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1기 반도체 생산공장(팹)에 21조원대 추가 투자를 의결하며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수요 급증에 대응해 생산능력(캐파)을 확충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글로벌 메모리 경쟁에서 주도권을 굳히기 위해 투자에 속도를 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도 팹 조기 가동에 속도를 내고 있어 메모리 업계가 장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전략을 재편하는 상황입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공장(팹) 이미지.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지난 25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과 클린룸 5개를 추가로 구축하기 위해 21조6081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투자 기간은 오는 3월1일부터 2030년 12월31일까지입니다. 이에 1기 팹 건설에 투입되는 총 투자액은 약 31조원으로 확대됐습니다.
1기 팹은 총 2개의 골조와 6개의 클린룸(페이즈 1~6)으로 구성됩니다. 각 골조에 3개층의 클린룸이 들어설 계획입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2024년 7월 1기 팹과 클러스터 초기 운영에 필요한 부대시설 건설을 위해 9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골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50층 높이 규모의 공장 외관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입니다.
SK하이닉스는 클린룸 오픈 시점도 내년 5월에서 2월로 3개월 앞당깁니다. SK하이닉스는 생산 역량을 조기에 확충해 고객사의 수요에 맞춰 안정적인 제품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업계 역시 이번 투자에 대해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청주 M15X 공장 클린룸도 조기 오픈하고 장비 반입을 진행해 올해 상반기 중 양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1기 팹을 시작으로 경기 용인시의 약 126만평 부지에 총 4기의 팹을 순차적으로 건설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국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50여곳과 함께 반도체 협력 단지를 구축하는 등 총 60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계적으로 집행할 방침입니다.
삼성도 ‘조기 가동’, 마이크론은 ‘인수’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메모리 수요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건설 중인 공장의 조기 가동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캐파 확보에 병목으로 꼽히는 클린룸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나섰습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처럼 클린룸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쉘 퍼스트’ 전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 5공장(P5)은 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두고 있는데, 클린룸 구축 시기를 약 6개월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에는 4공장(P4)에 내년 1분기까지 월 10~12만장의 10나노급 6세대(1c) D램 생산라인을 추가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비해 생산능력이 떨어지는 마이크론은, 반도체 공장을 인수하며 캐파 확보에 나섰습니다. 지난달에는 대만 반도체 기업 PSMC의 팹을 약 18억달러(약 2조5646억원)에 인수하면서 클린룸을 조기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신규 공장 건설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미 구축된 공장을 인수해 단기간에 캐파를 늘린다는 전략입니다.
신규 공장 건설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싱가포르에 240억달러(약 34조2000억원)원 규모의 메모리 생산 시설을 설립 계획을 밝혔으며, 지난해 말 일본 히로시마에도 96억달러(약 13조7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미국에는 총 1000억달러(약 142조4200억원)를 투입하는 ‘메가팹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도 공급 부족…‘캐파 전쟁’ 계속
이처럼 메모리 3사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는 심각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꼽힙니다. 특히 AI 칩 등에 활용되는 HBM은 내년 계약 물량이 완판될 만큼 주문량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90~95% 상승하고, 낸드플래시 역시 55~60% 인상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제5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행사에서 HBM을 ‘괴물 칩’이라 부르며 생산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이후 차세대 메모리는 맞춤형 HBM(커스텀 HBM) 등 고객사 요구사항이 더 늘어나는 만큼, 반도체 공정은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차세대 첨단 장비 도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더 넓은 면적의 클린룸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투자에서 장비 도입 비용이 별도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AI 산업 발전으로 업계가 구조적인 장기 호황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메모리 업계의 캐파 확보 전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내년 하반기에 들어 차세대 HBM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양산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수요처가 늘어나면서 고객사들의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생산시설의 시험 가동을 준비 중”이라며 “캐파 확대와 함께 선단 공정 전환을 통해 생산 효율을 높여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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