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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

대통령 한마디에 끌려가는 교육 정책, 백년대계 맞지 않아

2023-06-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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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관련해 "공교육 교과과정 안에서 출제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그 파급 효과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발언 다음 날 교육부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수능 문제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 계획까지 밝히자 교육 현장은 올해 수능이 예년보다 쉬워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른바 '킬러 문항'(고난이도 문항)을 없애겠다고 공표해 '쉬운 수능'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이에 정부는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가 '쉬운 수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수습하고 있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킬러 문항을 과감하게 제거한다는 방향이 소위 말하는 '물수능'(쉬운 수능)은 결코 아니다. 변별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앞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의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출제 기법을 어떤 방식으로 고도화하겠다는 건지,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 교과서와 수업 내용 문제는 어떻게 할지 등의 의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교육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논리가 부족합니다.
 
교육 개혁, 입시 제도 개혁은 반드시 해내야 할 교육계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 한 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대통령은 '공정한 수능'을 말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입시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입 전형 시행 계획'도 1년의 여유를 두고 발표하는 겁니다. 올해 수능이 5개월가량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 지시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교육 현장은 혼돈의 도가니입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사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시업계는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준킬러 문항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준킬러 문항은 어떤 유형으로 나올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수험생들은 불안에 떨며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교육비 감소를 위해 공교육 교과과정 내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하라고 요구한 윤 대통령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하루빨리 이러한 혼란을 수습해야 합니다. 교육 문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해야 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풀어나가는 게 좋습니다.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대책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흔히 교육을 두고 '백년대계'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백년대계'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과정 내 수능 문제 출제' 언급으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걷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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