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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기자의눈)남양유업과 진정성

2021-05-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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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구성 요소는 공감, 논리, 진정성이다.” 프랜시스 프레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8년 TED 강연에 나와 신뢰 형성 방법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며 이 같이 밝혔다.
 
프랜시스 교수는 2017년 우버 수석부사장에 올라 임원진 퇴사 등으로 위기에 놓인 우버의 조직변화, 경영전략, 리더십 등 재설계를 이끈 인물로 꼽힌다. 진정성이 있다면 신뢰를 얻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불가리스 논란에 고개를 숙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눈물과 사과가 과연 진정성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홍 회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회장직 사임, 경영권 승계 포기 등을 밝힌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데도 남양유업의 경영 쇄신 방향이 여전히 오리무중인 탓이다. 쇄신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지분 정리 방안 등도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남양유업 비대위에 따르면 현재 이사회 내 남양유업 대주주인 홍씨 일가인 지송죽, 홍진석 이사 2명이 등기이사에서 최근 사임됐다. 지 이사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모친이며 홍 이사는 홍 회장의 장남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남양유업 지분이 없다. 총수 일가가 가진 남양유업 지분은 53.08%는 홍 회장을 비롯해 부인, 동생, 손자가 가지고 있다. 특히 홍진석 이사는 불가리스 코로나 억제 효과 논란에 이어 회삿돈 유용 논란에 휩싸이며 이미 지난달에 보직 해임됐다.
 
홍 회장의 이른바 셀프 비대위도 문제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홍 회장은 남양유업의 긴급 이사회를 주재했다. 홍 회장이 주재한 긴급 이사회에서 결정된 건 비대위 전환과 사의를 표명한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의 자리 유지였다.
 
남양유업에 따르면 이 대표는 최근 불가리스 논란에 책임을 지고 이달 초 사의를 표명했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후임 경영인 선정 시까지 자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십수일이 흘렀음에도 비대위 전환, 정재연 남양유업 세종공장장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셈이다.
 
프랜시스 프레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공감, 논리, 진정성 중 하나라도 흔들릴 경우 신뢰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남양유업이 지분 정리 등 후속 대책 마련에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일수록 소비자 신뢰 회복은 이룰 수 없다.
 
현재 남양유업은 기업 존폐 기로에 서있다. 지난해 77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3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남양유업 가족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거둬달라’,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번 믿어주시고 성원해 달라’는 홍 회장의 부탁에 대한 답은 홍 회장이 갖고 있다.
 
유승호 산업2부 기자 pe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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