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룡부대가 민간인 학살' 베트남정부 공문 첫 확인
'청룡부대가 주민 모아놓고 학살'…베트남 정부 문건 '최초 확인'
'프억빈 학살' 피해자, 7년 만에 한국 국가기관에 '진실규명' 신청
2026-07-30 11:49:09 2026-07-30 14:49:59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73명이 희생된 '프억빈 학살'의 가해 부대를 '한국 해병대 청룡여단 제3대대'로 특정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 문건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방부가 그간 "한국군 전투 사료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입증할 자료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온 상황에서 가해 부대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베트남 정부 문건이 확인됨에 따라 파장이 예상됩니다. 
 
'한국군 학살' 내용 담긴 베트남 정부 문건 최초 확인
 
30일 오전 한베평화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태스크포스(TF) 등은 프억빈 마을 학살 피해자를 대리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프억빈 학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날 민변 진실규명 TF가 작성한 300여쪽 분량의 신청서엔 1993년 베트남 꽝응아이성이 '프억빈·지엔니엔 학살 유적을 국가 유적으로 인정해 달라'면서 베트남 문화정보부 장관에게 보낸 17쪽 공식 문건이 포함됐습니다. 
 
<뉴스토마토>가 신청서와 문건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베트남 정부는 프억빈 학살의 가해 주체를 '남조선군'(한국군)으로 명시하고 소속 부대를 '청룡여단 3대대'(현재 해병대 2사단)로 특정했습니다. 
 
1993년 베트남 꽝응아이성 인민위원회 산하 문화정보체육국이 작성한 프억빈 학살 관련 문건. 문건엔 "청룡여단 제3대대 소속 남조선군 소대가 주민들을 학교 마당에 집결시킨 뒤 수류탄과 기관단총을 난사했다"라는 내용(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이 기록됐다. (자료=한베평화재단 제공)
 
특히 문건엔 "청룡여단 3대대 소속 남조선군 소대가 프억빈 마을 릉동에 주둔하면서 방공호를 샅샅이 뒤져 빈쭝 부락 주민을 폭력으로 강제 연행해 마을 학교 앞마당에 집결시켰다. 집결이 끝나자 수류탄과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했는데, 대상은 전부 부녀자·노인·아동이었다. 잇단 난사 후 수많은 사람이 겹겹이 쓰러지고 학교 마당 방공호 입구에 피가 낭자했다"고 기록됐습니다. 
 
작성 시기는 1993년…증언·자료 종합해 신뢰도 높아
 
해당 문건은 1993년 베트남 꽝응아이성 인민위원회 산하 문화정보체육국이 '프억빈·지엔니엔 학살 유적을 국가 유적으로 인정해 달라'면서 베트남 문화정보부 장관에게 보낸 공식 문서입니다.
 
문건은 국가 유적 상신서와 관련 공문, 유적 이력서, 피해자 명단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에선 베트남전 당시 학살 생존자 팜티프엉씨를 비롯한 피해자·목격자의 구술 자료, 각종 보존 자료, 당시 지역 관계자들이 제공한 자료 등이 종합적으로 활용됐습니다. 때문에 기록의 구체성과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문건에 따르면, 당시 꽝응아이성 문화정보체육국은 프억빈 학살의 희생자를 68명으로 집계했습니다. 이후 2013년 추가 조사를 통해 미처 파악되지 않았던 피해자가 확인되면서, 현재 프억빈 학살 위령비에는 주민 73명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노인과 여성, 어린이였습니다. 73명 중 32명은 13세 이하였습니다.
 
1993년 베트남 꽝응아이성 인민위원회 산하 문화정보체육국이 '프억빈·지엔니엔 학살 유적을 국가 유적으로 인정해 달라'면서 베트남 문화정보부 장관에게 발송한 공식 문서. 해당 문건에선 프억빈 학살의 가해 주체가 '남조선군'(한국군)으로, 소속 부대는 '청룡여단 3대대'(현재 해병대 2사단)로 특정됐다. (사진=한베평화재단)
 
국방부서 만든 한국군 '용안작전' 작전 기록과도 일치
 
문건에서 가해 부대로 지목한 청룡여단 3대대의 행적은 한국군 공식 작전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프억빈 학살이 발생한 1966년 11월 9일은 한국군의 '용안작전(龍眼作戰)'이 시작된 날입니다. 이는 1966년 11월9일부터 27일까지 청룡여단 제2·3·1대대가 순서대로 꽝응아이성 선띤현 일대에서 수행한 베트콩 수색·소탕 작전입니다.
 
국방부가 1979년 발간한 <파월한국군전사>엔 청룡여단이 프억빈(국방부 문서엔 'Phuong Dinh'으로 표기)을 '목표 33'으로 지칭하며, 이동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날 진실규명 신청에는 프억빈 마을 생존 피해자 2명 외에도 하미 마을의 생존 피해자 6명과 유가족 1명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꽝응아이성의 프억빈 학살 피해자가 한국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팜티프엉씨와 보티리엠씨는 앞서 2019년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유가족 103명과 함께 청와대에도 청원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그해 9월 "한국군 전투 사료에서 민간인 학살을 입증할 만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두 사람은 7년 만에 다시 한국 국가기관에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셈입니다. 
 
30일 오전 한베평화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태스크포스(TF) 등이 프억빈 마을 학살 피해자를 대리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프억빈 학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진=뉴스토마토)
 
2기 진화위는 진실규명 '각하'…3기 '재조사' 여부 주목
 
하미 학살 피해 생존자·유가족 중 5명은 2기 진화위 때도 진실규명을 신청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진화위는 '신청인이 외국인이고 사건이 외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각하했습니다. 이들은 각하 처분에 불복해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며, 이번 3기 진화위에 재차 진실규명을 제기했습니다.
 
최근 출범한 3기 진화위는 해당 행정소송 과정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전향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진화위는 지난 9일 대법원에 제출한 준비 서면을 통해 "하미 마을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진실의 규명과 피해 회복을 통한 화해의 구현을 위해선 신속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맡은 임재성 민변 TF단장은 "프억빈 학살은 여러 주체가 남긴 기록과 증언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사건"이라며 "국방부의 <파월한국군전사> 기록과 베트남 현지 주민들의 진술도 일관된다. 여기에 베트남 정부 문건에서도 가해 주체를 한국군으로, 소속 부대를 청룡여단으로 특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기 진화위가 추가로 조사한다면 실제 진실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자료가 확보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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