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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악질경찰’ 이정범 감독, 속죄와 고통의 트라우마
“‘세월호’ 참사, 기성 세대이자 어른으로 ‘속죄’하고 싶었다”
“멋진 액션 아닌 이유? 참사 원인보다 더한 악 없기 때문”
2019-03-27 00:00:00 2019-03-2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아저씨를 통해 전례 없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는 남자를 선보였다. 대중들은 실망했다. 전작의 통쾌감과 함께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었나 보다. 충무로에서 그는 이제 감 떨어진 연출자로 낙인이 찍을 듯싶었다. 흥행 참패란 불명예 타이틀이 손에 쥐어졌다. 배우라면 다르다. 하지만 연출자에겐 쉽게 씻어내기 힘든 멍에였다. 절치부심한단 얘기가 들려왔다. 그래도 내공이 있으니 무언가를 들고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팬들과 배우들은 기다렸다. 이정범 감독은 충무로에서 인간미 넘치는 연출자로 유명하다. 그와 만나본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그 지점을 칭찬한다. 그래서 아저씨가 나왔고 우는 남자도 나왔다. 한 번은 크게 웃었다. 한 번은 크게 울었다. 실제로 그는 눈물이 많기도 하다. 그리고 악질경찰로 호기롭게 돌아왔다. ‘아저씨’ ‘우는 남자에 이어 또 다시 강렬한 제목이다.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앞선 두 작품의 정서를 이어가지만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선이 다르다. 이 영화는 이정범 감독에겐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부채다.
 
이정범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악질경찰언론 시사회 바로 다음 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 감독과 만났다. 개인적으론 9년 전 개봉해 흥행한 아저씨이후의 만남이었다. 무려 9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기억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특유의 인상 좋은 얼굴과 넉넉한 감정이 느껴지는 진중한 배려의 대답은 그가 남성미 물씬 풍기는 영화 전문 연출자란 사실이 의외란 생각을 갖게 한다. 상당히 섬세한 느낌마저 든다. 그의 신작이 악질경찰이란 점도 수긍이 가지만 이채롭기도 한 지점이다.
 
제목만 보시면 아주 강렬한 액션 영화로 착각하실 수도 있죠. 근데 이미 기사를 통해 많이 공개가 됐고. ‘세월호 참사소재가 들어가 있잖아요. 이게 원안이 따로 있는 시나리오였어요. 원안은 두 형사의 얘기였고, 배경이 안산이었죠. 제가 2015년에 안산 단원고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텅빈 교실에 충격을 받았고. 너무 미안했죠. 그 기억이 남아 있었는데. 원안의 배경이 안산이란 점에 가능하겠다란 생각이 들었죠. 원안에서 형사’ ‘안산두 가지만 가져와서 다시 만들었어요.”
 
그는 이 영화에 대해 미안함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이 느낀 기성세대로서의 죄스러움과 부채의식을 담고 싶었단다. 그 얘기는 쓰레기로 불린 악질 경찰을 통해 하고 싶었다. 304명의 죽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기성 세대를 쓰레기로 대변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304명의 고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쓰레기속에는 감독 본인도 담겨 있었다.
 
이정범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단원고에서 느낀 그 감정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더 알아봤죠. 책도 읽고. 봉사 활동에도 나가고. 거기서 살아 남은 분들의 슬픔을 읽었죠. 근데 문제는 내가 과연 그 살아 남은 분들의 슬픔을 담을 수 있을까였어요. 더욱이 아직 진상규명도 끝난 참사가 아닌데. 그저 어른으로서 죄의식을 고백하고 싶었죠. 40대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기성세대로서 이 참사에 대한 죄의식을 담아서 말해 보고 싶었어요. 조심스러웠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쓸 당시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었고 인양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를 한 박근혜 정권 시절이었다. 주변에 세월호 참사를 영화화 한단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서슬퍼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알 수 없는 피해를 당할 수 있던 시기였다. 물론 그 시절 완성이 된다고 해도 투자와 캐스팅조차 거의 불가능 시점이었다.
 
정권의 눈치? 그건 생각도 안 했고 두렵지도 않았어요. 다만 가장 큰 걱정은 유가족 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죠. 우선 제작하는 동안 유가족 분들은 만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분들에게 자칫 다른 상처를 드릴까 봐. 물론 스태프들이 여러 확인 작업이 필요해 유가족 협의회를 만났었고 이 영화가 만들어 진단 건 알고 계셨어요. 세월호를 이용한단 비난도 감수할 수 있고 따귀를 맞는다고 해도 맞을 수 있어요. 다만 유가족 분들에게 상처는 절대 드리지 말자였죠.”
 
이정범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세월호소재가 워낙 강한 인장을 보이기 있기에 악질경찰은 그쪽으로 모든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적으로만 들여다 보면 이정범 감독의 필모그래피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아저씨부터 이어져 온 여성을 구원자이자 구함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다. 일종의 모성애로 바라볼 수도 있을 듯싶다. 여성을 통해 남성이 각성을 하는 대목은 그의 전매특허와 같은 지점이다.
 
이번에도 전소니가 맡은 미나가 그런 역할을 하죠. 맞습니다. 전작의 흐름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지점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저 나름대로 흐름을 변주한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담기는 것 같아요. 다만 이번에는 미나란 인물 자체가 중요했어요. 이번 영화를 보면 어른들이 어른 같지 않잖아요. 반면 유일하게 어른 같은 인물이 어린 미나에요.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아이죠.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탈선 혹은 비행으로 볼 수 있지만 미나야 말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인물이잖아요. 미나의 슬픔을 꼭 관객들이 읽어주길 바랐죠.”
 
놀랍기도 하고 또 우연일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으론 하늘에 있는 단원고 학생들이 이 영화와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절대 인양이 불가능하다고 고집을 피우던 당시 정권의 변명이 우리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악질경찰고사가 있던 날 세월호가 인양됐다. 작업 시작 단 하루만의 일이었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이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정범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참 기억을 더듬어도 놀라웠죠. 그리고 화가 많이 났었어요.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때의 세월호가 올라오면서 영화에선 몇 장면을 편집했어요. 그 중 대표적인 장면이 미나가 수족관을 깨고 수족관에 있던 배를 집어내는 거에요. 미나의 판타지 같은 장면인데, 전 기획할 때부터 꼭 세월호가 올라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배가 올라왔어요. 미련 없이 잘라냈죠. 영화 속 충격보다 실제의 충격이 더 크기에 편집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저도 동의를 했고.”
 
세월호’ ‘기성세대의 죄의식등을 투영됐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전작 아저씨’ ‘우는 남자에서 선보인 스타일리시한 액션은 상당히 자제됐다. 그의 초기작인 열혈남아스타일로 회기한 듯한 느낌이 강했다. ‘악질경찰이란 제목 자체가 갖고 있는 강렬한 인상에 비해 영화 속 액션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강했다. 일종의 개싸움스타일을 확고하게 밀어 붙이고 나갔다.
 
이정범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목이 주는 어떤 선입견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액션 영화로 가면 안 된다는 게 제 확고한 신념이었어요. ‘절대 화려하면 안 된다가 무술감독에게 주문한 지점이었죠. 밑바닥을 살아가는 지질한 인생의 사람이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려야 하잖아요. 그게 화려하게 멋지면 안 된다고 봤죠. 기본적으로 통쾌함을 이끌어 내려면 절대적인 악이 필요했죠. 그런데 저희 영화는 세월호 참사원인보다 더한 악이 없었어요. 이게 맞는 거죠. 아마도 아저씨처럼 만들었다면 전 욕을 처먹어도 싼 놈이에요. 이건 시작점 자체가 다른 영화입니다. 그것만이라도 관객 분들에게 와 닿는다면 좋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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