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유권한이었던 전속고발권이 부분 폐지된다. 이에 따라 가격·입찰담합, 공급제한(생산량 조절), 시장분할 등 중대한 담합(경성담합)에 대해서는 검찰이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980년 공정거래법 이후 38년 만의 전면 개정으로,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검찰과 공정위의 30년 갈등이 일단락된 모습이다. 이같은 두 기관의 합의에 대해 경제민주화 토대는 마련했다는 평가지만, 이전보다 훨씬 커진 검찰 권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김 위원장과 박 장관은 "건전한 시장경제 발전과 소비자 후생 증진에 공감하고,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와 자진신고제(리니언시 제도)의 차질없는 운영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기소가 가능한 제도다.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우선 행정조치를 통해 시정하고, 중대한 위반행위에 한해서 공정위가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기소를 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검찰은 그간 꾸준히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해왔다. 특히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가 기업들에 솜방망이 처벌을 한 사례들이 드러나 도마에 오르면서 전속고발제 폐지 주장이 급물살을 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대선 캠프시절 공정위 권한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전속고발권 개편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속고발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정위의 고발권 독점으로 인해 일반 국민과 소비자의 권리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를 폐지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정부는 경제민주화 국정과제의 하나로 공정거래법상 행정, 민사, 형사적 법집행수단을 종합적으로 정비하고, 전속고발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와 법무부는 전속고발제 폐지 대상을 공정거래법 19조의 부당한 공동행위(카르텔) 가운데, 가격담합·공급제한·시장분할·입찰담합 등 4가지 유형으로 합의했다. 다만 경성담합 이외의 기업활동과 관련해서는 전속고발제가 현행대로 유지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기업결합 제한 ▲지주회사 행위제한 ▲상호출자·순환출자 금지 ▲금융지주사 의결권 제한 ▲불공정 거래행위 금지 등의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고 있는 여러 행위 유형 중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성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면서 "판매가격 공동 인상, 공급량 제한·축소, 입찰담합 등 소비자의 이익을 크게 해치고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반사회적 행위인 경성담합에 엄정한 처벌이 필요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와 법무부는 전속고발제 폐지로 자진신고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리니언시 제도도 개편한다. 우선 공정거래법에 형벌감면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검찰도 감경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 자진신고 접수 창구를 기존 공정위 창구로 단일화하되, 두 기관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일반적인 자진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먼저 조사해 13개월 안에 조사를 끝내고, 관련 자료를 검찰에 송부하기로 했다. 이 밖에 자진신고 신청이 접수되면 공정위는 일정기간(30일) 안에 자진신고 신청자의 형사면책 여부에 대한 판단을 검찰에 송부하고, 검찰은 이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 기업 활동 및 시장의 자율성 위축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검찰의 권한이 커짐에 따라 검찰 권한의 비대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박 장관은 이에 대해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사건에 한해 우선 수사하고, 공정위와 협의해 그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겠다"며 "경제분석과 자진신고 등을 담당할 전문 부서와 인력을 확충해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더라도 시장에 대한 형벌권 발동은 적정하고도 합리적인 선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기업인들의 걱정과 우려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면서 "공정한 경쟁 룰은 지키되 자유롭고 정당한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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