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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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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음악감독 A씨 이야기①

2019-11-08 11:12

조회수 :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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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음안 안하기’ 및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작성하는 글입니다.

A의 꿈은 작곡가였습니다. 당시 음악은 도제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었고, A는 누군가의 도제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A는 도제를 그만 두고 KBS 음악프로그램 ‘가요톱텐’의 콘솔 엔지니어를 업으로 삼게 됐습니다. 어느 날 ‘가요톱텐’의 음향감독이 퇴사했고 A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A는 ‘가요톱텐’의 음향감독이 됐습니다.
 
A는 ‘가요톱텐’의 조연출 B를 만나게 됐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조연출은 프로그램과 관련, 허드렛일을 담당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돈독한 친구 사이가 됐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1998년 ‘가요톱텐’은 종영하게 됐고 두 사람은 KBS에 남게 됐습니다.
 
이듬해 KBS에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개그가 메인 콘텐츠이지만 음악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A는 ‘개그콘서트’의 음악 선곡자가 됐습니다. B는 KBS의 PD가 됐습니다. 미래를 약속했던 두 사람이 나란히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A는 ‘개그콘서트’에 쓰일 음원 소스를 발로 찾아 다녔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음악을 만들어서 그냥 개콘에 납품하면 더 일이 편해지는 거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A는 쿵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문제는 A가 음악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C를 회사의 작곡가로 고용했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개그콘서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A는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어느 날 B가 A에게 제안했습니다. “내 프로그램에 니가 음악을 납품해라”라고요. A에게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A와 B는 바늘과 실처럼 함께했습니다. 연출에는 B의 이름이, 음악 감독에는 A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게 됩니다. A는 2015년 KBS 연예대상에서 음악감독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웃긴 건, A는 이 때까지도 직접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을 만들 줄 모르는 데 어떻게 음악 감독이 됐냐고요? A는 C를 비롯한 작곡가들과 한가지 계약을 했습니다. 성명표시권을 가져가고, 저작권을 자신과 분배하자는 것이었죠. 성명표시권, 쉽게 말하면 저작물(음악)의 주인 이름을 마음대로 명명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C가 만든 음악의 저작권자는 A, 혹은 쿵엔터테인먼트라고 표기됐습니다.

C와 C의 동료들은 A에게 영혼과 노래를 빼앗긴 유령 작곡가였습니다. 한 달에 많게는 80만원, 적게는 무급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착취 시스템은 점점 더 견고 해졌습니다. A는 한 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에 임명됐습니다. 하지만 A는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C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A가 번거로운 교수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학교에서 작곡가의 꿈을 품고 있는 또 다른 C를 고용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C를 비롯한 유령 작곡가들이 음악을 만들고, A는 그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 방송국에 납품하고, B는 A의 음악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삽입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C를 섭외할 수 있는 인력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시스템입니다. C는 이 모든 과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약자였으니까요. 하지만 한 드라마의 OST를 작업하며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노동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뤄 대한민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JTBC의 ‘송곳’입니다.
  • 유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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