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동물과 인간 공존해야
입력 : 2019-08-27 06:00:00 수정 : 2019-08-27 06:00:00
삶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독신가정이 늘면서 반려동물도 늘고 있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서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개념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든다”고 말한 바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은 한국인들도 이제 생리적 욕구에 그치지 않고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사회참여나 환경·동물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에서는 이미 50여 년 전에 나타났다. ‘글래머 배우’로 잘 알려진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는 1964년부터 동물보호 운동에 뛰어들어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국을 개고기를 먹는 야만의 나라라 비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바르도 등이 앞장서 시작한 동물보호운동은 지금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화 라 붐 등으로 유명한 배우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잔인한 가금사육 실태를 SNS에 공개하며 동물학대를 멈출 것을 호소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14일 프랑스 동물협회와 정치권은 자국 장관을 비난하는 글을 연이어 올리며 SNS를 뜨겁게 달궜다. 디디에 기욤(Didier Guillaume) 농식품 장관이 투우경기(Corrida)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농식품 장관은 동물의 안녕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기욤 장관은 직분을 망각한 채 잔인한 투우시합을 즐겼다. 기욤 장관은 자클린 구로(Jacqueline Gourault) 국토연대 장관과 함께 프랑스 남동부 피레네 아틀란틱 지방 바이욘(Bayonne)에서 열린 투우경기를 관람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투우사인 다니엘 뤼끄(Daniel Luque)가 여섯 마리의 황소와 대결하는 장면을 약 6000명의 구경꾼이 지켜봤다. 시합에 참여한 황소들은 모두 유혈이 낭자한 채 사경을 헤맸지만 투우사는 꼬리를 들고 다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일간지 쉬드 웨스트(Sud Ouest)의 한 여성 기자는 이를 사진으로 담아 트위터에 올렸다.
 
이 사진을 본 유럽 환경당 야니크 자도(Yannick Jadot)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디디에 장관이 동물의 고통을 무시한 채 투우경기를 구경한 것은 특권이라고 비난했다. 이를 놓고 좌우파 정치인들은 열띤 공방을 벌였다.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은 “바이욘 경기장에서 장관들이 동물학대를 지켜본 것은 스캔들”이라고 분개했다. 다른 동물보호단체들도 두 장관의 투우 구경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중 하나인 ‘One Voice’도 “투우는 황소를 살해한다. 이런 전통은 없어져야 한다”며 개탄했다.
 
‘L214’ 동물보호협회는 이 논쟁을 정부 내에서 동물의 안녕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협회 창설자인 브리지트 고티에르(Brigitte Gothiere)여사는 BFMTV와의 인터뷰에서 “기욤 장관의 나들이와 동물 안녕을 사람들은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3000만 명의 친구’ 역시 “공화국의 두 장관이 바이욘의 투우장 맨 앞줄에 앉아 동물의 고통과 학대를 응원했다. 투우경기 중지! 70%의 프랑스인이 투우경기 금지를 찬성하고 있다”라며 분개했다.
 
우리를 돌아보자. 투우경기가 없으니 한국에서는 황소들을 학대하는 일이 없는 걸까.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별한 날 마을마다 ‘소싸움대회’를 열어 황소들을 싸우게 하는 전통이 있다. 지난 5월5일 전북지역 한 마을에서 열린 ‘소싸움대회’는 프랑스의 투우경기만큼은 아니지만 소들을 학대하는 대회였다. 육중한 소들을 서로 뿔을 부딪치며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 해당 지자체장은 "소싸움 대회가 지역에서 기른 소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홍보의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싸움을 동물학대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시각은 프랑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냉랭하다. 정치권은 더 심하다. 그나마 시민은 생리적 욕구보다 상위차원의 욕구를 염원하지만 정치권은 1차적 욕구 해소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시민들은 계속 동물보호를 위한 법을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지만 국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관련 법안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는 게 다반사다. 어디 이뿐인가. 국회의원들이 동물보호 증진에 역행하는 법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20대 총선 과정에서도 상당수 후보들이 소싸움·동물쇼를 찬성하거나 개 식용산업을 지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동물과 공존하는 시대로 변화함에도 이들은 왜 시대를 읽지 못하는가. 프랑스 농식품 장관이 전통적 사고에 젖어 투우경기를 즐기다 뭇매를 맞듯 우리 정치인들도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내년이 총선이다. 승리하고 싶은 자, 시대를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라.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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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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