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밤은 너구리 세상
2025-05-09 11:15:25 2025-05-09 15:11:52
야행성 너구리가 창경궁 화단에서 먹이사냥을 하고 있다.
 
너구리(Common Rraccoon Dog)를 직접 보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너구리를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그 생김새는 대충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고, 라면 이름으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너구리를 실제로 보신 분은 아주 드물어요. 너구리는 야행성 동물이라 어둠이 깔리면 활동하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너구리를 발견해도 강아지로 착각해 지나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 종묘 같은 고궁들은 밤이 되면 너구리 왕국으로 변한답니다. 특히 야간 개장을 하지 않는 창덕궁은 너구리 낙원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고궁을 찾는 상춘객이 유난히 많지만 오후 7시30분 마지막 관람객들이 창덕궁을 빠져나가면, 무서운 정적이 땅거미와 함께 몰려옵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고궁의 미관을 살리는 야간 조명등이 밝혀지자 창덕궁의 마루 틈새, 돌담과 정원숲에서 너구리가 눈치를 살피면서 하나둘 나타납니다. 사람이 전혀 없는 넓은 고궁의 밤은 그들만의 왕국이지요. 창덕궁과 이어진 창경궁을 합치면 약 80여마리의 너구리가 서식한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야간 출입이 안 되지만, 창경궁은 야간 개장을 하지요. 운 좋으면 창경궁 야간 개장 때 너구리를 만날 수 있어요. 
 
봄이 무르익는 5월 중순, 봄소식을 알려준 봄꽃은 대부분 떨어지지만, 연둣빛 신록은 초록으로 짙어지고, 맨살을 드러냈던 대지는 무성한 풀섶으로 변합니다. 특히 밤에는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나방도 활발히 움직입니다. 온종일 어두운 곳에서 숨어 있던 너구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아요. 축축한 땅을 헤집어 지렁이도 잡아먹고, 애벌레나 양서류는 물론, 운 좋으면 쥐도 사냥하지요. 심지어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통도 뒤진답니다. 너구리는 그야말로 잡식성이라 가을철에는 땅에 떨어진 과일이나 나무 열매도 즐겨 먹어요.
 
식육목 개과 동물인 너구리는 몸길이가 45~71cm, 꼬리는 12~18cm로 중형 개 정도의 크기며, 몸통에 비해 다리가 짧아요. 귀가 개보다는 작고, 개처럼 짖지도 않아요. 다만 ‘켓켓’ 거리는 경계음이나 자기들끼리의 소통은 소리로 한답니다. 수컷이 5~6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암컷은 4, 5월에 5~7마리의 많은 새끼를 낳아요. 물론 이들이 모두 생존하지 못하지만, 번식력은 왕성한 편입니다. 간혹 무리 사이에서 집단 싸움도 하는데, 세력권에서 밀리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합니다. 너구리들은 배설물을 한 곳에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일종의 세력권을 과시하고 경계선을 표시하는 행위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야행성인 너구리가 땅거미가 지고 한적한 창덕궁의 청사초롱 불빛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로는 유일하게 12월~2월 겨울잠을 잡니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활동하는 녀석들도 있어요. 야행성이지만 낮에 먹이 활동하는 녀석들도 종종 있고요. 밤에 활동하는 너구리가 자주 마주치는 동물은 들개와 들고양이랍니다. 특히 하천 주변을 따라 도심의 야산까지 서식지가 늘어나고 있는 너구리는 그들을 사냥할 수 있는 늑대나 범, 표범이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천적이 인간 빼고는 없다고 봐요. 너구리는 60~70년대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의 동반 희생자로 개체수가 급감했다가 지금은 전국 곳곳에 살고 있지요.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에 로드킬 된 동물 중 상당수가 너구리죠. 민가에 인접한 야산이나 하천가를 거닐다가 강한 노린내가 나면, 인근에 너구리 서식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너구리를 만나면 만져도 되냐고요? 절대 안 됩니다. 야생동물이 인간 손길에 접촉할 일은 없겠지만, 굶주린 너구리가 먹이를 주면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절대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너구리는 광견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 밖에 다양한 질병에 감염될 수가 있어요. 특히 자연에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고 인간 곁으로 접근하는 녀석은 병들고 지친 경우가 많습니다. 절대로 너구리를 직접 접촉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너구리와 접촉했을 수 있는 들고양이나 들개도 만지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제가 너구리를 너무 부정적으로 살펴봤나요? 너구리는 자연생태계에서 대표적인 청소동물이기도 해요. 그리고 숲이나 하천의 작은 동물들이 적정한 개체수를 유지하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해로운 쥐도 적절히 소탕합니다. 그리고 가족애가 아주 극진한 동물입니다. 동료의 몸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주며, 서로 돌봐주는 협동심도 강합니다. 특히 어릴 때는 서로 어울리며 사회성을 익히고 놀이도 즐기는 익살스러운 동물이지요. 비교적 흔한 동물이지만, 우리 인간 곁에서 더불어 살아야 할 자연의 친구입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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