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또 미룰 것인가
입력 : 2019-04-08 20:00:00 수정 : 2019-04-08 20:00:00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ILO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 및 노동권 증진이라는 이상 아래 1919년에 탄생했고, 1946년 최초로 UN 전문기구로 편입됐다. ILO는 국제노동기준을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제정하여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폐지 등 노동기본권에 대한 최소 기준을 설정하고 이행을 감독하는 것을 주된 역할로 하고 있다.
 
ILO가 기타 UN기구와 구분되는 점은 삼자(노동자, 사용자, 정부)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삼자주의를 바탕으로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동등한 위치에서 총회·이사회를 비롯한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1996년 처음 정이사국으로 선출되는 등 활동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이 ILO에 가입한지 28년이 지났지만 국제노동기준의 비준 상황은 처참한 수준이다. 한국은 ILO 회원국으로서 결사의 자유 등 ILO 기본협약을 준수할 의무를 가지며, ILO 감독기구의 권고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 ILO 핵심협약은 회원국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으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부문에서 각 2개씩, 모두 8개로 구성된다.
 
한국은 핵심협약 가운데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부문의 4개 협약만 비준했고, 결사의 자유 관련 2개 협약(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강제노동 금지 관련 2개 협약(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105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ILO 핵심협약 비준은 회원국의 의무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노동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다. ILO 핵심협약은 모든 ILO 회원국이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준수해야 하는 8개 협약으로, ILO는 1998년 총회에서 '노동의 권리 및 기본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 결사의 자유에 관한 내용을 비롯해 8개의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존중하고 촉진 및 실현해야 할 협약으로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스스로 한 약속을 지난 20여 년 동안 이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웃음꺼리가 될 뿐 아니라 대외무역의 분쟁을 자초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010년 한-EU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ILO 핵심협약의 비준을 약속했다. ILO 187개 회원국 중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나라가 143개국이고,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서 30개국이 핵심협약 전체를 비준한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8년 12월 10일 전원위원회 결정을 통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ILO 제87호 및 제98호 가입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및 제98호 핵심협약의 내용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제21조 제1항) 및 노동3권인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제33조 제1항)의 보장과 내용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협약 가입으로 국제인권기준의 국내 이행과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축인 자본과 노동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보편적 노동권의 보장에 있다. ILO 협약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고 선언한 ILO 헌장의 부속문서인 '필라델피아선언'에 따라 전 세계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기본적 근로조건을 보장해 노동을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2019년 1월, ILO '일의 미래 세계위원회'가 발간한 일의 미래 보고서는 "계약형태나 고용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는 기본권과 적정 생활급, 최대노동시간 제한, 산업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조치를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단체협약, 법, 규제를 통해 이러한 보장의 최소 기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ILO 핵심협약도 비준하지 않는 한국은 국제 노동계에서 노동권 위반의 대표 선수로 호명된다. 국제노총(ITUC)은 노동권 위반 정도를 6단계로 구분하는데, 우리나라는 사실상 최악의 단계인 5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런 권리 보장이 없는 유형인 5단계에는 한국과 함께 알제리, 바레인,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캄보디아, 중국 등이 포함돼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만 믿고 핵심협약 비준을 국회 입법화 뒤로 미뤄 둘 수만은 없다.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거꾸로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을 먼저 선언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야 한다. 그래야 비준을 거부한 세력의 책임 소재도 명확해 진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도 이유도 없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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