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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생충’ 박명훈 “제가 바로 지하실 그 남자 입니다”
영화 속 ‘근세’ 상황과 맞물린 독특한 외모…‘치아까지 연기’ 극찬
“영화 배우 꿈 폐암 투병 아버지 ‘기생충’ 1호 관객, 봉감독 배려”
2019-06-13 00:00:00 2019-06-13 14:16: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해당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핵심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꽁꽁 숨겨 놨던 히든 카드였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신작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에도 국내 언론을 향해 스포일러 자제요청을 직접 부탁한 바 있다. 이 영화에는 아주 강력한 반전에 버금가는 존재가 있었다. 극중 박사장네 집에 기생하고 있던 한 남자혹은 그 분’ ‘지하실 그 사람등으로 불린 그 사람. 영화 시작 이후 중반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던 존재이다. 이 배우가 영화에 등장한 순간부터 장르가 뒤바뀐다. 희극적인 요소가 다분했던 스토리가 단 번에 현실 비극으로 방향이 비틀렸다. 배우 박명훈이란 이름이다. 독립영화 재꽃’ ‘산다를 통해 극소수의 매니아들에게만 낯이 익은 이름이다. 물론 대학로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선 15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메이저가 아닌 분명한 마이너의 배우적 삶을 살아온 그였다. 상업 영화 데뷔작인 기생충으로 그는 단 번에 인생이 역전됐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한 봉준호 감독의 역대급 영화 기생충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박명훈이란 배우였다. 무려 1 6개월 가량 자신의 존재를 숨겨 왔던 이 배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는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됐다.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12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명훈과 만났다. ‘기생충 800만 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이후부터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안됐다. 칸 영화제 공식 상영에서도 모든 배우가 전 세계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는 비춰지지 않았다. 같이 있었지만 같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레드카펫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터를 비롯해 공식 자료 어디에서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많이 받아요. 그런데 오히려 전 너무 짜릿했어요. 이 엄청난 영화의 핵심이자 반전 자체가 저란 존재잖아요. 생각을 해보니 이건 너무 소름이 돋는 거에요. 하하하. 사실 영화 개봉 첫 날 첫 회를 실제 극장에 가서 봤어요. 제가 잠실에 사는 데 그때 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채 극장에 가서 봤죠. 관객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는 데 기분 좋았죠. 진짜 대박은 아무도 절 몰라보셨단 거에요. 하하하.”
 
봉준호 감독은 박명훈에 대해 치아까지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독특한 칭찬을 한 바 있다. 영화 재꽃을 흥미롭게 본 봉 감독은 이 영화의 GV 진행까지 했었다. 그때의 인연이 기생충의 캐스팅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전하는 박명훈이다.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되고 비슷한 시기에 서울 시내 단관 극장에서 옥자가 상영될 즈음 재꽃도 한 창 상영을 하면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었다고.
 
우선 영화 속 외모는 앞니를 붙인 거에요(웃음). 머리도 숱치는 가위로 듬성듬성 빠진 모습을 연출한 거고요. 살도 지금보다 10kg 이상 빠진 상태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길 다니면 몰라 보세요. 피부도 태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사실 재꽃때문에 감독님이 절 캐스팅 해주신 게 아닌가 짐작이 되요. 그때 감독님이 옥자때문에 정말 바쁘신 시기였는데 두 시간 가량 GV를 직접 해주셨어요. 그리고 한 8개월 후에 기생충미팅을 하자고 연락을 주셨죠.”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무명 배우인 박명훈이 봉준호 감독 신작에 오디션도 없이 곧바로 캐스팅이 된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인 셈이다. 본인도 당연히 인정을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캐스팅 제안을 받은 뒤 봉준호 감독의 배려였다고. 촬영 전까지 박명훈이 살고 있는 동네로 여러 차례 찾아와 배역에 대해 또 영화에 대해 상당히 많은 얘기를 나눴단다. 그 대화 속에서 기생충속 박명훈이 연기한 오근세란 인물의 사연과 스토리를 하나 둘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고.
 
정말 편안하게 토론했어요. 감독님 자체가 굉장히 열려 있으세요. ‘근세란 인물이 대체 어떤 사람일까. 제 생각을 정말 많이 물어보셨어요. 박사장네 지하 벙커에 들어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상황을 경험 했을까. 직장은 다녔을까. 어떤 직장일까. 자영업을 했다면 뭘 했을까. 등등 이었죠. 정확한 것은 정말 속이기 쉬운 착한 사람. 누구에게라도 잡혀 먹히기 쉬운 사람.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맞은 거라고 봤어요. 정말 평범함에서 출발했지만 그 평범함이 기이한 상황을 만들고 결국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서 이 사람을 빠트린 거라고 설정했어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소개하면서 시그니쳐가 된 단어가 바로 이상함이다. 그 이상함의 핵심은 바로 박명훈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박명훈이 연기한 오근세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상황이 만들어 낸 기이함에 어쩔 수 없이 빠져 이상한 상황에 길들여 진 인물이었다. 그는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찾아낸 평범함기생충의 핵심으로 잡았단다. 사실 이 영화의 핵심도 거기에 있었다.
 
상황이 만들어 낸 기이함에 길들여 졌다고 봤죠. 누구나 평범하게 사는 걸 원하잖아요. 근세도 그랬겠죠.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고. 평범함이 만들어 낸 기이함과 그 끝에 있는 이상함의 갭이 너무도 크기에 그걸 잡아내야 했어요. 방법은 하나였죠. 지하 공간 세트에 촬영 한 달 전부터 찾아가서 절 집어 넣었어요. 거기서 낮잠도 자보고 멍하니 있어 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진짜로 멍해지고 혼잣말도 튀어나오고. 말도 느려지더라고요. 상황이 만들어 낸 희비극이랄까요.”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박명훈의 오근세기생충에서 진짜 모멘텀을 만들어 낸 순간은 아마도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일 것이다. 지하 벙커에서만 생활하던 그가 딱 한 번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다. 물론 그 지점에서 기생충오근세도 또 박명훈도 돌변하고 이야기도 돌변한다. 완벽한 비극으로 마무리하는 순간이 바로 그 지점이다. 박명훈에게 그리고 오근세에게 그 순간 만큼은 강렬했다.
 
제가 햇볕을 보는 딱 한 번이자 마지막이잖아요. 글쎄요. 뭐랄까. 정확한 것은 그 순간에 근세는 근세가 아닌 거죠. 자신의 아내가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세상 모든 것을 잃게 된 근세잖아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본능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본능만 남아 버린 근세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지상으로 올라오니 그런 호화로운 상황이 펼쳐져 있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 무계획이 계획이란 말. 아마 그 순간이 근세에게 그런 상황이었을 거 같아요. 참 슬픈 순간이죠.”
 
캐스팅 순간부터 개봉 이후 그리고 최근까지 박명훈은 흔한 SNS도 끊었단다. 하다 못해 아내도 몰랐다고. 주변의 친한 지인들도 당연히 몰랐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요청이었을 것이다. 박명훈도 자신의 존재가 이 영화의 핵심이기에 철저한 스포일러 유출에 만전을 기했단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봉준호 감독의 설명 불가능한 배려가 있었다고. 박명훈은 봉테일로 불리는 봉 감독의 타이틀을 자신이 겪은 배려로 설명했다.
 
감독님의 천재적인 연출력을 빗대서 봉테일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진짜 감독님의 디테일은 마음의 배려에요. ‘기생충출연 배우 중에 제가 첫 번째로 영화를 봤어요. 강호 선배님보다 먼저요. 그 이유가 있어요. 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 저희 아버지세요. 폐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신데 아버지 꿈이 예전에 영화 배우셨어요. 감독님이 후반 작업이 거의 끝나고 극소수의 스태프만 참여한 기술 시사에 아버지를 초청해 주셨어요. 이건 정말 대단한 결정이시거든요.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고 감사해 하셨죠. 저 역시 죽어서도 잊지 못할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 박명훈. 사진/엘아이엠엔터테인먼트
 
박명훈은 연극과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어온 배우였다. 5년 전 결혼과 동시에 어떤 변화의 순간을 느끼고 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독립 영화에 잇따라 출연을 거듭해 왔다. ‘기생충이전까지 다섯 작품에 출연했다. 출연작의 해외 영화제 초청으로 영화계 경력에 비해 많은 경험을 쌓기도 했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자신의 상업 영화 데뷔작으로 장식하게 된 엄청난 훈장도 얻게 됐다.
 
사실 걱정도 좀 되기는 해요. ‘기생충에서 저의 역할이 너무 강렬해서 차기작이나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전 이제 시작이잖아요. 어차피 연극과 뮤지컬을 할 때는 그냥 이렇게 연기하면서 생활하면 되지라고 안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도전을 했고, 정말 너무도 행운 같은 기회를 얻어서 기생충에 출연해 상상도 못할 주목을 받았고. 그냥 앞으로도 도전이죠. 도전 외에는 답은 없는 거 같아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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