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로봇은 공장에서 배우고, 밭에서 무너진다
제16회 /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7-16 15:15:21 2026-07-16 15:15:21
 
최홍규 연구위원(EBS) / 미디어학 박사
 
같은 사과나무를 아침 여덟 시에 찍은 사진과 낮 열두 시에 찍은 사진은, 로봇의 눈에는 전혀 다른 나무다. 그림자의 각도가 바뀌고 잎사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세기가 달라지는 순간, 조금 전까지 또렷하게 보이던 열매는 로봇의 인식 범위 밖으로 사라진다. 사람의 눈은 이 변화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넘긴다. 로봇에게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피지컬 AI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곳은 공장이었다. 조명은 항상 같은 밝기로 켜져 있고, 바닥은 늘 같은 재질이며, 부품은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모양으로 도착한다. 통제된 조건 안에서 로봇은 정직하게 실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통제라는 전제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현장들이 있다. 밭도 그 여럿 가운데 하나다. 공장의 로봇에게 변수는 드물게 찾아오는 예외지만, 밭의 로봇에게 변수는 매일 아침 새로 주어지는 기본값이다.
 
호주 울런공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 연구팀이 2025년 발표한 논문은 이 격차를 숫자로 확인시켜준다. 연구팀은 사과와 오렌지를 인식하는 로봇의 시각 시스템을 실내와 실외에서 각각 시험했다. 조명이 일정한 실내에서는 인식 정확도가 100%에 달했다. 그러나 햇빛이 직접 내리쬐는 실외로 나가자 정확도는 평균 69.15%까지 떨어졌다. 같은 알고리즘, 같은 로봇, 같은 열매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정도의 낙폭이 나왔다는 것은, 실외 환경의 빛이 인식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임을 뜻한다. 연구팀은 배경의 잡음과 조명의 변화, 열매의 색과 형태가 조건마다 달라지는 현실이 로봇 수확기의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빛에서 끝나지 않는다. 밭의 로봇은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도 날씨에 물어야 한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University of Alberta)와 미국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 연구팀이 2025년 발표한 논문은 이 지점을 다룬다. 캐나다 앨버타주 레스브리지(Lethbridge)는 강수량이 적어 관개 없이는 안정적으로 밀 농사를 짓기 어려운 반건조 지대다.
 
연구팀은 이곳의 밀밭을 대상으로, 관개, 즉 농작물에 필요한 물을 인공적으로 대주는 작업을 AI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설계했다. 이 시스템은 토양의 수분 상태와 함께 그날그날 새로 들어오는 증발산량과 강수 예보를 받아들여, 오늘 밭 전체에 물을 줄지 말지를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구역마다 정확한 물의 양을 나눠 정한다. 어제 세운 계획이 있어도 오늘 아침의 예보가 어제와 달라지면 계산은 처음부터 다시 이뤄진다. 하루 전의 결정이 오늘의 결정을 구속하지 않는 구조다. 이 방식은 기존 방식보다 관개용수를 4.0% 절감하면서도 관개용수이용효율은 6.3% 끌어올렸다. 이 로봇에게는 하늘을 매일 다시 읽는 일이 성능 이전에 존재의 조건인 셈이다.
 
빛을 놓치는 문제와 물때를 놓치는 문제는 서로 다른 실험에서 나왔지만, 뿌리는 같다. 공장의 피지컬 AI는 변수를 통제해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반면 밭의 피지컬 AI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가 곧 실력이 된다. 태양의 각도, 구름의 유무, 어젯밤 내린 비의 양, 오늘 불어올 바람의 세기. 이 모든 것이 로봇의 인식과 판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어느 것도 로봇이 스스로 바꿀 수는 없다. 공장이 로봇에게 어제와 똑같은 하늘을 매일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곳이라면, 밭은 로봇에게 어제와 다른 하늘을 매번 처음 펼쳐놓는 곳이다.
 
정리해보면, 이 차이가 피지컬 AI의 다음 경쟁 구도를 가른다. 지금까지 로봇 공학의 화두가 얼마나 정교한 손과 팔을 만드느냐였다면, 농업 현장에서는 그 손과 팔이 오늘 아침의 햇빛과 어제 내린 비를 얼마나 정확히 헤아리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정교한 하드웨어보다 그 하드웨어를 오늘의 하늘 아래에 맞게 조율하는 감각이 앞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공장에서 익힌 경험을 그대로 옮겨 심을 수 없다. 날씨는 지역마다, 계절마다, 심지어 하루 안에서도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농업에 로봇을 들이려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질문을 남긴다. 이 로봇의 인식률과 관개 알고리즘은 어떤 위도, 어떤 강수량, 어떤 토양에서 검증되었는가. 사양서에 적힌 정확도 수치 하나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로봇이 얼마나 똑똑한지보다, 그 로봇이 우리 밭의 하늘 아래에서 실제로 시험된 적이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장의 로봇은 어제 배운 동작을 오늘 그대로 반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밭의 로봇은 어제 배운 것을 오늘의 하늘 아래에서 다시 검증해야 비로소 하루치의 자격을 얻는다. 아침 여덟 시의 사과나무와 낮 열두 시의 사과나무가 로봇에게 같은 나무로 보이는 날, 우리는 그때서야 피지컬 AI가 실험실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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