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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돌려 화재 진압한 '의인'…CJ대한통운 택배기사 한용남씨
2019-04-21 06:00:00 2019-04-21 06: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연기가 너무 많이 나 위험하겠다 싶어서 가던 길을 돌려 왔죠.”
 
지난 16일 저녁 812분 서울역 근교 중림동 삼거리 횡단보도 앞 쓰레기통에서 난 불을 끈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한용남(29)씨는 이렇게 말했다. 불이난 곳이 도로변이고 근처에 인화물질이 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어 불이 커진다면, 대형사고로도 번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지난 16일 저녁 8시경 서울 중구 중림동삼거리 앞에 위치한 폐기물통 화재를 진화한 CJ 대한통운 택배 기사 한용남(29)씨. 사진/최서윤 기자
  
주황색 불길이 제법 커져 행인에게 목격된 건 750분쯤. 횡단보도를 건너가려다 불길을 본 대학생 커플은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다 당황한 마음에 112에 전화를 걸었다. 연기가 많이 나고 쓰레기통 입구로 선명한 불길이 점점 커지는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오토바이가 바짝 옆으로 멈춰 설 때마다, 승객을 많이 태운 버스가 가까이 정차해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화재 사실을 알고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마음을 졸였다.
 
소방차를 기다리는 사이, 불이 번진 쓰레기통 앞으로 한 컨테이너 차량이 멈춰 섰다. 파란색 조끼를 입은 20대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려 쓰레기통을 잠시 살피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불이 뿜어져 나오는 일반쓰레기 옆 재활용폐기물통 뚜껑을 열고 도구를 이용해 내용물을 뒤적였다. 한 씨였다. 한 씨는 일단 큰 불을 진정시킨 뒤 횡단보도를 건너와 인근 식당에서 흰 플라스틱 양동이를 얻어 물을 길어다 부었다. 한 씨가 작업을 서너 차례 반복하자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직접 물을 날라주며 한 씨를 돕기도 했다.  
 

지난 16일 저녁 8시경 서울 중구 중림동삼거리 앞에서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한용남(29)씨가 폐기물통에 붙은 불을 끄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잠시 뒤 불길이 완전히 잡힌 듯 연기가 멈췄고, 그 뒤에도 한 씨는 한 번 더 물을 길러다 부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의로운 청년이다” “모범시민이다라며 박수로 감사를 표했고, 식당에 있던 한 중년 남성은 직접 길을 건너가 한 씨에게 인사했다. 한 씨는 어떻게 불을 끄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운전하고 지나가다 불 난 걸 봤고, 연기가 너무 많이 나 위험하겠다 싶어 길을 돌렸다고 말한 뒤 바쁜 듯 급히 다시 차량에 올랐다.
 
한편 화재가 진화된 뒤에도 최초 신고자인 대학생 커플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소방차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건 759분 무렵, 신고 확인 문자를 받은 건 8시 정각, 신고가 소방서로 넘어갔다는 문자를 받은 건 82분이었다. 한 씨가 화재를 완전히 진화한 건 812분이었지만, 820분이 돼서야 소방대원 2명이 소방차 없이 걸어서 현장으로 왔다.
 
출동한 서울중부소방서 회현119안전센터 관계자는 신고자 위치가 약현성당으로 찍혀 거기서 헤매다가 신부님이 여기라고 알려줘서 이쪽으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위치가 도로 가운데이다 보니 신고자도 정확한 위치 설명이 어려웠는데, 위치 추적 시스템이 현장에서 500미터 가량 떨어진 약현성당으로 엉뚱하게 안내를 했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끄고 버려야 하는데, 그러질 않아서 종종 있는 일이라며, 여기가 맞다는 연락을 받고 성당에서 출발한 소방차가 도착하자 잠시 머물다 현장을 떠났다. 
 

화재가 완전히 진화된 뒤 폐기물통(오른쪽) 모습. 지난 16일 저녁 8시경 서울 중구 중림동 삼거리 앞에 위치한 폐기물통(오른쪽)에서 불이 붙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한용남(29)씨가 진화작업을 위해 양동이로 길어다 부은 물로 인해 바닥이 젖어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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