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뙤약볕을 피할 수 없는 바다 위 어선들이 숨 고름을 내쉽니다. 그물 이양기와 하역 컨베이어벨트 굉음 사이로 외국인 어선원들이 하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목포 부두. 그 뒤로 간판 위 눈빛을 날카롭게 번쩍인 건 선장이 아닌 어선원안전감독관들입니다.
어선의 주요 안전 점검 항목에 날을 세우는 등 결속줄을 당겨보고 구명조끼·소화기 게이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적발을 위한 사정보단 '생명줄'을 단단히 묶으려는 어선원들의 파수꾼으로도 통합니다. 지난 11일 현장에서 만난 한 감독관은 "어선 안전 검사 때마다 어떤 선장들은 또 검사냐고 쓴웃음을 보이곤 한다"면서도 "반복하는 안전 절차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조업 환경의 어선원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 11일 <뉴스토마토>가 목포 부두 현장을 찾아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소속 어선원안전감독관의 점검 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어선원 재해율 육상보다 '14배↑'
바다 위 어선원의 재해율은 육상 노동자보다 14배나 높습니다. 어선원 안전은 육상과 달리 여전히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어선 어업에서 발생한 사망·실종 사고는 연평균 93.4건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산업 평균보다 14배 이상 높은 수치로 매년 2000여건의 어선 사고로 100명 안팎의 어선원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장 관계자는 "육상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대통령이 직접 챙길 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만 바다 위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어선원 사망사고는 소식조차 잘 전해지지 않는다"며 "관심과 지원이 육상과 비교해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어선원 안전은 '잊힌 재해'로 남아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때문에 올해 1월3일부터 어선원 안전·보건 관리 권한이 해양수산부로 일원화되면서 정부는 어선원안전감독관 제도를 본격적으로 가동한 바 있습니다. 임무가 부여된 곳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입니다.
법 시행 원년, 현장을 찾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소속 어선원안전감독관의 점검 과정을 보면 단순히 형식적인 확인이 아니라 실제 위험 요인을 찾아 개선을 유도하는 치밀한 행정 이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선원의 '생명줄'을 고민하는 감독관의 날 선 눈빛과 궤를 함께한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1일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소속 어선원안전감독관이 목포 부두 현장에서 어선 안전 점검을 이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처벌 공백'…또 다른 사고 위험의 '싹'
문제는 어선 안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행정조치에만 의존하는 '권고의 메모'라는 점입니다. 수사와 처벌을 통한 '법의 칼'을 지닌 육상과 다른 형평성의 차이가 곧 효율성의 한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육상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부터 조사, 처벌, 보상까지 일원화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산업안전보건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사고 예방에서 사후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사하는 반면, 현행 어선원안전감독관은 행정명령을 내릴 뿐, 불법행위를 적발해도 직접 수사로 전환할 권한은 없습니다.
사고 원인을 발견해도, 불법 개조를 적발해도, 이들의 손은 거기까지입니다. 수사권은 없고 행정명령만 가능하다 보니 결국 사법 당국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시간의 공백'은 또 다른 사고 위험을 싹 트입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육상은 법의 갑옷을 입었지만 더 위험한 바다에서는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환경을 말해줍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안을 즉시 수사하는 등 특별사법경찰권이 부여된 육상 사업장의 근로감독관과 형평성·효율성에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 일자, 법안이 올라왔지만 현재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김준석 KOMSA 이사장은 "사전 예방 조치와 법률상 의무 이행 사항을 쉽게 설명한 어선원 안전보건 매뉴얼 개발 및 고도화, 어선 사업장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챗봇 기반 위험성 평가 플랫폼 구축, 위험성 평가 기준 마련과 같은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사업 결과를 현장 점검을 통해 어선주와 어선원들에게 안내하고 어선원안전감독관의 지도감독 사항을 지원해 어선원들로 하여금 선제적인 사고 예방 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자율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며 "계류 중인 법안의 통과로 어선원안전감독관 업무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확보하고 어선원 안전·보건 체계는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11일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소속 어선원안전감독관과 수협중앙회 목포어선안전조업국 직원이 목포 현장에서 어선 안전 및 안전 조업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칭)어선안전보건기금 필요성"
보완이 필요한 '미완의 다리'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선법에는 '안전'뿐만 아닌 '보건'도 명문화돼 있습니다. 열악한 조업 환경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비율은 약 16.2% 수준입니다. 최근 한국항해항만학회지의 선원에 대한 신체검사 제도 비교연구를 보면, 어선원의 연간 유병률은 육상 노동자보다 73.5%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대한결핵협회와 협력해 전국 주요 항구와 어촌을 찾아가는 건강검진 사업에 착수했지만 실질적 현장 맞춤형의 종합 보건 안전망이 요구되는 실정입니다.
이중 '클린 조업 환경 조성 지원' 사업은 위험·노후 어선의 기계·공정 개선 및 스마트 안전장비 보급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관련 예산은 올해 20억원에서 내년 40억원으로 편성됐지만 육상의 안전보건기금 제도에 비하면 매년 확보해야 하는 단기성 사업인데다. 안정적 추진에도 우려가 높습니다. 사각지대의 바다에도 육상의 안전보건기금 제도처럼 안정적 지원을 위한 기금 제도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목포=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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