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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글로벌사우스에 접근 중"…우리도 급하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세계는 미·중 세력권만 존재하지 않아
2024-04-26 06:00:00 2024-04-26 06:00:00
조태열 외교부 장관(사진=뉴시스)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의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이탈리아·일본) 플러스 가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에 가시적 성과를 축적해 감으로써 재임 기간 중 G7 플러스 후보국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합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올해 1월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참하게도 지난주 열린 G7 외교장관회의 초청국에서 조 장관 본인이 제외된 데 이어, 오는 6월 13~15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글로벌중추국가·G7플러스 강조해온 정부… G7초청 무산되자 토요일 밤 10시에 해명 자료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교 비전으로 내세운 윤석열정부는 '한국은 사실상 G8'이라며 'G7 플러스'를 강조해왔습니다. 이번에도 이탈리아 초청을 받아내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휴일인 토요일(21일) 밤 10시에 해명 자료를 낼 정도로, 부담을 크게 느낀 겁니다.
 
정부는 G7 중 유럽 국가가 주최지가 될 경우에는 주로 아프리카를 초청한다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처음 초청된 2020년 이후 올해까지 인도는 5번 모두 초청받아 참석했고, 이번에 이탈리아가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초청한다는 점에서, 궁색한 주장입니다.
 
야당들은 "대중(對中)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미·일을 비롯한 서방국과의 연대를 강화해 왔음에도 이런 결과라니 참담할 지경"(강선우 민주당 대변인), "윤석열정부가 이념외교, 가치외교로 일관한 탓에 정식 회원국은커녕 이제는 초청국이 되기도 어려울 것 같다"(조국혁신당 김준형 당선인)고 비판합니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에 편승하는 하위 파트너가 된 판에, 이미 미국과 일본이 핵심 참여국인 G7이 따로 한국을 부를 필요성을 느끼겠냐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국가안보전략연 이슈브리프 "북, 중·러 외교 한편 '글로벌 사우스'관계 개선에도 속도…새로운 변화"
 
눈길을 잠깐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19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최용환 박사는 '북한의 글로벌 사우스 접근 배경과 전망' 이슈브리프에서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이른바 '신냉전'구조 편승 전략에 집중하는 한편,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개선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올 1월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19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6차 유엔환경계획총회' △2월 브라질 상파울루오세 개최된 '세계직업연맹 이사회' △3월 몽골-4월 세네갈 국제농업 및 식료근로자동맹 제5차 회의에 각각 대표단을 파견했다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직접 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최근의 새로운 변화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대체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의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로 인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남아공,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입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해 1월 온라인으로 아시아·남미·아프리카의 125국 지도자들을 초청,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나헨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23년 1월 화상으로 열린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인도 외교부)
 
"현재 세계 구도,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G7 등 글로벌 노스-중·러 글로벌 이스트 구분하는 게 더 정확"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같은 이는 현재 세계 구도를 "인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G7과 여타 유럽 국가,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의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이 구분이 미·중 경쟁 속 세계 질서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더 유용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런 글로벌 사우스에 북한이 접근하는 목적을 최용환 박사는 △외교적 고립 탈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회피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글로벌 사우스 접근 전략 편승 등으로 분석합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입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북한에 얻어낼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는 오히려 이들이 북한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지난 2월에 북한의 전통적 형제국 쿠바가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바 있습니다.
 
사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단적으로 남한의 경제규모가 북한의 50배가 넘습니다. 그래서 최 박사는 우리가 경제, 문화, 외교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대외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인도와 아세안 등 신남방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주변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과 유사한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을 버렸습니다. 신남방정책이 글로벌 사우스를 모두 커버할 수 없지만 매우 유용한 정책접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윤석열정부 외교는 미국·일본 등 글로벌 노스에만 집중했습니다.
 
신남방정책 폐기한 윤석열정부, 이제야 "'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
 
이 정부의 첫 국가안보시장인 김성한 교수는 이달 초에 "'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다"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글로벌 사우스가 세계 질서 재편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김 교수는 윤 대통령의 '50년 지기'로 대통령 선거운동 시기에 이어 지난해 3월까지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을 이제야 알았다는 겁니까?
 
한국 외교사에 역대급 흑역사로 남을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상대가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인 사우디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웨스트의 심장 G7의 초청도 받지 못한 겁니다.
 
이제 우리가 북한보다 더 적극적으로 글로벌 사우스 외교에 나서야 할 때 아닙니까? 그나마 지난 19일 윤석열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런 면에서 다행이라 할 만합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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