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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못다한 밴드유랑)어둠 향하는 침잠, 9와 숫자들의 현실 위로

2020-01-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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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의 가장 최근작의 깊이감은 한 편의 현대 소설에 견줄 수 있다. 총 40여분에 달하는 11곡은 현 한국 사회를 송곳 같이 짚어낸다. 공무원 시험 열풍, 부동산 투기 문제, 은퇴세대, 소수자들…. 인간, 세상을 향한 그들의 폭 넓은 감수성이 아른거린다. 가사와 달리 복고, 발랄한 사운드는 역설적이라 좀 슬프다.
 
문학적인 가사는 그들 음악의 큰 특징이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작사, 작곡 이전에 단편소설적인 글을 먼저 썼다. 곡 마다 다른 ‘A씨’를 가상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현대 소설처럼 풀어간다. 설정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은퇴한 남편과 다 큰 자식들 뒷바라지에 어린 손녀들까지 돌보느라 자신을 잊고 살아온 A 씨는, 라디오 노래자랑 코너에 출연하게 되면서 숨겨져있던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발견한다.(주부가요)'
 
'A 씨는 작가다. 몇 년 째 매달리고 있는 장편 소설은 영 풀릴 기미가 없고 인세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여 쪽 번역이나 논술 첨삭 등 닥치는대로 알바를 하며 버티는 중이다.'(24L)'
 
현실의 반영일까. A씨들 삶에서는 희망을 찾기가 힘들다. 이들은 해외로 떠나거나, 한강변으로 향하거나, 무언가를 깨닫는다. 장밋빛 희망을 좀체 볼 수 없는 신문 기사 같은 결론들. 실제 주변인들의 의견과 증언을 토대로 한 가상의 결론이나, 저녁 TV 뉴스채널에서 들려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들이다.
 
크리스마스를 일주 여 앞둔 평일 저녁. 망리단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들에게 물었다. '밝고 경쾌한 소리에 담은 이야기들이 왜 계속 어둠을 향해 침잠하는지.'
 
"희망을 억지로 보여주는 건 사기 같다고 생각해요. 그건 결국 각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다. 어쩌면 이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절망보다 무한한 희망 고문이다. 
 
밴드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각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연속된 정말은 자꾸만 생의 맨 밑바닥, 낭떠러지로 떨어뜨린다.
 
"절망의 상황에서 '괜찮아, 잘 될 거야' 라고만 하면 와 닿나요? 차라리 내 상황과 비슷한 절망의 신문 기사가 와 닿는 법이죠. 삶을 대변해주는 그런 음악이 되려 위로가, 위안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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