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허위사실공표죄 조항을 손질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해당 개정안은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 구성 요건에서 '행위'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그런데 대선 직전에 법을 개정하려는 것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선거 땐 그나마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했던 정치인들이 그야말로 거짓말을 늘어놓아 선거가 혼탁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민심을 청취하는 '경청 투어'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경북 칠곡군 석적읍 인근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 대법 '이재명 파기환송' 선거법 개정 착수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를 향해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따른 후폭풍입니다. 특히 선거 시즌에 후보의 발언을 수사기관이 문제 삼는 것에 대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수사 대상에 따라, 재판부에 따라 선고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예 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8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엔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재산·행위·소속단체, 특정인 또는 특정 단체로부터의 지지 여부 등'에 관한 당선 목적의 허위사실 공표가 금지 구성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해 처벌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간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 게 사실입니다. 후보자의 본인 행위에 관한 발언을 징역이나 당선 무효 등으로 처벌하는 것은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주장입니다.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된 수사 또한 수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고무줄 잣대가 적용되고, 재판에서도 그 결과가 천차만별이었다는 점도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로 거론됩니다.
선거 사건을 수사해본 경험이 있는 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가 엄격하게 해석돼야 되는데, 확대 해석해버리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돼버린다"며 "행위에 관한 명확성 없는 법 적용은 악용될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씨 등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결정을 했던 검찰은 이 후보의 선거법 혐의는 기소를 했습니다.
허위사실공표죄 개정되면 윤석열·한덕수도 면죄부
다만 민주당이 이번에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씨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혐의도 면죄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대 대선 때 윤의는 배우자 김건희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김씨가 돈을) 네 달 정도 맡겼는데 손실을 봐서 돈을 빼고 절연했다"며 거짓 해명을 한 바 있습니다.
또 윤씨는 2021년 10월 국민의힘 2차 예비경선을 통과한 뒤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서 "우리 집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구약을 다 외우는 사람이야"라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한덕수 전 총리는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표현했다가 논란이 생기자 페이스북을 통해 "이 후보도 2014년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은 한 전 총리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면서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선거법이 개정되면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나비효과…'이재명 방탄입법' 논란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법원 안팎에선 대법원의 정치적으로 판결했고, 결과적으로는 선거에 개입했다는 지적을 쏟아냈습니다.
이에 지난 7일 서울고법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 후보의 파기환송심을 대선 이후인 6월18일로 연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법원 내외부의 어떠한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해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선 민주당이 선거법을 개정하려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경우 숙의 과정이 부족했을뿐더러 이 후보의 면소 판결을 위해 법 조항 자체를 없애려는, 사실상 '방탄 입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민주당이 개정하려는 선거법 조항은 이미 2021년 2월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1심에서 허위사실 공표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나용찬 괴산군수는 '행위' 부분이 불명확하고 처벌이 지나치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정 신청을 했다가 기각되자 직접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그런데 헌재는 "'행위'는 후보자의 자질 능력 등과 관련된 것으로 선거인의 후보자에 대한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사항으로 한정된다"고 했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행위' 부분까지도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것이고, 이를 제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나친 처벌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선거 중에는 '행위' 조항 때문에 후보자들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조항이 공정한 선거에 기여를 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이 조항을 형사법 대원칙으로 접근해서 피고인의 인권이나 죄형법정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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