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바로알기' 교육 방치)②김경일 "경쟁 과몰입 사회, 아이는 도망치고 싶다"
김경일 게임과학연구원장 인터뷰
"무한 경쟁과 억압 외면한 채 '게임 제물화'"
"'게임 중독' 근거 못 대는 복지부, 인과관계 설명해야"
"등수 경쟁 외면 '게임 탓' 본말전도"
"매체 아닌 행위를 보는 사고·정책·관점의 성숙 필요"
2025-07-11 06:00:08 2025-07-11 06:00:08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게임이 부당하게 지목되면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의 원인을 과학적인 검증 없이 '게임 중독'으로 단정 짓는 검찰의 모습이나, 명확한 근거 없이 인터넷 게임을 중독 관리 대상으로 분류한 보건복지부의 행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여기에 "내 아이가 게임 때문에 잘못됐다"는 일부 보호자들의 맹목적인 확신까지 더해지면서, 무한 경쟁과 고독 속에 놓인 아이들이 겪는 실제 문제들이 '게임 탓'으로만 돌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입니다. 
 
지난달 27일 게임문화 가족캠프에서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바로 알기)' 강연을 마친 김경일 게임과학연구원장(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도 게임이 '제물화'되면서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내비쳤습니다. 
 
김경일 게임과학연구원장이 지난달 27일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 열린 게임문화 가족캠프에서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마치고 <뉴스토마토>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정부, '매체 탓' 함정 빠졌다"
 
김 원장은 "'게임 하면 바보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로 '활자(필사 아닌 인쇄본) 보면 바보 된다'는 시기도 있었다"며 시대마다 새로운 매체를 대하는 기득권의 태도가 게임에도 깃들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게임을 제물화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는 권위에 호소하는 순환 논증의 오류가 지목됩니다. 학계에선 세계보건기구(WHO)가 불충분한 연구와 합의를 근거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등재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중독자 재활 시설 운영 대상에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또는 게임 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 같은 규정이 이뤄진 배경과 관련해 <뉴스토마토>가 지난해 7월 질의하자, 보건복지부는 WHO의 '게임이용장애'를 근거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게임 중독 정신질환' 근거 모르는 복지부)
 
김 원장은 "민간기업은 이미 외국 것만 베끼는 '벤치마킹 병'을 벗어나 독자 기준을 만들고 있는데, 지금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구시대적 발상을 넘어 순환 모순에 빠졌다"며 "WHO가 무슨 자료를 참고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만들었는지 더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동일한 원인에서 출발한 인과관계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1970~80년대 TV를 열심히 본 아이들의 성장 결과가 제각각인데, 게임 열심히 한 학생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김경일 게임과학연구원장. (사진=이범종 기자)
 
김 원장은 현재 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도망칠 곳이 게임뿐인 환경이지만, 특정 매체로 화살을 돌리는 사회 풍토와 이에 편승한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김 원장은 "사회가 아이들에게 미친 듯이 공부로 경쟁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게임으로 '탈출'하게 돼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말초적인 데로 문제를 몰아간다"며 "정부 부처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살하고 싶은 아이들을 만들어놓고서 우리는 게임 다음으로 탓할 뭔가를 또 찾아다닐 것"이라고 한숨지었습니다. 
 
김 원장은 "게임 과몰입은 석차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짓을 그만두면 해결될 일"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싫거나 자신 없는 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소릴 듣고 싶어 진짜 원인은 못 건드리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김 원장이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책임 지울 대상 아닌 행위를 봐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행위 전반이 아닌 '게임'이란 매체에 초점을 맞춰 과몰입 예방 기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해외에선 모든 걸 대상화하지 않고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며 "운동, 심지어 공부까지 과몰입 유형을 연구하는 데 반해, 한국은 '게임'처럼 대상만 찾아다니니 본말이 전도돼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김 원장은 게임이 막연히 중독 물질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과몰입 상태인 게이머들이 존재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게임 과몰입 힐링센터 같은 곳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특정 매체가 아닌 행위를 살펴보는 '과몰입 예방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 원장은 "한국에서 좀 더 포괄적인 사고의 성숙, 정책의 성숙, 문제를 보는 관점의 성숙이 일어나야 한다"며 "이렇게 되기까지는 개별 사안에 집착하거나 함몰되는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미래를 낙관한다"며 "우리도 이른 시일 안에 그런 방향으로 갈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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