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기호 선임기자] ‘소설 쓰는 건축사’ 백희성 KEAB 대표가 24일 뉴스토마토 <이광재의 끝내주는 경제>에서 “건축·설계에서 20명이 6개월 걸리던 일을 AI(인공지능) 도입 후 2명이 1주일에 한다”며 “허드렛일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질문하고 사유해야 한다”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백 대표는 단순히 타인의 말을 받아 적는 필기가 아닌 ‘자기 질문’으로서의 기록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어떤 문장을 적어놓고 ‘자기 질문’을 쓴 뒤 ‘눈으로 뇌가 보고’ 인식하는데, 어떤 질문은 20년째 답변이 없고, 어떤 질문은 예닐곱 번씩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건축사로서 베스트셀러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백 대표는 “10년 전 적어둔 아무렇지도 않은 한 구절의 문장이 기록 속에서 발효됐기 때문”이라며 “쓸모없어 보이는 메모들이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사람’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이 백희성 KEAB 대표에게 기록하는 습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사진 = 뉴스토마토)
“실패를 뺏기지 마라” 아버지의 조언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백 대표에게 실패를 통해 고유한 경험을 쌓을 것을 조언했습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으로 아버지께서 ‘실패를 뺏기지 말고 조언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업한다면 대부분이 반대하지만 그들 중 99%는 창업 경험이 없고, 1%는 창업 후 망한 사람인데 망해서 얻은 결론은 다 다릅니다. 각자 실패 속에서 얻는 경험이 다른 거죠.”
백 대표는 “사람의 경험은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라며 은퇴한 소방관의 스토리를 담은 전북 군산시의 ‘공감선유’와 7가지 성경 이야기를 공간화한 경기도 여주시의 ‘포레스트 AG405’ 등 자신이 진행한 건축 공간을 소개하고, “선택된 경험이 바로 기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서는 ‘종묘’의 사례를 인용했습니다. 그는 “종묘 바닥이 울퉁불퉁한 이유는 권력자라도 걸어갈 때 넘어지지 않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기 때문”이라며 “겸허함을 가르치는 건축 장치”라고 설명하고,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빈치의 천재성 아닌 8000쪽 기록에 집중
최근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을 두고 벌어진 국가유산청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립 등 도시 문제와 관련해서 백 대표는 “전문가와 시민, 정치인이 모여 끝장 토론을 하고, 시민이 벽돌 하나라도 관여해서 ‘자기의 기억’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백 대표는 40년간 8000쪽의 친필 노트를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기록 방식을 소개하며 “다빈치의 천재성에 집중하지 말고 그가 남긴 기록에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시청자들도 기록을 통해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백 대표는 명지대학교 건축공학과(학사·석사), 프랑스 발드센건축학교, 말라케건축학교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프랑스의 젊은 건축가상 폴 메이몽, TIFF 어워드 디자인 특별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사무소 등 프랑스에서 10여 년간 활동했습니다.
20년간 80권의 노트를 작성한 백 대표는 수십 년간 직접 쓴 기록을 바탕으로 ‘환상적 생각’(2012), ‘보이지 않는 집’(2015), ‘빛이 이끄는 곳으로’(2024), ‘쓰는 사람’, ‘1945: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이상 2026) 등을 썼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과 백희성 KEAB 대표가 건축과 경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사진 = 뉴스토마토)
이광재 “알타미라의 문화 인간과 MIT의 성당 효과”
한편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인류 최초의 미술작품으로 꼽히는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를 인용해 “먹고 살기도 힘들어도 벽에 낙서하고, 바위와 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게 인간”이라고 강조하고, “기록하는 인간을 통해서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며 “문화 인간, 컬처 사피엔스가 탄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MIT 캠퍼스에 천장이 높은 건물이 있었는데 층고가 높으면 창의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활발해진다는 이론이 있다”며 성당 효과(Cathedral Effect)를 소개하고, “반대로 꼬마들이 넓은 공간 대신 책상 밑이나 좁은 공간을 찾는 이유는 엄마 뱃속에 느낀 친밀감과 유대감을 찾는 심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 총장은 “우리 사회가 각박한 것 같지만 더 진화하려면 한편으로는 질문하는 인간을 키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물을 만들고 도시를 디자인하면 그 공간에서 보다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기호 선임기자 actsk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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