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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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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홍콩서 13주째 주말시위…"같이 민주 합시다"

2019-09-01 09:42

조회수 : 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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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13주째 주말시위가 벌어진 8월31일. 경희대 미래문명원의 임채원 교수와 함께 홍콩시위를 취재하러 홍콩에 왔다. 임 교수는 한국에서 '우산혁명을 지지하는 촛불시민연대'를 이끌고 있다. 시위 전 홍콩 당국이 조슈아 웡(黃之鋒)과 아그네스 초우(周庭) 등 시위 지도자들을 전격 체포하며 강경대응 조짐을 보이자 시위를 주도하던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 이하 민진)은 전날 저녁에 이번 주말 대규모 집회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때까지 민진 측과 계속 연락한 결과 대규모 집회는 없되 'Walk around', 돌아다니는 행렬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당국의 강경대응과 그에 따른 인명피해를 우려해 문화행사를 겸한 집회를 열겠다는 것이고, 민진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9시10분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가니 현지시간 11시50분. 조금 늦게 도착하는 임 교수를 기다렸다가 함께 홍콩시위가 벌어질 코즈웨이 베이로 향했다. 홍콩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민진의 부대표인 웡윅모(黃奕武, 사진 왼쪽)씨다. 웡씨는 앳된 얼굴인 데다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초우 등이 20대기 때문에 그도 또래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33살이라고 했다. 웡씨는 원래 초록색 자켓을 입었으나 날씨가 덥다고 자켓을 벗고 왔다. 그런데 그가 입은 흰색 티셔츠는 '민진'이라는 글자가 찍힌 옷이었다. 웡씨와 코즈웨이 베이역 앞에서 서서 한참 이야기했는데 홍콩시위에 관한 내용을 자유롭게 전했고, 자기 얼굴이 나오도록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것을 거부감 없이 허락했다. 조슈아 웡 등 홍콩시위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백색테러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그는 그런 것을 신경 안 쓰는 모습이었다. 웡씨는 오후에 열릴 시위 땐 홍콩 정부청사 쪽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녁에 자기를 보러 오려면 위험하니 헬멧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웡씨가 있던 정부청사 쪽에선 당국과 시위대가 격렬한 대치를 했다.


 
웡씨와 헤어진 후 우리 일행은 코즈웨이 베이역에서 1㎞ 떨어진 숙소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이동하던 중에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었는데 밥을 먹던 잠깐 사이 폭우가 쏟아졌다. 숙소에 들러서 짐을 정리한 후 오후 4시30분에 다시 코즈웨이 베이로 나섰다. 지난주까지 시위대가 모였던 빅토리아파크는 조용했고 코즈웨이 베이역까지 가는 동안에도 시위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계속 소음이 들렸다. '뭐지?' 하고 보니 홍콩 시위대를 감시하기 위해 당국의 헬기가 하늘을 계속 비행 중이었다.



헬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하며 걷는데 헬기가 공중에서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쪽에 뭔가 있겠다 싶어 가봤더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노래를 하고 있었고 주위엔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중국어를 몰라서 이들의 노래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들은 그냥 버스킹을 구경하는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두 홍콩시위의 상징인 검은색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다. 사람들이 모인 곳은 코즈웨이 베이역 바로 옆에 있는 소고백화점 골목이었는데 삽시간에 인파가 모여서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가져간 카메라를 삼각대에 연결했으나 사람들 등에 가려 화면이 잘 찍히지 않았고 모여든 인파에 밀쳐져서 영상이 흔들릴 정도였다. 여기서 장관은 군중의 스마트폰이었다. 한국의 촛불혁명 당시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촛불을 손에 들었듯, 홍콩에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빛을 밝혔다. 군중의 합창은 20~30분간 이어지다가 일제히 완차이역 쪽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완차이역은 코즈웨이 베이역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1.1㎞ 떨어졌다.



완차이역으로 도보로 행진하면서 임 교수는 한국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꺼냈다. '우산혁명을 지지하는 촛불시민연대'에서 미리 준비한 "한국의 촛불혁명은 홍콩시위를 지지한다"는 선언이 적힌 손팻말이었다. 임 교수는 이때부터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는 내내 이 팻말을 손에 들고 다녔고, 홍콩 시민들에게 팻말을 나눠주거나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은 이 팻말을 보고는 모두 화이팅을 외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완차이역으로 가는 도중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미국인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들고 가는 것이었다. 미국과 한국은 모두 홍콩시위를 지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홍콩에서 양국의 국기를 흔들며 나타난 모습에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임 교수가 미국인과 인사하며 같이 사진을 찍는데 이 '벽안'이 갑자기 한국말을 했다. "같이 민주 합시다". 외국인이 '민주'라는 말의 의미를 미리 알고 썼다는 점도 신기하지만,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한국이 홍콩을 도와 민주주의를 이뤄내자는 제안을 홍콩시위 현장에서 들은 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민들이 도보행진을 하는 동안 정부청사 쪽에선 홍콩 경찰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대치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웡익모씨도 그쪽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웡씨 때문인지 정부청사 쪽 시위에도 눈길이 갔지만 우리 일행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아울러 임 교수는 본인이 거듭 강조한 비폭력 민주화운동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도보행진 속에서도 시위에 앞장서며 당국과의 대치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임 교수는 본인의 80년대 대학시절이 떠올라서인지 그들을 '전투조'라고 불렀다. 일반 시민들이 일반적인 검은색 옷에 마스크를 썼다면, 그들은 마치 군인을 연상하듯 방독마스크에 헬멧, 각종 보호대를 착용했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은 주위 기물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었다. 도로 중앙분리대 목적으로 쓰이는 가드레일을 뜯어내는가 하면 철제 쓰레기통도 바리케이드로 활용했다. 아래 사진은 철제 쓰레기통을 바리케이드로 쓰기 위해 여러 명이 밀고 가는 장면이다.



시위에서 만난 홍콩 시민들은 친절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고 마스크를 챙겨주는가 하면 영어와 중국어, 몸짓을 섞어가며 이것저것 물어봐도 친절히 설명해줬다. 하지만 단호한 게 하나 있었는데, 시위하는 시민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을 못하게 했다. 신원이 공개될 경우 혹시라도 홍콩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시위는 저녁 7시쯤 대충 마무리된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도 도보행진을 멈추고 복귀하기로 했다. 복귀하면서 걸어온 길을 보니 시위대만 따라다니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사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동급으로 표시한 포스터다. 시진핑은 지난해 3월 '국가주석 3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한쪽에선 그를 '시다다(習大大)'라고 부르며 우상화하고 있지만, 홍콩에선 그를 역사적인 독재자로 취급하는 셈이다. 포스터엔 '중국(China)'과 '나치즘'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Chinazism', 'Chinazi' 등의 문구가 적혔다.



마지막 사진은 홍콩 행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민심을 알 수 있다. 도보행진을 하는데 벽이든 길에서든 '구관(狗官)'이라는 낙서가 많이 보였다. 대충 봐도 썩 좋은 의미는 아닐듯 싶었다. 도보행진 후 길가에서 쉬고 있던 한 시민에게 "구관이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 물어보자 큰 소리로 웃더니 "캐리 람"이라고 말했다. 캐리 람은 현재 홍콩자치구의 행정장관이다. 벽에 적힌 문구 중엔 이런 게 있었다. '一世是狗 狗官(평생 개로 산 캐리 람)'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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