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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 가로막는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조건'…특례법 개정 시급
케이뱅크, 대주주 심사 중단에 생사 기로…현재로선 대형 ICT사, 은행업 진출 손사래
2019-11-20 17:27:00 2019-11-20 17:27: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국내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가 고사 위기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2년여 만에 카카오를 1대주주로 올리며 지분정리를 마무리했지만, 현행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조건은 케이뱅크를 포함해 앞으로 출범할 제3, 제4 인터넷은행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은행특례법(이하 인터넷은행법)상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자는 최대주주가 될 수 없는데, 금융과 IT가 결합한 인터넷은행 특성상 이 자격요건에서 자유로운 비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기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쉽지 않은 상태다.
 
이날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뱅크 지분을 손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한국밸류)에 넘기는 방안을 금융위원회가 승인하면서 카카오뱅크 지분구조는 카카오가 대주주가 되는 것으로 정리된다. 카카오뱅크의 회사명에 명시된 '카카오'가 확실한 최대주주가 되는 것은 출범 2년여 만이다. 지난해 말 인터넷은행법이 통과되면서 카카오 등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기존에 카카오뱅크 최대주주(50%)였던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잔여지분 정리 문제가 있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에 지분을 넘기고 잔여 지분을 처리해야 하는데, 잔여 지분을 넘길 만한 계열회사가 마땅치 않아서다.
 
당초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최대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에 지분을 넘기려 했으나 한국투자증권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문제가 됐다. 인터넷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주력자가 기존 은산분리 규제상 한도(4%)를 초과해 인터넷은행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되려면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과 조세처벌법,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전력이 없어야 한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차선책으로 한국밸류에 지분을 넘기는 것으로 카카오뱅크 지분정리는 마무리됐으나, 인터넷은행법의 최대주주 자격요건은 지속적으로 인터넷은행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뱅크의 경우 이 규제에 따른 자본금 부족으로 대출 영업이 수시로 중단되면서 사업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KT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케이뱅크는 증자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법 통과 이후 KT 주도로 59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해 자본금을 1조 원까지 늘릴 계획이었으나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발목을 잡히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 케이뱅크는 예·적금 담보대출을 제외하고는 대출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에도 비상등이 켜지면서 건전성 관리가 필요해진 탓이다.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공정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중단된 상태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케이뱅크 광고판.
 
무엇보다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면 인터넷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은 비금융회사가 은행업에 진출하는 길을 막는 진입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한국형 인터넷은행 모델은 IT회사 같은 비금융회사가 주도해 인터넷은행을 설립해, 금융권의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제3인터넷은행 예비인가전은 흥행 실패로 끝이 났다. 예비인가 신청을 받은 결과 네이버,  SK텔레콤와 같은 IT 대기업부터 대형 유통기업 등 대어로 꼽힌 잠재후보들이 모두 불참했다. 현재 인터넷은행에 대한 학습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터넷은행법으로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됐지만, 기존 인터넷은행들이 지분구조를 정리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데다 금융사의 대주주 자격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적격성 규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대주주 적격성 등을 심사하는 금융위원회 역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법률에서 대주주 자격 기준을 명시해놨기 때문에, 시행령만으로 재량권을 발휘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인터넷은행법 통과 후에도 공정거래법 위반 적용 여부에 대해 법제처로부터 매번 법령 해석을 받아야만 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완화하자는 인터넷은행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인터넷은행의 주식을 10%부터 34%까지 사이에서 보유하려는 한도초과 보유주주에 대한 승인 요건 가운데 공정거래법과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과 관련된 요건은 삭제하고, 금융 관련 법령 위반 요건만으로 판단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법을 10개월 정도 운영해 본 결과 기존의 대주주를 금융사에서 ICT 기업으로 변경하는데 법상의 대주주 요건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했다"며 "ICT 산업의 특성상 독과점적 시장이 형성된 경우가 많고,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서 공정거래법 등을 포함한 많은 법 위반 소지가 상당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 업권의 대주주 자격심사와 비교해봐도 공정거래법 중에서 내부자 거래나 불공정거래 행위만 보는 법도 있다"며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요건으로 공정거래법 전반을 볼 것이 아니라 불공정거래행위 같은 특정행위만 좁혀서 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는 2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완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다수 여야 의원들은  현재의 대주주 적격성 규정은 너무 엄격하다는 점에서는 공감대를 이룬 상태다. 하지만 일부 강성 의원들은 금융사의 대주주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유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이력이 있는 산업자본에 은행을 넘길 수 없다고 반발하는 부정여론도 넘어야 할 산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인터넷은행을 통한 은산분리 원칙 훼손에 이어 지배구조 원칙과 공정성까지 훼손해 은행의 건전성과 공정한 금융시장이라는 근본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반대 입장을 정무위에 전달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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