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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뉴스] 우병우, 그는 누구인가?
2016-11-28 16:31:17 2016-11-28 16:31:17
[뉴스토마토 신건기자] 지난 11월6일 검찰 청사에 들어서는 한 남자.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매섭게 째려보는 그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정의로운 사회 꿈꾸던 학생이 '깁스 검사'로
우병우씨는 1967년 1월28일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우용구씨는 영주 이산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우 전 수석은 어릴 때부터 검사의 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가르쳤던 한병태 전 영주고 교장은 우병우씨를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병태씨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 전 수석이 어려서부터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검사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말했다.
 
영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우 전 수석은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의 탁월한 성적으로 1984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서울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서 만 20살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합격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한 이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했다. 당시 우 수석은 서방파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연이어 맡는다. 탄탄대로를 너무 이른 나이에 걸었던 탓일까? 동료 검사들은 그를 거만한 검사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 검사의 동료들은 그가 몸에 깁스를 한 듯, 몸을 굽히는 일이 절대로 없다며 '깁스'라는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가 맡은 사건 가운데에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었던 문재인 의원의 회고록에서 우 검사의 언행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문 의원은 회고록에서 "우병우 검사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에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청와대 입성 후 초고속 승진
하지만 잘 나가던 그도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는 떨어진다. 이후 검찰에 사표를 내고 2013년 5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빌딩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다.
 
그 후 1년 뒤인 2014년 5월, 우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 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당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총 재산액이 423억 3230만 원이나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우 전 수석은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8개월 만에 청와대 수석 중 실세라고 평가받는 민정수석 자리를 꿰찬 것이다. 민정수석은 청와대 10개의 수석 자리 중 가장 권력이 강한 자리다. 측근과 고위 인사의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한 자리하기 위해서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평가를 거쳐야만 했다.
 
우 전 수석이 업무를 하던 시기에 임명된 대검차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모두 TK 출신이었기에 이들을 일컬어 '우병우 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비리의혹
지난 7월18일 조선일보는 우 전 수석 처가와 게임업체 넥슨의 강남땅 거래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다. 우씨의 사돈이 물려준 건물을 넥슨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사들였고, 그다음 해에 큰 손해를 보고 매각했다는 것이다. 우씨는 보도 초기에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라고 해명했다가 "장모님과 함께 갔다"고 말을 바꾸는 등 계속 말을 바꾸며 의혹을 키웠다.
 
다음날에는 경향신문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을 우 전 수석이 몰래 수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후 한겨레는 그의 아들의 운전병 전출 의혹을 보도한다. 서울경찰청은 한겨레가 보도한 아들 전출 의혹에 대해 "코너링이 좋았다"는 해명을 내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7월22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수석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언론은 우 수석이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특별감찰관 제도'의 첫 수사대상이 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감찰 내용이 MBC에 보도되자 청와대는 감찰관의 감찰내용 유출이 국기 문란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해당 기자와 특별감찰관이 내통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혹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특별감찰관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수사를 의뢰한 지 한 달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은 7월2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와 내통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해당 의혹을 보도한 기자의 자택과 사무실, 휴대전화를 압수 수색한다. 곧이어 8월에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각종 비리를 터뜨리며 조선일보와 여론전을 선포한다.
 
최순실 게이트와 '황제 수사' 논란
국회 운영위원회는 9월7일 우 수석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그를 10월 국정감사의 기관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전례가 없다며, 우 수석을 내보낼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운영위는 크게 반발하며 우병우 민정수석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해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10월24일, JTBC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의혹과 증거를 '뉴스룸'을 통해 공개했다. 당시 JTBC 취재진이 입수한 태블릿PC에는 박 대통령 연설문 44건이 들어있었는데, 모두 연설이 시작되기 직전에 받아본 것이었다. JTBC는 앞서 보도한 "최순실의 취미는 연설문 수정"이라는 기사를 언급하며, 최씨가 국정 농단한 증거들을 하나씩 내놓는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TV조선이 최순실과 박근혜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동안 '카더라'는 식으로 돌았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사실로 확인되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25일 대국민 사과를 하지만 회피성 발언과 대국민 사과가 녹화방송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박 대통령은 난국을 타개하고자 같은 달 28일 우 수석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들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30일에는 대대적인 인적개편을 단행한다.
 
민정수석에서 물러나 민간인이 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11월6일 검찰에 출두했다. 이날 우 전 수석은 가족회사의 횡령 혐의에 관해 묻는 기자를 쏘아보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검찰에서 성실히 답하겠다"라고만 말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청사에 들어간 다음 날, 조선일보는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과 그를 깍듯이 모시는 현직 검사들의 사진을 찍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조선일보의 객원기자가 맞은편 건물에서 우 전 수석이 조사받는 사무실을 촬영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우 전 수석이 검사들에게 다가가자, 수사하는 검사들이 일어섰다. 그를 깍듯이 모시는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검찰은 "담당 부장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 전 수석이 다른 후배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해명했지만, 조선일보는 관련 사진을 더 내놓으며 검찰의 해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김수남 검찰총장은 "절차상이라도 그렇게 비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앞으로 더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검찰 창문을 창호지로 가리면서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현재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때 그들의 세계에서 실세로 통했던 그를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신건 기자 hellog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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