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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법원, 헌법재판소도 폐기한 북한 주적론
2017-04-27 06:00:00 2017-04-27 06:00:00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하는 색깔론이 그것이다. 이번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결정 과정 공방으로 나타났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NLL 회의록이라는 색깔론이 선거를 지배했다. 포장은 다르지만 상대방 세력, 특히 민주세력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점에서는 같다. 색깔론이 매번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색깔론이 일반 시민의 공포를 자극하여 선거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포를 자극하려고 해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북한 주적론은 대한민국의 공식입장이 아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이를 따라서는 안된다. 대통령 후보들도 토론과정에서 이를 주장해서는 안되고 나아가 다른 후보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북한 주적론을 이용하면 표를 모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공식입장이 아니므로 이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북한 주적론은 35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북한은 남한에게 까다로운 존재다. 그리고 남한 역시 북한에게 까다로운 존재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평화와 협력을 해야 하는 존재이면서도 또 서로 위협이 되는 적대세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에서 대화와 안보라는 딜레마로 나타난다. 정치를 규범으로 정의하는 법률의 세계에서도 북한은 까다로운 존재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하면서 평화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에게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없는 평화는 없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완전히 신뢰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적이라고 단언해서도 안되는 존재인 것이다.
 
헌법만이 아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남북관계를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는 국가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로 본다. 그리고 정부에게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통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법률 중에는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도 있다. 어디를 보아도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대한민국 최고법원도 북한을 까다로운 존재로 본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992년에 북한을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고 보았다. 소위 북한의 이중적 지위론이다. 대법원도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나 동시에 남·북한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이중적 지위론도 문제는 있다.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지위와 반국가단체라는 성격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무엇이 더 우선적인가 하는 점이 불분명하다. 법이론적으로는 헌법에서 평화통일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지위가 더 우선한다. 현실에서도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 잘되면 반국가단체라는 성격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북한의 이중적 지위론은 논리적으로 치밀한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반헌법적인 북한 주적론이 계속 주장되는 현실적인 근거는 남북관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규정하는 것을 두고 이상이고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 규범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는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부른다. 미래를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 주적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대통령이 보수적인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보다 더 보수적이라면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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