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다시 부상할 조짐입니다. 금융위가 세종으로 이전하고 금감원까지 일부 기능을 지방으로 옮길 경우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 재배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 등 금융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조직 재편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금융위·금감원 기능 재배치 불가피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이달 25일 중앙부처 이전과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전 대상으로 금융위와 금감원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모두 세종시 이전이 거론되는데요. 금융위 세종행은 꾸준히 제기됐던 터라 내부에서는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입니다.
현행 금융위 설치법 제25조는 금감원의 '주된 사무소는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본원을 서울 밖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금감원은 현재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지 않은 만큼 일반적인 공공기관 이전과는 절차가 다릅니다.
금감원의 소재지를 비롯해 각 기능을 어떻게 재정비할지도 정해야 하는데요. 당국 내부에서는 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사 검사와 조사 등 금감원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전체 조직을 옮기기보다는 일부 기능만 이전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됩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닌 데다 금융위 감독 업무를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 재배치 문제가 따라붙는다"면서 "금융사와 직접 접촉하는 검사·조사 기능을 서울에 남기고 기획·지원 등 일부 조직을 세종 등에 배치하는 이원화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사 본점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는 만큼 검사 인력까지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다시 서울로 출장을 와야 하는 비효율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내부에서 검사 등 현장 기능을 서울에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일부 기능만 서울에 남기는 방식을 택하더라도 조직개편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검사·조사는 서울에서 수행하고 기획이나 지원·감독 관련 조직을 세종으로 옮기더라도 지휘·보고 체계와 인력 배치까지 다시 짜야 합니다.
금융위의 세종 이전까지 현실화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금융위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결정하고 금감원이 검사와 감독을 집행하는 현재 구조에서 금감원 내부 기능까지 서울과 세종으로 나질 경우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준하는 수준의 감독 기능 조정이 불가피해집니다.
당국 다른 관계자는 "금융정책과 감독은 실제 업무에서 명확하게 떼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기관 이전을 추진한다면 업무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과 조직 배치 문제도 함께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준비 중인 중앙행정기관 및 2차 공공기관 이전안에 정부서울청사에 있는 금융위를 세종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모습. (사진=뉴시스)
조직개편 재연에 현안 차질 우려
정부는 지난해 9월 금융위를 사실상 해체해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옛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떼어 별도의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설립하고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금융정책과 감독정책,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감독을 여러 기관으로 나눌 경우 업무 중복과 책임 소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특히 가계부채 관리처럼 정부가 정책 방향을 정하고 금감원이 금융사의 실제 이행 상황을 점검해야 하는 업무는 정책과 감독을 기계적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금감원 직원들의 반발도 거셌습니다. 직원 수백 명이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집회를 잇달아 열었고 노조는 기관 설립 이후 첫 총파업까지 검토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9월25일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정부조직 개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현행 체제를 유지했고 금소원 분리 역시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지방 이전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당국 내부는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지난해에는 금융정책과 감독 집행을 인위적으로 분리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앞세워 개편안을 철회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건 범정부 차원의 부처 이전이라는 점에서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금융위에서는 정부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분위기가 짙은 반면, 금감원에서는 지방 이전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금감원 노조는 지방 이전 반대 탄원서를 취합하고 집회와 파업 등 단체행동까지 검토에 나섰습니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집단행동을 포함해 노조 차원에서 여러 대응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이 다시 조직개편 문제에 휘말릴 경우 정책과 감독 업무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어서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 이전의 취지와 별개로 금융당국의 조직과 기능을 다시 배치하는 작업이 시작되면 상당 기간 내부 역량이 조직 문제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노조들도 지방 이전에 반대하며 공동 행동에 나서는 등 금융권 전반으로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국책은행 지방 이전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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