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혐오, 멋진 정치인 나오면 사라질 문제
2016-07-19 06:00:00 2016-07-19 18:13:48
최근 한국 정치는 어수선하고 위태위태하다. 박근혜 정부는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70대의 노장들이 수장을 맡고 있다. 한국 정치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정치 불신을 키운다. 특히 정부의 갑작스러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배치 결정은 설득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야당 정치인들의 행태도 미덥지가 않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사드 결정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반면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같은 당의 리더들마저 일관성이 없으니 어리둥절하다.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의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했지만 김 대표는 ‘문 전 대표 발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라고 한들 그게 재검토가 되겠냐’며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사드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줘야 할 야당의 두 정치인이 이렇게 엇박자를 내니 더민주 의원들의 갈등도 크다.
 
문 전 대표와 김 대표의 정치적 행보가 다른 것은 삼척동자도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문 전 대표는 진보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김 대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의 신념은 정치적 행동 결정에 중요한 요소다.
 
'자기 지각 이론'을 세운 심리학자 대릴 벰은 구체적인 신념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면서 어떤 행동을 자주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벰의 이론이 그럴싸해 보인다. 김 대표는 1981년부터 여·야를 넘나들며 비례대표로만 5선 의원이 됐고 신군부 세력 하에서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불과 몇개월 전 문 전 대표의 영입으로 느닷없이 진보의 옷을 입고 더민주를 이끄는 선장이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 가치도 신념도 뚜렷하지 않은 김 대표가 더민주의 가치나 신념을 대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문 전 대표는 무슨 생각에서 이런 정치인을 영입해 더민주의 운명을 쥐여 준 것일까.
 
프랑스 정치에서 김 대표처럼 신념이 모호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정치적 신념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2일 프랑스 사회당의 한축을 장식했던 미셸 로카르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로카르 전 총리의 죽음 앞에 우파인 시라크 전 대통령과 극우성향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까지 모든 프랑스 정치권이 경의를 표하고 그의 정치적 신념과 유산을 기렸다.
 
반세기 동안 올곧게 좌파의 가치와 정치적 신념을 지켜왔던 로카르 전 총리는 그의 삶만큼이나 당당하게 사회당 후배들에게 특이한 유언장을 남겼다. 로카르는 자신의 장례식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직접 집행해 프랑스의 경의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후 자신이 50년간 몸담았던 사회당 본부에서 마뉘엘 발스 총리가 집행하는 또 한번의 장례식을 치러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따라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7일 파리 7구 앵발리드에서 로카르 전 총리의 장례식을 집행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고인을 “프랑스 공화국의 멋진 거인”이었다며 “정치 가족에게 거역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고 좌파의 2인자로 이론가였으며, 1인자(미테랑)에게 엄격했지만 통치를 위해서는 두 개의 좌파가 단결해야 함을 아는 타협가였다”고 술회했다. 프랑스 민주노동동맹의 전 사무총장 에드몽 메르도 “시민들의 지혜에 호소하고 협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의 귀감이었다”고 추모했다.
 
나흘 후인 11일 사회당이 있는 솔페리노에서 치러진 장례식에서 발스 총리는 "소수자로서, 룰을 받아들여 1980년 미테랑과의 대선 결투에서 뒤로 물러난 로카르 전 총리 덕분에 이듬해 대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발스 총리는 "이 전략을 2017년 대선에서 좌파의 경쟁자들이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일깨웠다.
 
로카르 전 총리의 죽음 앞에 프랑스 정치권이 경의를 표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일관된 정치적 가치와 신념 때문이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면이 바로 이 점이다. 프랑스인들이 변함없이 정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로카르 같이 존경받는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치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멋진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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