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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다이어리)유령 같던 공연, '레드제플린' 존 폴 존스

2019년 9월2일|낮은 늦더위, 밤은 선선|"아, 더는 못참겠다"

2019-09-11 18:42

조회수 : 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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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다이어리: 일기처럼 ‘생생한’ 공연 리뷰. 실제 일기처럼 날짜를 적고, ‘나’를 주어로 내세워 공연에서 보고 느낀 감정들을 풀어갑니다. 딱딱한 형식의 공식 리뷰를 벗어나 음악과 공연을 즐긴다는 것.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시작은 꽤 오래 전이었다. 8월 중순, 워너뮤직 담당자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레드제플린의 존 폴 존스 아시죠? 한국에 온대요. 그것도 무료로."
 
이틀 뒤 나온 보도자료. 처음 듣는 그룹명이 새겨져 있었다. '선스 오브 치폴레(Sons of Chipotle)'. 존스가 핀란드의 첼리스트 안시 카르투넨(59)과 결성한 팀이라 했다.
 
당장 구글과 유튜브의 바다에서 '검증'을 시작했다. 5분, 30분, 1시간…. '아, 이 팀 뭐지? 유령이야?' 
 
낚시대를 던져도 고기 구경도 못하는 기분. 황량한 백지 수준. 공식 홈페이지 외엔 영상도, 소개글도 거의 없었다. 온갖 추상적인 말만 가득했다. '광대한 음악 지도를 펼치는 전례가 없는 팀'. 거의 유령 같은 밴드군. 허탈한 웃음만 날 뿐이었다.
 
왜 무료로 공연을 여는지도 딱히 설명이 없었다. 그저 팩트만이 있다. 일본에선 유료인데 한국에선 무료란다. 워너뮤직 측의 설명이 더 혼란스럽게 한다. 부산에 강연을 왔다가 갑자기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 이 관계자는 "음반 유통사가 공연을 기획하고 만드는 건 가뭄의 콩나듯한 일인데, 자신들이 아티스트 의전과 공연 기획까지 덩달아 맡게 됐다"며 아티스트 즉흥성에 혀를 내둘렀다. (기자로서도 이런 즉흥적인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좇는 건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낮의 더위를 몰아내던 공연 당일 저녁. 공연장소 성수동 '플레이스 비브'로 향했다. '거장'이 이렇게 은밀한 소극장을 택한 것도 국내 내한 공연사에서 이례적인 일.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인 이 곳은 공연장이라고 보긴 애매했다. 3층까지 복층으로 구성돼 있긴 했지만 30평도 안돼 보이는 공간이었다. 현장엔 워너 측이 랜덤으로 고른 '선택된 80명'이 모여 있었다. 심지어 '노쇼(No show)'가 있을 것을 기대한 몇몇 관객들은 줄을 서고 있었다.
 
관객들 대부분이 주로 20대의 젊은 학생들인 것도 의외. 이들이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공연이 아닌 '탑골공원' 같은 음악을 왜?  쉽게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질문하자 마자 거의 무장 해제. 그들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을 알았고, 거슬러 레드제플린까지 알게 됐다"며 '전설'의 공연에 초대된 것을 감격해 했다. 
 
이날 저녁 8시 존스는 카르투넨과 등장했다. 말없이 유령처럼 2층 회전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30초~1분여간 80여 관객의 열렬한 환호. 그윽이 쳐다 보다 환한 미소로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피아노와 첼로에 앉는 순간. 모든 이들의 상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연주는 거의 전위적인 기행에 가까웠다. 피아노를 채로 뜯고 첼로를 손으로 튕기는 실험을 강행했다. 1960~1970년대 국제 전위예술운동 플럭서스의 존 케이지가 환생한 느낌. 카페 겸 공연장인지라 현장에선 연주 내내 병이 부딪히는 소리와 냉장고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이들 연주의 일부처럼 들렸다. 
 
"아, 더는 못참겠다" 흥미로운 사건은 1부 공연 후 20분의 인터미션 때 터졌다. 이 유령같은 공연을 본 몇 기자들이 자리를 박차더니 집으로 향했다. 주변 객석에서도 허탈한 웃음만 공허히 돌았다. 레드 제플린 멤버가 온다 해서 왔더니, 이게 웬걸. ‘Stairway to Heaven’, ‘Rock and Roll’ 같은 명곡은 고사하고, 난해한 전위 예술에 가까웠으니. "이거 존스 옹, 브리핑이라도 하셔야 되는 거 아녜요?" 남아 있던 한 선배 기자가 워너뮤직 측에 말했다.
 
유령 같은 공연이었다. 무제(無題)였고 무조(無調)였다. 총 90분 동안 총 네 번을 끊었는데, 그걸로 네 곡을 연주했구나 가늠할 수 있는 수준. 불친절해보이는 공연은 그럼에도 존스의 미소로 마무리됐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그는 90도 굽혀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공연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여전히 치열한 현역에 박수를 건넸다.
 
공연이 끝나고 1시간 뒤, 유령은 망령처럼 들러붙어 다녔다. 취재 선배들과 근처 카페에서 짧은 티타임을 가지던 중, 워너뮤직 측의 다급한 메시지. "현장 떠나셨어요? 존스가 느닷없이 사인회를 열었어요." 사진이라도 찍어볼 요량으로 다급히 달려간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 
 
LP와 CD를 들이미는 관객들에 존스는 정성껏 사인 중이었다. 사인 득템에 성공한 20대 여성 팬들이 아이돌 가수를 맞닥뜨린 것처럼 환호를 질렀다. 
 
유령은 다시 서둘렀다. 내일 새벽 비행기로 일본에 가야했다. 검은 벤을 타고 그는 바람처럼 현장을 떠났다. 다정한 미소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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