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통일교 특검과 스케일 큰 정치
2026-01-07 06:00:00 2026-01-07 06:00:00
지금 한국의 정치는 통일교 때문에 시끄럽다. 여야가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를 파헤치는 특검에 합의했으니 곧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당분간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소동은 세월이 흘러도 현실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통일교의 체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통일교와 권력의 관계를 실감한 계기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었다. 1학년만 있는 교양과정부에 국제학술토론회가 원리연구회 주최로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 참석했다. 그런데 너무나 엉뚱하게도 여러 명의 백인 청년 남녀가 교대로 나와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요지의 발언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통일교 집회라는 것을 알게 된 필자는 시간도 아깝고 짜증이 나서 퇴장했다. 남아 있던 학우들은 강평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학술적인 내용이 전혀 없다”는 비판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전하며 웃었다. 이것은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되기 직전인 1972년 봄에 있었던 촌극이었다. 불과 몇 달 전인 1971년 연말에 교련을 반대하는 학생들을 대량 제적하고 강제로 입영시킨 위수령 사태의 여진이 남아 있어 캠퍼스의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주체성'을 내세우며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었으니 통일교와 코드가 맞았다. 
 
1975년 4월30일에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박정희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하며 일체의 시민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겨울 공화국을 만들었다. 이 때 갑자기 서울 거리에 젊은 서양인 남녀들이 대거 등장해 전단을 나눠 주며 반공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서울에 국제적인 대형 반공 집회를 조직해놓고 참가를 독려하는 통일교의 행동이었다. 통일교는 사법 살인을 자행하던 유신정권을 돕고 있었다. 
 
1983년에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려 일본 도쿄대에 도착한 필자는 코마바에 있는 교양학부 캠퍼스 문전에서 원리연구회와 공산당이 대치하면서 허공에 대고 아무도 듣지 않는 연설을 열심히 하고 있는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가끔 둘이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소식도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대중과 괴리된 “진리의 신봉자”라는 측면에서는 양자가 동일했다.
 
김건희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통일교 압수수색에 들어간 지난해 7월18일 오후 경기 가평군 천원궁 앞에서 통일교 외국인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의외로 양자는 생명력이 강했다. 풍요한 경제 대국에서 공산당은 세력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소멸되지도 않았으며 고정 지지층을 기반으로 소수 정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공을 표방하는 통일교는 자민당 일각의 지원을 받아가며 신흥 종교로 정착했다. 통일교 피해자가 저지른 아베 신조 전 총리 암살 사건은 역설적으로 일본 통일교와 자민당의 끈끈한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 개방과 고령화로 전통적 지지 기반인 농민과 자영업자 층이 구조적으로 위축되는 위기 상황을 맞아 자민당 의원들은 정치자금 모금과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지역구 사무실도 지켜주는 통일교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통일교는 집권 세력의 비호를 받아가며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특검을 통해 한국 정치와 통일교의 관계가 부분적으로나마 밝혀지면 사회적 지탄과 분노도 치솟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광복 80년을 넘었는데 아직도 한국의 정치가 종교집단에 휘둘릴 정도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즉,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가 정착하려면 여야 직업 정치인들부터 유권자인 시민 탓을 하지 말고 단기 이익 창출에 집착하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 DJ, YS와 같은 스케일 큰 정치인이 그리워진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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