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일탈 회계' 도마…생보사들 전전긍긍
2025-08-07 14:06:27 2025-08-07 15:00:08
[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IFRS17 회계가 새로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보험부채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른바 '일탈 회계' 논란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유배당 상품의 부채를 과거 회계기준으로 처리하면서 재무제표상 건전성이 실제보다 우량해 보이도록 왜곡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IFRS17 회계기준대로 바꿀 경우 보험사 입장에서는 회계상 이익과 배당 여력이 줄어들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IFRS17 도입 취지 무색"
 
(그래픽=뉴스토마토)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회계기준원은 생보사들의 일탈 회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습니다. 일탈 회계란 회계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오히려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회계 처리 방식입니다. 국내 생보사들은 과거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의 자금을 IFRS17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처리하고 있는데, 회계기준원은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기업 회계의 국제적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글로벌 회계기준입니다. 보험사는 2023년 이전까지 IFRS4를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IFRS4는 보험사의 보험부채를 평가할 때 각 보험사마다 서로 다른 회계 처리 방식이 허용돼 재무제표 간 비교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3년부터 국내에 IFRS17이 도입됐고, 보험부채를 시가 기반으로 평가하도록 해 일관성과 비교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유배당 보험 계약자의 자금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항목으로 분리해 회계상 예외를 적용하고 있어 IFRS17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IFRS17에서 보험부채는 '최선추정부채(BEL)', '위험조정(RA)', '계약서비스마진(CSM)'으로 구성됩니다. 최선추정부채는 보험사가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과 각종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입니다. 회계상 확정된 부채로 소비자에게 반드시 돌려줘야 할 돈입니다. 
 
위험조정은 미래 불확실성을 반영해 예측이 빗나갔을 경우를 대비한 여유자금입니다. 계약서비스마진은 아직 수익으로 인식되지 않은 미래의 수익입니다. 당장은 부채지만 보험사가 계약 기간 동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간에 따라 수익으로 전환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생보사들이 유배당 보험 부채를 IFRS17 기준에 따라 보험부채로 인식하지 않고,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항목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IFRS17 회계 방법상 소비자에게 지급할 가능성이 높고, 금액도 예측 가능하다면 보험부채로 인식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최선추정부채에 포함돼야 하며, 재무제표상으로는 '책임준비금' 항목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국내 생보사들은 배당 예정 금액을 보험부채로 처리하지 않고, 계약자지분조정으로 분리해 표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을 사용하는 보험사는 지난 1분기 기준 △삼성생명(032830)(8조6719억원) △교보생명(947억원) △한화생명(088350)(86억원) △동양생명(082640)(60억원) 등이 대표적입니다. 삼성생명을 제외한 보험사의 금액을 모두 합하면 1200억원 수준입니다. 
 
박정혁 회계기준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생보사는 IFRS17를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적용하고 있다"며 "일탈 회계 철회와 IFRS17 원칙 복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사는 회계상 규모가 크지 않아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며 "당장 재무제표가 바뀌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022년 생보사들이 IFRS17 재무제표 내에서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을 '부채'로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습니다. 당시 삼성생명은 생보사를 대신해 그간 부채로 표시해온 계약자지분조정을 IFRS17 상에서 K-IFRS 제1001호 문단 19를 적용해 '계속 부채'로 표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금감원에 질의한 바 있습니다. 금감원은 예외적 회계 처리 여부는 각 보험사 경영진이 판단할 사안이며, 보험업감독규정상 이를 명확히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일탈 회계를 용인했던 것입니다. 
 
유배당 계약자 소송 움직임도
 
일탈 회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과거 유배당 보험 관련 소송에 나섰던 일부 계약자들도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험소비자연맹은 지난 2011년 삼성생명의 유배당 보험 계약자 2802명을 모아 미지급 배당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미실현 이익(계약자지분조정 항목)에 대해 유배당 계약자에게 돌려줄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인정해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삼성생명은 과거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의 자금으로 삼성전자 주식 약 5440억원어치를 매입한 바 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 주가가 상승하면서 지분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0조원에 달합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는 전제 아래 해당 자산을 계약자지분조정 방식으로 회계 처리해왔습니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매각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이후 회계기준이 IFRS17로 변경됐고, 삼성생명이 지난 2월 삼성전자 주식 425만주를 매각하면서 일탈 회계 문제가 다시 공론화된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자 일부 지분을 처분했습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이 다시 소송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기도 했고, 회계기준도 논란이 많아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본사 사옥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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