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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16-포용국가의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10위' 전략
4차 산업혁명 도래와 기술진보에 따른 일자리 감소·증가의 갈림길 직면
일자리 미래에 대한 국가전략 고민…용산 전자상가를 데이터경제 혁신단지로
2019-03-11 07:00:00 2019-03-11 07:00:00
30년 뒤면 일자리가 줄어들까, 늘어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 11개 분야 중 미래 전망이 가장 엇갈리는 게 일자리다. 2016년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설파한 이래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일자리 감소'를 기정사실로 여긴다. 하지만 다른 전망도 있다. 미국의 '글로벌트렌드 2035' 보고서는 장차 5년간은 고용이 줄겠으나 2035년에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영역에서 오히려 일자리가 늘 것으로 분석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에서 출간된 미래 보고서 '사람경제'도 미래엔 인간의 노력과 기술진보에 따른 자동화의 도움으로 양질의 고용이 더 늘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국 '일자리 삶의 질' OECD 19위…고용률 22위·개인소득 24위

한국의 일자리 미래를 전망하려면 우선 OECD 삶의 질 지수에 나타난 현재의 일자리 내용을 점검해야 한다. OECD는 일자리 분야를 고용률과 장기실업률, 개인소득, 일자리 안정성 등 4가지 부문으로 측정한다. 이 가운데 정부의 가장 큰 관심은 고용률이다. 이것은 15~64세 인구 중 지난주 1주일 이상 고용된 사람의 비율이다. 2018년 한국의 고용률은 66.1%로 OECD 38개 회원국 중 22위다. OECD 고용률 1위는 아일랜드로 86.3%다. 스위스와 스웨덴, 뉴질랜드, 미국, 일본 등 OECD 고용률 상위 10개국은 70%대다. 한국이 고용률 10위 국가가 되려면 고용률이 지금보다 8%포인트는 올라야 한다. 
 
2018년 11월 27일 대전 우송정보대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려 학생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7개 기업체와 대전경제통상진흥원, LINC+사업단 등이 참여, 기업채용관과 취업컨설팅관 등이 마련됐고 잡 코칭과 지문적성검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사진/뉴시스
 
장기실업률은 생산가능 인구 중 1년 이상 실업한 사람의 비율이다. 한국의 장기실업률은 0.03%로 독보적 1위다. 2013년 이래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2위인 멕시코(0.1%)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장기실업률이 낮다는 건 마냥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실업상태에선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하다는 걸 의미해서다. 실업급여 액수와 지급기간이 충분치 못해 반강제적으로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의 개인소득은 3만2399달러로 OECD 24위다. 10위는 벨기에로 5만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일자리 안정성은 2.4%로 OECD 8위며, 이 부문 1위는 일본이다. 이것은 실업에 따른 예상 소득상실 정도를 전년 소득과 비교해 나타낸다. 고용률과 장기실업률, 개인소득, 일자리 안정성 등을 종합할 때 한국은 일자리에 관한 삶의 질 순위가 OECD 19위 정도다. 이 분야의 10위 국가들은 캐나다와 호주 등이다. 한국이 30년 후 일자리에 관한 삶의 질에서 10위국이 되려면 캐나다나 호주 수준의 일자리 양과 질을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일자리의 미래…엇갈린 분석

고용률이 현재보다 8%포인트 증가하는 일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가능할까. 슈밥은 그의 책에서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진단했다. 210만개의 고용이 증가하되 71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와 클라우딩, 나노, 바이오기술 등 거의 모든 지식정보 분야에서 일자리의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한국에선 이런 근거 없는 통념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슈밥이 그의 책에서 제시한 일자리 감소 전망은 객관적이거나 계량적 지표에 근거한 게 아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일자리 미래가 변할 것인지 묻고, 대답을 받아썼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선무당들의 추측에 근거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일자리가 줄 것인지, 늘어날 것인지 전망이 분분하다. 로봇의 등장과 자동화 설비의 본격화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새로운 영역의 고용이 생겨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사진/뉴시스
 
슈밥과 정반대의 전망도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는 4년 마다 글로벌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한다. 글로벌트렌드 2035는 국가정보위원회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 내놓은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가까운 미래인 향후 5년 뒤엔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라 일자리가 급속히 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먼 미래인 2035년에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영역에서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기술진보에 따른 자동화와 지능화로 현재 일자리는 사라지겠지만, 기술진보로 인해 생겨난 새 영역에선 다른 노동형태가 등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엇갈린 두 전망에서 중요한 지점은 일자리에 대한 국가의 철학과 정책방향이다. 기술변화를 방치할 경우엔 슈밥의 전망처럼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지고 대량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는 마냥 방치되는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목적과 의지가 개입하는 분야다. 과거는 이미 우리가 지나온 역사로부터 받은 불변하는 결과다. 하지만 미래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고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를 연구할 땐 소망성(Desirability)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미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기술변화에 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데이터경제 시대의 일자리창출과 한국형 '스타시옹 F'

한국의 포용국가론은 미래를 예견하는 뉴딜정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 영역이 데이터경제의 새로운 일자리와 생태적 일자리창출이다. 우선 데이터경제에 대한 역량을 강화한다면 청년들의 새로운 일자리창출이 가능하다. 지난 10년간 대학원급에서는 '브레인 코리아' 정책의 일환으로 학습역량을 강화했지만 이것만 갖고선 데이터경제의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 지금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 등으로 힘겨운 청춘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데이터경제에 필요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데이터경제의 일자리 수요에 대한 획기적 정책이 필요하다.

'데이터코리아 2030' 정책으로 데이터경제의 인력수요에 대비할 수 있다. 이는 초연결시대에 데이터 기반형 일자리를 늘리고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형 석·박사를 매년 3000명, 10년간 3만명을 배출하는 한편 데이터 기반의 미래 대학원을 지원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매년 6250억원의 예산을 투입, 적어도 5년 계획으로 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면 청년들에게 미래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프랑스 파리 인근 옛 역사에 세워진 '스타시옹 F'는 수많은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들이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고 있다. 스타시옹 F는 4차 산업혁명과 데이터경제 시대에 혁신 역량을 강화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범사례를 보여준다. 사진/스타시옹 F
 
데이터경제 시대에는 대학원과 같은 정규 교육 외에 또 다른 혁신학교도 필요하다. 지금 청년들은 학교나 학원보다 유튜브 등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창조한다. 프랑스의 '에콜42' 모델은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에서 새 혁신의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형 에콜42로써 '데이터텍' 사업을 검토할 수 있다. 수도권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의 5대 권역별로 연간 2000명을 선발, 데이터텍을 세우는 것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데이터 관련 기업의 투자와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한국형 에콜42를 전자산업의 메카였으나 지금은 쇠락한 서울 용산 전자상가와 연계, 도시재생 차원에서 추진해 봄 직하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혁신가인 이얀 고즐런(Yaan Gozlan)은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를 프랑스의 '스타시옹 F(Station F)' 같은 스타트업 혁신단지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비교적 에콜42가 유명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그와 짝을 이루고 있는 스타시옹 F가  혁신 프로젝트로써 성과를 내고 있다. 파리 근교의 버려진 한 역사(驛舍)에 오픈이노베이션 공간으로 만들어진 스타시옹 F에선 수많은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들이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새 혁신을 만들고 있다. 용산 전자상가 인근에도 국립전파연구원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부지가 있다. 원래 일제 시대부터 체신학교의 자리였던 이곳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10여개 정도의 교사가 남아 있다. 용산 전자상가도 충분히 프랑스의 스타시옹 F와 에코42를 결합한 새로운 글로벌 스타트업 단지로 바꿀 수 있다.

미래형 일자리 조건,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
 
용산 전자상가 활용 등은 특정 사례가 아닌 오픈데이터 커먼스(Open Data Common) 정책 차원에서 도입돼야 한다. 조선과 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경쟁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 미래형 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청년 고용을 해결할 첩경이다. 오픈데이터 커먼스는 국책 연구기관과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하는 것이다. 이러면 미래 예측과 시뮬레이션을 위한 데이터센터가 운영될 것이고, 경제와 산업, 보건, 복지, 교육, 과학 등 각 방면에서 활용도를 높여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는 과거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였으나 지금은 쇠락했다. 이곳을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 한국형 '스타시옹 F'로 육성하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데이터경제에 관한 포용국가의 일자리 정책은 하나의 예시다.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 정부가 어떤 철학과 정책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향후 30년 이후 대한민국의 일자리 지형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말이다. 데이터경제만이 아니라 생태환경 분야에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미래형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자리들은 일방적 재정투입형 일자리와 달리 지속가능하면서 친환경적 일자리들이다.

OECD 기준 한국의 고용률 66.1%로, 38개 회원국 중에서 22위다. 정부의 철학과 정책에 따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일자리가 급속히 감소하거나 또는 증가하거나 둘 중 하나로 나아갈 것이다. 고용 위기의 시대에는 개인과 지역, 기업, 공동체 그리고 국가가 회복탄력성을 갖고 위기의 5년을 지나야 한다. 새로운 30년 이후 미래를 위한 분명한 일자리 철학과 정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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