 잊지 말길 바란다.
남궁민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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