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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Thank you, ‘Milk Steel!’”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완공의 주역, 우유철 부회장

2018-12-12 18:52

조회수 :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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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현대자동차그룹 대표이사·사장단 인사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로 마무리 됐습니다.
 
이들 가운데 자동차 업계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철강업계에서는 꽤나 잘 알려진 인물이 업계를 떠나게 되었는데요. 바로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입니다.
 
우 부회장도 ‘MK 사단’의 일원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통상 MK사단을 ‘경복고등학교·한양대학교·현대자동차써비스·현대정공 출신’으로 정의내리는 것과 달리, 그는 적통은 아닙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이 MK사단으로 들어가게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현대로템으로 자리를 옮기는 우유철 전 현대제철 회장
 
경기고와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동 대학원에서 조선공학 석사를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선박 건조 일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물에 떠다니는 배보다 우주에 떠다니는 배를 더 선호했습니다. 항공우주공학자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1992년 8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현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해 처음으로 우주로 보낸 인공위성 ‘우리별 1호’ 개발의 숨은 주역이었습니다.
 
1990년대말 현대그룹은 항공우주사업에 뛰어들었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경영하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현대로템)이 이를 담당했는데, 그 때 우 부회장도 참여했습니다. 우 부회장은 연구진이 부족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자 인연을 맺고 있던 러시아 기술진들을 대거 초빙해 조직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 회장과 우 부회장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이었습니다. 당시 이사였던 그는 현대모비스 마북리 연구소를 방문한 정 회장에게 브리핑을 했는데, 정 회장의 질문에 막힘없이 정답을 내놨다고 합니다. 만족한 정 회장은 곧바로 우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켰고, 한 달 만에 현대제철의 전신인 INI스틸로 옮기며 전무로, 이어 부사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1년간 무려 세 단계를 승진했으니, 현대차그룹 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그만큼 우 부회장에 대한 정 회장의 신뢰는 강했다고 합니다.
 
정 회장의 눈에 우 부회장이 들어온 그해, 현대차그룹은 한보철강을 인수해 숙원이었던 용광로 건설을추진했습니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아들 정 회장까지 현대는 세 번에 걸쳐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가 좌절됐고, 네 번째 도전 만에 드디어 뜻을 이룬 것입니다. 정 회장은 이러한 대업을 우 부회장에게 맡겼습니다. 단 한번의 브리핑으로 그가 제철사업을 성공시킬 것으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우 부회장은 용광로를 건설하는 충남 당진에 상주하며 365일을 제철소 건설에 보냈습니다. 제철소 건설 당시 매일 오전 7시면 현대제철 당진 사무소 대회의장에는 ‘회의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는데, 우 부회장이 주제한 임원회의였습니다. 오전 6시 즈음이면 우 부회장은 어김없이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임원들을 기다리며 하루 일과를 정리했다고 하네요. 당진 1용광로 완공을 눈앞에 둔 2009년 사장으로 진급한 그는 2010년,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 철강역사를 살펴봐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 해에 1·2용광로 연속 화입·가동이라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이후 2013년에는 3용광로를 완공, 지금의 당진제철소를 완성합니다. 이듬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2015년에는 현대하이스코와의 합병도 성공리에 마무리시켰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 부회장은 제철소 완공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아마도 한반도에서는 다시는 초대형 일관제철소가 신규 건설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마지막 과업을 우 부회장이 해냈습니다. 선박에서 시작해, 항공기를 만들고, 자동차용 철강재를 만든 그의 이력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해 본 정 회장이 걸어온 길과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 2010년 6월 9일 포스코센터 서관 18층 스틸클럽에서 열린 제11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우유철 현대제철 당시 사장(오른쪽)이 안현호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런 우 부회장이 현대제철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그는 분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2009년 철강업계를 취재한 기자는 지난 10년간 우 부회장이 이뤄낸 결과물들을 목격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써왔습니다. 덕분에 기자도 용광로 3기의 화입식을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또한 철강업계 취재가 즐거웠습니다. 그런 CEO가 떠난다니, 아쉬운 마음이 적지 않습니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던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명함을 주면서 “궁금한 것은 나에게 물어보라”며 언제라도 전화를 받겠다고 약속할만큼 화통한 성격이었습니다. 한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본 떠 ‘밀크스틸(MilkSteel)’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는데, 기분 좋아하며 사람들과 만날 때 “밀크스틸입니다”라고 인사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룹 인사가 난 이날, 우 부회장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사옥에 마련된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퇴임사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그는 이전에 몸담았던 현대로템으로 돌아갑니다. 현대로템은 국내 최대 철도차량 회사로, KTX 열차를 개발·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인 ‘K-2 흑표’ 전차도 생산합니다. 현대차그룹이 우 부회장을 현대로템에 보낸 것은 분명히 그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며, 우 부회장 역시 이미 그곳에서 해내야 할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또 다시 도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철강업계는 또 한 명의 어른이 떠났습니다. 내년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와 철의 날 기념식 때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리를 채워나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부회장이 남긴 업적은 업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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