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닭과 기후 정의
2025-07-17 06:00:00 2025-07-17 06:00:00
지난 10일 하루에만 7만 7천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전날에는 7만 4천이 사라졌다. 이틀 전에는 그 두 배인 15만 8천이 세상을 떠났다. 매년 여름 많은 닭이 세상을 등진다. 초여름 폭염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닭의 사체가 쌓인다. 
 
통계로 잡히는 폭염 폐사 가금류(닭·오리)의 거의 대다수는 닭이다. 나는 ‘기후변화의 최대 희생자는 닭’이라고 생각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사는 닭들은 불타는 태양 아래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간다. 기록적인 폭염이 덮친 2018년 여름에는 무려 812만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반세기 전만 해도 닭은 이렇게 죽어 나가지 않았다. 불볕더위가 드세지 않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닭에게는 더우면 피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축을 밀집 사육하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 농장이 많지 않았을 때다. 신영복 선생이 말했던가. 좁은 잠자리에서 칼잠을 자는 감옥에서는 옆 사람 체온으로 추위를 버틸 수 있는 겨울보다 옆 사람을 그저 37도의 열 덩어리로 증오할 수밖에 없는 여름이야말로 힘든 계절이라고. 닭에게도 여름은 악마의 계절이다. 
 
이 비극의 기원은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열린 한 농업 경연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미심장하게도 ‘내일의 닭’이라고 불린 이 대회의 목표는 ‘단 한 마리로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살이 실한 닭을 만드는 것이었다. 토실토실한 다리와 두툼한 가슴살을 가진 닭을 만들기 위한 품종개량이 시작됐다. 뉴햄프셔종과 코니시종을 교배한 캘리포니아주의 찰스 반트레스가 최종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거대 종자 기업이 그의 ‘내일의 닭’을 전 세계에 보급했다. 오늘날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닭은 모두 그 후예들이다. 70년 전 그들은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했다.
 
공장식 축산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 있다. 첫째는 품종 개량이다. 덕택에 빨리 자라고 살이 많은 동물이 탄생했다. 우리가 먹는 치킨은 닭이 아니라 병아리다. 닭의 자연 수명은 10년이지만, 불과 30~35일 만에 도축된다. 도계장에 실려 온 닭은 ‘꼬끼오’하고 울지 않는다. ‘삐악삐악’ 운다. 
 
둘째, 잉여 농산물이다. 대기 중 질소를 고정하는 하버-보슈법의 발명으로 인류는 동물의 똥 없이도 비료를 대량 생산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곡물 생산량 덕에 남는 곡물을 가축의 사료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항생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얻기 위해서는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 넣어야 했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 때 겪었듯이, 밀집 환경은 바이러스와 세균의 배양실로 탈바꿈한다. 농장주들은 항생제로 대항했다. 여기에 항생제에 성장 촉진 효과가 있다는 게 발견되면서 항생제는 남용됐고, 지금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조용한 팬데믹’이라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가지 위험 중 하나로 지목한다.
 
기후 위기는 닭의 역사에 또 다른 비극의 장을 쓰고 있다. 더위가 몰아치는 곳마다 닭의 사체가 쌓인다. 우리가 기후 정의를 이야기할 때, 기후 위기로 누가 피해를 보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묻는다. 그 질문에 닭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들 역시 기후 위기의 피해자이며 존중받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폭염 폐사를 줄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을 지원한다. 그 돈의 절반만이라도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장려하는 데에 써야 하지 않을까?
 
닭은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다. 우리는 아침 식사로 삶은 달걀을 선택하고, 야구장에서 치킨을 먹으며 응원하고, 인플루엔자 백신을 유정란에서 배양한다. 닭과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기후·환경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해 방문한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도시 거리를 활보하는 ‘길닭’을 보았다. 소유되거나 갇혀 있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꾸리는 반야생 닭이었다. 길닭은 대낮에는 그늘에서 쉬고 해가 지면 벌레를 쫓았다. 후미진 곳에 알을 낳기도 했다. 우리는 닭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도 이 새로부터 점점 멀어지지 않았는가? 닭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나는 닭의 다양성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움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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