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기자] 이마트와 한앤코가 각각 신세계푸드, SK디앤디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습니다. 여지없이 낮은 공개매수 가격 때문에 논란입니다. 삼화페인트는 상당량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단 1주도 남기지 않고 처분해 비난을 샀습니다. 정부의 주주 권익 강화 행보를 비웃듯 기업들의 행동은 과감해지고 있는데 제도 마련은 더디기만 합니다.
자산가치 40% 가격에 공개매수 ‘반발’
16일 신세계푸드는 주식시장에서 100원 오른 4만7900원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전일 이마트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급등했던 주가가 이날은 공개매수 가격 부근에서 횡보한 결과입니다.
이마트는 전일 이마트는 공시를 통해 자회사인 신세계푸드의 주식 전량을 주당 4만8120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가격은 신세계푸드의 최근 12영업일 평균 종가 4만100원보다 20% 높다는 설명입니다. 이마트는 신세계푸드의 지분 55.47%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전체 주식을 매입, 완전자회사로 편입해 상장폐지할 방침입니다.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의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문제는 공개매수 가격입니다. 신세계푸드는 현재 증시에서 극심한 저평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4만8120원의 공개매수 가격은 3분기 말 주당 순자산(BPS) 8만2000원의 60%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다만 4년간 약세가 계속된 탓에 공개매수 발표로 급등한 주가는 2023년 3월 이후 최고가에 해당합니다. 단숨에 4만8000원에 바싹 다가선 덕분에 최근에 매수한 투자자들은 단기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됐지만, 장기 성장을 믿고 보유 중인 주주들은 너무 싼 가격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신세계푸드는 2021년만 해도 10만원을 넘었고 2015년엔 20만원대에서 거래됐습니다. 수년째 영업이익이 200억원대에 정체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기업가치 대비 너무 싼 가격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법안 추진이 늦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실망도 커지는 분위기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내용이 적힌 문서를 들고 김병기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SK디앤디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모펀드 한앤코개발홀딩스는 SK디스커버리로부터 SK디앤디의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후 지난 10월 한 달간 추가로 공개매수를 진행했습니다. 주당 1만2750원에 나머지 주식 전량(696만주)을 매수할 계획이었지만 이중 279만주만 응했습니다. 이에 한앤코는 2차 공개매수에 나섰고 남은 주식 416만주를 같은 가격에 사들이겠다며 이달 26일까지 공개매수를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SK디앤디 또한 극심한 저평가 상태여서 1차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주들이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SK디앤디의 BPS는 한앤코가 제시한 가격의 2배가 훌쩍 넘는 3만2000원입니다. 즉 공개매수가는 SK디앤디 자산가치의 40%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주가도 공개매수 가격에 바싹 다가서 한앤코의 공개매수에 참여할 유인이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사주 238만주, 1주도 안 남기고 처분
저가 공개매수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편에선 자사주 매각 행렬 때문에 난리입니다.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지정한 교환사채(EB) 발행을 통해 자사주를 처분하는 기업들의 공시가 올 하반기 내내 이어졌는데요. 이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자 최근엔 EB 발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자사주를 우호세력 등에게 넘기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눈치를 보던 기업들이 금융당국의 무반응에 과감해진 것입니다.
최근 나라셀라, 대창, 문배철강, 무학 등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매각했습니다. 형식상으론 운영자금, 시설자금 마련 등의 목적을 내세웠지만 관계회사나 우호 세력에게 넘겨 해당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유지, 전체 주주의 자산을 현 경영진에 이롭게 활용하는 식입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삼화페인트는 EB와 직접 매각을 전부 동원했습니다. 삼화페인트 지난달 28일 전체 지분의 8.8%에 달하는 자사주 238만 중 138만주를 전일가인 주당 5790원에 일본 추코쿠마린에 매각했다고 공시했습니다. 같은 날 추코쿠마린도 지분 변경 공시를 냈습니다. 자사주를 매각한 명분은 파트너십 강화입니다.
또한 나머지 자사주 전량인 100만주도 EB를 발행, EB의 교환 대상으로 지정해 처분한다고 별도 공시를 냈습니다. 이 EB는 14개 사모펀드들이 나눠 인수했습니다. 그 결과 삼화페인트는 8.8%나 되는 자사주 중 일반 주주 몫으로는 단 1주도 돌아가지 않도록 결정한 것입니다. 정부의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 추진이 무색해진 결과입니다.
특히 삼화페인트는 현재 공동창업주인 김복규 회장, 윤희중 회장의 2세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우호세력에게 자사주를 처분한 경우여서 더욱 논란을 샀습니다. 삼화페인트의 대주주인 김장연 회장과 또 다른 대주주인 윤석재씨는 공동 창업주의 2세입니다. 2013년 윤석영 사장이 사망하면서 갈등이 시작됐고 당시 김 회장 측이 경영권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지분 구도는 김 회장 측 27.39%. 윤석재 측 20.10%로 크게 기울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자사주를 추코쿠마린에 넘기면서 5% 미만이던 우호 세력 지분이 9.19%로 크게 불어났습니다. 주주환원 목적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공개매수가 현실화 법안 ‘하세월’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각종 제도 개혁이 올 한 해 주식시장을 휘몰아쳤지만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만큼은 추진 속도가 느려진 데다 수위도 시장의 기대보다 낮아진 상황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들에게 일종의 자신감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공개매수 가격 현실화 방안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이 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해 논의 중입니다. 공개매수 가격 산정 시 주가는 물론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공정한 합병가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그 가액이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순자산가치를 가액으로 간주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법안은 지난 6월16일 발의했으나 아직도 심사소위 단계에 머물러 있어 주주들 속을 태우고 있습니다.
한편 김장연 회장은 올해 6월 딸 김현정 부사장에게 지분 3%에 해당하는 81만주를 증여했습니다. 이에 일부 주주들은 자사주 빼돌리기를 비판하면서도 김 부사장의 증여세 마련을 위해 삼화페인트가 이번 결산에서 배당을 키울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이에 주식 커뮤니티엔 “내 자사주는 자기들 마음대로 해먹고 세금용 콩고물이나 기대하는 신세”라는 하소연이 올라오는 등 자사주 처분이 끝난 후에도 투자자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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