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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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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노동자 권리의 현 주소는

원청 책임 강화에 소극적인 정부

2023-12-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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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윤민영·김수민 기자]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길을 잃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의에서 부결돼 무산됐습니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처벌법도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2년 유예하는 등 후퇴했습니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잇따라 뒷걸음질치게 된 겁니다. 
 
노란봉투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후 결국 부결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사측이 무분별하게 손배소를 제기하거나 가압류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노란봉투법은 쌍용차 사태에서 유래했습니다. 2014년 법원이 근로자들에게 4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넣어 전달한 것이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번졌습니다.
 
노란봉투법을 확대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지난해도 크게 불거졌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동자들이 51일간 파업을 끝내자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나왔을 때, 하청 노동자들에게 원청과 교섭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기대감이 감돌았습니다. 파업 이후에 현장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이 소송 등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청 역할을 하는 재계는 물론 정부와 여권에서는 '불법 파업 조장'을 이유로 노란봉투법 반대에 나섰습니다. 올해 9월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하자 재계에서는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촉구하며 일제히 반발했습니다. 국내 산업 생태계가 수많은 하청 업체와 협력하도록 돼 있는데, 원청이 무조건 책임을 지게 되면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는 이유입니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재계의 요구를 들어준 겁니다. 그 영향으로 8일 21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열린 재표결에서 노란봉투법은 결국 부결됐습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범위 아냐"
 
법조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새로운 법안이 아니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시각입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에게 새로운 부담을 주는 게 아니고 본래 졌어야 하는 책임을 간접 고용 방식으로 회피해왔던 걸 제자리에 돌려놓는 법안인데, 노동자들의 노동 결과에 따른 이윤과 권한은 행사하고 노동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은 안 지게겠다는 건 불공정하다는 비판입니다.
 
실제로 노조법 개정안은 국제인권기구가 여러 번 권고했고,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ILO(국제노동기구)협약에도 부합합니다.
 
노동법 전문 김남석 변호사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만든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국민이 납득할만한 정당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며 "실제 해외에서도 조합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며 연대책임을 제한하는 것이 국제 기준으로 볼 때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 이용우 변호사는 "대통령 거부권의 사유로 삼았던 내용들은 사실관계·법리적 측면에서 볼 때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며 "소수 재벌 또는 대기업 원청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부권을 남용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모든 원청이 아니라 하청 사업과 노동에 깊숙히 관여하는 원청, 소위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으로만 한정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고 만약 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자 한다면 관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며 "관여는 다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은 법 뿐만 아니라 상식과 윤리에 반하는 행태"라고 덧붙였습니다.
 
중대재해법에도 부정적인 정부…허탈한 대법원 판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정부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적용을 2년간 미루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50인 이상 사업장 상황도 좋진 않습니다. 지난해 1월 법 시행 이후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여러 차례 반복됐지만 아직 최고 경영자가 실형을 받은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대법원은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무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원청대표인 김병숙 사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김씨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이전이라 사고 발생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됐습니다.
 
문제는 산재의 책임을 원청 경영책임자에까지 지우게 해 하청 노동자에게도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원이 소극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처벌이 약한데, 법안 확대 적용까지 유예될 분위깁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이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취지에서 반복적으로 정부와 여당이 얘기를 해 왔기에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는 법을 사실상 완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며 "검찰도 하한형에 가까운 아주 약한 구형만 지속하고 법원도 여기에 부응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용우 변호사는 "60% 이상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을 배제하고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본질과 취지가 구현될 수 없다"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그동안 3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는 유예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단계"라고 지적했습니다.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김수민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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