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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2일 16:52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가 지난해 상반기 정점을 찍고 하반기 일부 회복되는 흐름을 보였으나 올해는 수요 둔화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들은 이러한 전망을 증명하듯 전기차 생산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국내 배터리사와의 대규모 계약을 해지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전기차로의 전환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견고하다. 중장기 성장성을 믿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IB토마토>는 올해 전기차와 관련 산업 전반의 업황을 짚고, 향후 흐름을 전망·분석해본다. (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꼽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SS 배터리는 전기차 배터리에 비해 공급 물량이 적은 데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중국과의 가격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도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사진=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캐즘 직격탄…잇따르는 대규모 계약 해지
12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9월 전기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세액공제를 종료하면서 전기차 시장의 수요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대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ESS 배터리 생산으로 빠르게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구 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24년 약 415TWh(세계 소비의 약 1.5%)에서 2030년 945TWh 수준으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AI 워크로드를 주요 성장 동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24년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력의 약 4%를 사용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이 비중이 9~12%까지 치솟아 기존 수요자와 '전력 쟁탈전'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AI·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증설과 재생에너지 연계 전원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 ESS가 전력 피크부하 완화, 주파수 조정, 백업 전원 등 전력계통 보조서비스의 핵심 옵션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ESS 시장은 2025~2030년 동안 약 21~22% 수준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며, 설비 용량 기준 2025년 49.5GW에서 2030년 131.7GW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V 라인을 ESS로…배터리 3사 긴급 체질 개선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이처럼 급성장하고 있는 ESS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 개발과 설비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ESS 시장에서는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화재 위험성이 낮은 LFP 배터리 채택 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NEF(BNEF)는 오는 2027년 전 세계 ESS 시장에서 LFP 채택 비율이 94%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SDI(006400)는 인디애나 스텔란티스 합작공장의 일부 삼원계(NCA)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LFP 기반 ESS용으로 전환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의 합작공장 라인 일부가 ESS용 LFP 생산으로 전환됨에 따라 ESS 출하량이 2025년 12GWh에서 2027년 20GWh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SDI는 올 연말쯤 미국 내 ESS용 배터리 생산 능력을 연간 30GWh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SK온 역시 올해 하반기부터 ESS 전용 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한다. SK온은 북미에서 확정 1GWh, 우선협상권 6.2GWh를 포함해 잠재적으로 10GWh 이상의 ESS 공급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북미 공장의 일부 전기차 라인을 ESS 생산으로 전환하고 조인트벤처(JV) 공장 활용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오는 6월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또 일부 LFP 전용 라인을 ESS 및 전력망용으로 우선 투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유의미한 수익성 개선 효과는 ‘물음표’
문제는 업계 내에서 ESS 배터리 시장 자체가 전기차 시장보다 작고 계약 구조가 달라 실적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새로운 모델 출시에 맞춰 6~10년씩 장기 계약을 맺지만, ESS 배터리는 데이터센터 구축 기간인 2년 정도의 일회성 계약이 대부분이어서 차기 수주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주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AI 시장 확대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량이 500MWh에서 1GWh 수준으로 커졌지만, 연간 100GWh급 기가팩토리를 운영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전체 가동률의 1%도 채우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최대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단일 계약이 3~4GWh 수준인데, 100GWh급 설비에서는 라인 몇 개만 돌리면 되는 정도라 원가 절감이나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기준 SK온의 공장 가동률은 52%,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51%, 44%에 그쳤다. LFP 배터리 수주가 늘더라도 가동률을 급격히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업계 한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데이터센터 시장 성장이 ESS 수요를 견인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주로 저가형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집중돼 있다. 이미 중국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주 잔고 숫자는 늘어날지 몰라도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 기여도는 전기차 배터리에 비해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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