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벤처 지원도 서울 공화국
2025-10-22 06:00:00 2025-10-22 06:00:00
정부가 벤처·창업 생태계의 지역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자금의 흐름은 여전히 수도권에 갇혀 있다. 오세희 민주당 의원이 1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모태펀드 투자액의 73.8%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43% 역시 서울·경기·인천으로 몰렸다. 지역 균형발전이 여전히 정책 구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중소기업·벤처기업·신산업 육성을 위해 출자한 자금으로 조성된 펀드다. 그러나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총 12조8939억원 가운데 9조5235억원이 수도권으로 흘러갔다. 서울이 전체의 절반(51.1%)을 차지했고, 경기도가 20.4%였다. 반면 비수도권 14개 시도의 투자 비중은 26.2%에 불과하다. 부산의 모태펀드 투자액은 3579억원으로 전체의 2.7% 수준이고 강원도는 1642억원(1.3%), 전남은 528억원(0.4%)에 그쳤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흐름도 비슷하다. 최근 10년간 집행된 정책자금 총 17조1199억원 중 수도권의 집행액은 지방 평균보다 3.5배 많았다. 이는 지역 중소기업의 성장 기반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7년까지 1조원 규모의 '지방시대 벤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비수도권 14개 시도에 최소 1개 이상의 벤처펀드를 설립하고 올해 모태펀드 지방 계정 출자액도 2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정책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돈을 얼마나 푸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역의 창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멘토 네트워크 등 창업 생태계를 뒷받침할 기본 인프라가 부족하다. 지역 대학을 기반으로 첨단기술 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투자 단계로 넘어가면 전문 인력과 자본의 한계로 결국 수도권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금만 공급되는 하향식 구조로는 지역 내 선순환이 일어나기 어렵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금의 분산이 아니라 역량의 분산이다. 수도권 운용사가 형식적으로 지역 펀드를 위탁 관리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지역 운용사가 자금을 맡는 구조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도권의 대형 운용사가 지역에 거점을 두고 투자, 인력 양성, 현지 기업 발굴에 직접 나서며 지역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 지역에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넘어 '머무르고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주목받는 국민성장펀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정부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의 40% 이상을 비수도권에 투자해 지역 균형발전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민성장펀드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 산업 생태계를 확장하는 마중물이 된다면 고무적이다. 다만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자금이 단순한 지역 안배에 그치지 않도록 운용에 대한 책임과 지역 기여도를 체계적으로 평가·관리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금이 머무는 곳에 혁신이 피어난다. 수도권 중심의 성장이라는 오래된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돈이 지역으로 흐르고 사람과 기회가 함께 머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은 자금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의 문제다. 
 
오승주 정책금융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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