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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일’ 전도연, 자신과의 약속 어긴 이유
“‘밀양’ 이후 다신 ‘아이 잃은 엄마’ 배역 안 하려고 했다”
“이 영화, 마냥 아파하고 슬퍼하자고 만든 것 절대 아냐”
2019-04-01 00:00:00 2019-04-01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배우 전도연에겐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첫 번째는 천진난만한 순수함이다. ‘ 내 마음의 풍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속 전도연을 기억해 보라. 숙련된 여성의 매력보단 풋풋한 내음의 아이 같은 순수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의 동안 외모도 크게 한 몫 했지만 배우 전도연만이 갖고 있는 아이 같은 깨끗함이 가장 어울리는 이유였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극한의 고통이다. 첫 번째인 순수함의 극단에 치우친 감정이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너는 내 운명’ ‘하녀그리고 그 고통의 끝에 치우친 밀양까지. 그의 얼굴을 통해선 가늠조차 하기 힘든 고통의 회오리가 스크린을 찢고 나온다. 특히나 밀양의 신애를 기억하면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한 깊은 심연이 아픔이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지는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 이유 때문일까. 전도연은 밀양이후 한 가지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하지만 영화 생일시나리오를 읽은 뒤 그 약속을 어길 수 밖에 없었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다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지난 25일 서울 종로 인근에서 전도연과 만났다. 그는 다소 초췌한 얼굴이었다. 인터뷰 며칠 전 열린 생일언론 시사회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생일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과 그들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담담한 시선이 담겨 있다. 전도연은 무서웠단다. 두려웠단다.
 
처음엔 거절했던 작품이에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었어요. 사실 무서웠다고 해야 할까요. 그 안으로 다가설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밀양을 찍을 때의 신애란 캐릭터 생각도 많이 났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다시는 아이 잃은 엄마 역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런데 생일이 왔네요. . 두려웠는데.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과 미덕 그리고 가족 분들을 응원해 드리고 싶었어요.”
 
세월호를 다룬 영화이기에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부담감이 그에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무언의 압박을 했던 것은 아닐까. 여배우이자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의 교류도 있었을 듯싶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이유도 아니었단다. 단지 생일이란 제목의 영화였기에 참여를 결정했다는 것이 가장 맞는 대답일 것 같았다고 한다.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저의 선택에 저 스스로가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명감도 책임감도 아니에요. 이 영화 자체가 그 참사를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강요도 없고 강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아요. 저도 이제는 엄마이다 보니 좀 다르게 본 것 같기도 해요. 영화에서 옆집 우찬 엄마가 오열하는 저를 다가와서 말 없이 안아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이웃이 되주셨으면 좋겠다 싶었죠. 이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이.”
 
본인도 엄마이기에 아이를 잃은 순남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해라기 보단 그것이 어떤 감정일지 가늠해 보려 했다. 이미 2007년 개봉한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을 그려낸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마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자신도 딸을 가진 엄마다. 상상도 하기 싫은 그 감정을 그려내야 했다. ‘신애를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연기였다. 이걸 연기라고 설명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도 컸다.
 
제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죠. 그걸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요.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 정말 괴롭고 힘들고 무서웠죠. 촬영을 하면서도 그게 나 전도연이 느끼는 슬픔인지 순남이 느끼는 슬픔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감독님에게도 그래서 그 슬픔에서 전도연이 보이면 말해 달라고 했어요. 순남을 연기할 때는 한 발 정도 그 안에 담궈서 연기를 했다면 신애는 오롯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 감정에 달려들었었죠.”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두렵고 무서운 감정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전도연이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공포에 떨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죽은 아들 수호의 방에서 수호의 옷을 부여 잡고 통곡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은 슬픔이 스크린을 찢고 나오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칸의 여왕으로 불린 전도연에게도 이 장면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장면을 긴장하고 진지하게 접근했죠. 감독님과 매번 세밀한 부분까지 맞추려고 대화를 하며 촬영에 임했어요. 그럼에도 이 장면은 휴~ 글쎄요. 힘들었다 혹은 두려웠다가 아니라 무서웠어요. 시나리오에는 그 장면을 아파트가 떠내려갈 듯 한 울음이라고 표현돼 있었어요. 그 감정이 대체 뭐지.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을까. 그런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정말 무서웠어요. 그 장면 찍기 바로 직전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계속 절 의심했었으니까요.”
 
생일을 보면 죽은 수호에 대한 슬픔과 미안함도 강하게 다가오지만 의외로 전도연이 연기한 순남의 둘째 딸 예솔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전도연 역시 예솔에 대한 얘기에 고개를 숙였다. 영화에서 예솔은 죽은 오빠 수호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어린이다. 엄마 순남 역시 예솔에게 강요만 한다. 그런 점이 너무 안타깝고 힘들었단다.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정말 마음 아팠어요. 현장에 보민이(예술)가 절 참 많이 따랐어요. ‘도연 엄마라면서. 지금도 마음이 아픈 건 밥을 먹다가 보민이가 반찬 투정하는 장면에서 제가 내 쫓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전 감정 그대로 연기를 했는데 보민이가 좀 많이 놀랐었나 봐요. 보민이도 연기란 걸 당연히 알죠. 그런데도 오케이 사인이 나고 제가 안아 주려고 했는데 안 오더라고요. 너무 미안했죠. 영화로만 봐도 엄마의 슬픔 때문에 그 어린 아이가 감정을 거세 당한 채 살아가잖아요. 너무 슬펐죠.”
 
온통 눈물과 깊은 슬픔으로만 담겨 있는 영화라고 하면 더 안타까울 수 있다. 전도연은 이 영화를 촬영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유가족 시사회를 떠올렸다. 유가족 시사회 때를 기억하면서도 또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그 붉어진 눈시울은 영화의 슬픔을 떠올릴 때와는 달랐다. 감사함과 또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전 연기만 한 거잖아요. 유가족 분들을 만날 용기가 안 났어요. 도대체 그 분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전 유가족 분들 안 뵙고 싶다고 관계자 분들에게 말씀도 드렸었고요. 그런데 유가족 시사회 날 아들 울고 계시던데, 어떤 어머님이 제 손에 손수 수를 놓은 지갑을 쥐어 주시면서 감사하다고 하시는 거에요. 이 분들을 두려워서 안 뵙고 싶다고 한 제가 죄스러웠죠. 누군가는 먼저 좀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그는 마지막으로 영화 생일에 대한 오해와 또 거부감을 느낄 예비 관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아직은 진상 파악이 완료되지 않았기에 이 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한 쪽에선 국민적 트라우마를 안긴 참사이기에 영화로 그 사건을 겪은 유가족을 대면할 용기를 못 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낼 지 어떤 공감을 할지 또 어떤 반대 의견을 낼지. 그건 저의 몫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마냥 아파만 하고 슬퍼만 하자고 만든 영화도 아니에요. 그냥 이 분들이 우리와 살아가는 같은 이웃이고 그 분들이 살아갈 수 있게 작은 응원이라고 해줄 수 있는 그런 영화로만 기억된다면 좋겠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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