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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2019 가요 결산①)‘조작’하고 또 ‘조작’하다…‘신뢰’ 잃은 가요계

발라드 강세 속 불거진 ‘음원 사재기’ 의혹

2019-12-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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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유지훈 기자] 2019년 음원차트는 발라드 곡들이 꾸준한 강세가 돋보였다. 힙합, 아이돌 시장이 커지면서 설 자리를 잃었던 발라드 시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한동안 새로운 트렌드혹은 듣는 음악의 귀환라는 수식어로 풀이됐다. 하지만 대중은 조금씩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가온차트 상반기 차트(스트리밍, 다운로드, BGM 판매량 집계)에 따르면 엠씨더맥스 넘쳐흘러’ 1, 케이시 그때가 좋았어’ 3, ‘180’ 10, 하은(라코스테남) ‘신용재’ 11’, 임재현사랑에 연습이 있다면’ 23, 임한별 이별하러 가는 길’ 38, 열애중’ 41, 바이브 가을 타나 봐’ 43, 닐로 지나오다’ 46위 노을 너는 어땠을까’ 55, 먼데이키즈 가을 안부’ 84, 장덕철 알았다면’ 88위 등 발라드 가수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바이브, 황인욱, 전상근, 송하예, 장덕철. 사진/메이저나인, 스튜디오 오드리, 더하기미디어, 하우엔터테인먼트, 리메즈
 
하지만 이 100위권에 오른 몇몇 신인들의 활약에 몇몇 누리꾼들은 아무도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는 데 왜 차트 상위권에 있는 지 모르겠다며 쓴 소리를 뱉었다. 뮤지션의 인지도 및 노래의 인기가 음원 차트와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이는 음원 사재기 의혹으로 번졌다. 하지만 음원 사재기는 정확한 증거가 잡히지 않는 실체 없는 유령이었다. 의혹은 의혹일 뿐 제대로 공론화 되지 않았고 2019년 가요계는 그렇게 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블락비 멤버 박경의 SNS음원 사재기를 공론화시켰다. 그는 지난 24일 자신의 SNS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고 적었다. 몇몇 뮤지션들이 음원 사재기현상 자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적은 있지만, 이처럼 뮤지션이 동료 뮤지션을 직접 거론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파장은 엄청났다.
 
박경이 언급했던 뮤지션들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각 소속사들은아티스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법적 대응하겠다는 공식입장과 더불어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뮤지션들은 모두 강경한 입장이지만 누리꾼들과 다른 뮤지션들은 박경의 편에 섰다. 박경이 과거 발매했던 싱글 자격지심을 스트리밍하는 것으로 응원의 뜻을 전했고 성시경, 술탄오브더디스코 등이 음원 사재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내며 음원 사재기의혹에 힘을 실었다. 
 
박경. 사진/KQ엔터테인먼트, 박경 SNS
 
이처럼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은 음원 차트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발라더들뿐만이 아니다. 가요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던 Mnet 예능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 역시 투표 조작의혹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Mnet 예능프로그램프로듀스 X 101’은 지난 7월 뜨거운 화제성과 함께 종영했다. 최종 데뷔조 X1(엑스원)을 뽑는 마지막 방송에서 데뷔가 확실시 됐던 몇몇 연습생은 탈락했고, 그 빈자리에 몇몇이 이름을 올렸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에 희비는 엇갈렸다.
 
하지만 프로그램 종영 후 시청자들은 수상한 점을 포착했다. 공개된 1위에서 20위까지의 연습생들의 투표수가 7494.442의 배수라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리꾼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제작진에 해명을 요청했다. Mnet투표수 전달 과정에 오류는 있었으나 순위는 동일하다고 입장을 냈으나 논란이 계속되자 경찰에 공식적으로 수사를 요청했다. Mnet제작진의 개인 일탈로 일을 무마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로 그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기에 이는 Mnet의 결백처럼 내비쳐졌다.
 
투표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프로듀스 48'과 '프로듀스 X 101'. 사진/CJ ENM
 
수사가 시작되고 MBC ‘PD 수첩은 이 조작 의혹과 관련된 내용을 취재해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에는 MBK, 울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이 이 조작에 개입됐다는 증거들이 담겨 있어 충격을 안겨줬다. 검찰의 수사 결과 역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연출을 맡은 안준영 PD프로듀스 101’ 전 시즌의 생방송에서 시청자들의 유료문자투표를 조작해 특정 출연자에게 표를 몰아줬다. 그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올해 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버닝썬 게이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뮤지션과 그들의 소속사에 대한 신뢰, ‘음원 사재기의혹은 발라더들과 음원 플랫폼들에 대한 신뢰, ‘프로듀스 101’ 조작 논란은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모든 음악 경연 예능프로그램과 Mnet이라는 방송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프로듀스 시리즈 연출을 맡은 안준영 PD. 사진/뉴시스
 
가요계는 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콘텐츠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등 음악 산업 단체들은 최근건전한 음원·음반 유통 캠페인 윤리 강령 선포식을 열고 공정한 유통 환경 조성과 원활한 시장경제 활성 확립을 위한 윤리 강령을 발표했다.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9일 오후 2시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음원사재기 예방 및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 환경 조성을 위한온라인 음원차트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공정성 세미나를 열었다.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아티스트의 추악한 민낯부터 의혹으로 얼룩진 음원차트와 경연 프로그램들까지. 2019년은 가요계와 대중이 쌓아왔던 두터운 신뢰를 모두 잃게 된 한 해였다. 때문에 2020년은 그 신뢰를 되찾고, 상처를 봉합하는 데 많은 시간을 버리게 될 전망이다.
 
유지훈 기자 free_fro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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