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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시론)김혜경씨의 '7만8000원 사건'

2022-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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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8000원 사건'이라는 신조어가 화제다. 논란은 이재명 민주당 신임 대표 측이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혜경씨는 경기남부경찰청에 이른바 7만8000원 사건 등 법인카드 관련 조사를 위해 출석합니다"라는 공지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 중이던 지난해 8월, 김씨가 민주당 인사 3명과 식사를 하고 이들의 식대를 경기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게 핵심이다. 이를 이 후보 측이 '7만8000원 사건'이라고 독특하고도 교묘하게 네이밍한 것은 문제가 되는 액수가 지극히 미미함을 부각시키려 한 의도로 읽힌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에서는 "고작 7만8000원 갖고 문제 삼느냐", "겨우 7만8000원 때문에 120여곳을 압수수색한 거냐"는 지지자들의 항의성 댓글들이 이어졌다. 지난 대선에서 집권여당의 후보였고 새 당대표가 될 것이 확실한 거물급 정치인의 부인을 단지 '7만8000원' 때문에 경찰이 소환 조사했다면, 일종의 '망신주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사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김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내용이 '7만8000원' 짜리는 아니었음을 이내 알게 된다. 경찰이 김씨의 수행비서 역할을 해온 최측근 배모씨에 대해 신청한 사전구속영장에는 법인카드 횡령과 관용차 렌트 비용, 배씨의 11년치 급여까지 최대 5억원이 넘는 국고손실 혐의를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자신이 지시한 적이 없다'며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이 조사한 액수의 규모는 '7만8000원'이 아니라 '5억원'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양쪽이 파악하는 액수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경기도청에서 급여를 받은 배씨가 김씨의 사적 업무를 주로 했으니 배씨 급여 전체를 국고 손실로 잡을 수 있다는 경찰의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까짓거 얼마되지 않는' 의미를 담은 7만8000원은 다름 아닌 선거법 위반 혐의다. 액수의 규모에 상관없이, 단 한 건의 위법사실만 확인되어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성격의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강규형 KBS 이사는 김밥 2500원 등을 포함해 2년간 법인카드로 300여 만원을 부당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바 있다. 김씨는 배씨를 통해 경기도청 5개 부서 법인카드 여러 장으로 초밥, 소고기, 샌드위치 30인분 등을 결제하고 자택으로 수시로 배달시켰다는 의혹 등도 받고 있다. 타인 명의로 의약품 대리 처방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7만8000원 사건'은 김씨가 조사받은 내용들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 '7만8000원 사건'이라는 조어는 혐의의 내용을 크게 왜곡하는 정직하지 못한 언어다. 지지자들로부터 나오는 '고작 7만8000원'이라는 주장들 또한 조국 사태 때 '표창장 하나 때문에'라는 주장의 2022년 버전인 셈이다. 정경심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은 혐의가 결코 '표창장 하나' 때문이 아니었듯이, 김씨가 조사를 받은 이유가 '7만8000원 사건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김혜경씨 관련 수사 말고도 이재명 대표 본인과 관련된 수사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수사 중이며, 경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경기주택도시공사(GH) 합숙소 비선캠프 전용 의혹, 무료 변론에 따른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백현동 옹벽 아파트 개발 특혜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이른바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표와 김혜경씨는 자신들이 수사를 받고 있는 모든 혐의들을 부인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검찰과 경찰은 내용을 부풀려서 정치보복으로 의심될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뒤집어 씌우기를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문제가 됨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위법성이 드러나는 일에 대해 거대야당의 대표라는 이유로 덮고 지나가는 것도 사법적 정의 차원에서 옳지 않다. 수사기관과 이 대표 측의 입장이 상반될 경우 결국 재판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할 사건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문재인정부 시절에 제대로 수사를 해서 의혹들에 대해 가부간의 결론을 내렸어야 할 일들이었다. 그런데 정권 눈치보기를 하며 시간만 보내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니 이제서야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된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고 훗날 문제가 되는 일이 없을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동시에 민주당은 당대표 개인의 문제를 갖고 과도하게 '방탄'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 대표 기소에 대비한 '기소시 당직 정지·당무위 구제' 당헌 개정 추진이 당내에서도 '방탄' 논란을 낳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에서 한 번 부결된 사안을 재상정까지 함으로써 일사부재리의 원칙 위반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수사당국와 민주당을 포함한 관련 당사자들 모두의 공정하고 절제되고 균형있는 태도를 주문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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