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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재명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 ‘비스트’ 아닌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두 남자의 호흡 따라가길”
“서사 개연성? 우리 삶이 앞뒤 개연성 따지며 흐르고 있나”
2019-06-25 00:00:00 2019-06-25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동룡이 아빠’ ‘학주’. 벌써 4년이나 지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배우 유재명이다. 우선 유재명은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배우가 됐다. 발군의 코미디 감각을 통해 과장되고 우스꽝스럽지만 분명히 현실적인 그 시절 학생주임 선생님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그 과장 속에서도 또한 디테일속에서도 유재명이 만들어 낸 인물에는 언제나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인간미이다. 그 인간미에는 언제나 유머가 있었다. 물론 독립영화 영주에서 선보인 깊은 내면의 속내도 분명히 존재했다.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에서만 등장한 모습에선 권력의 속성에 길들여 진 비열한 언론인으로 등장하며 인간미를 지워내기도 했다. 역학 3부작의 마지막 명당에선 삶의 곡절을 온 몸으로 받아낸 구용식이란 인물을 유재명이 그려내며 현실감에 방점을 찍었다. 이제 유재명이 그려낼 짐승이 대기한다. 영화 비스트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등장한다. 짐승일지 야수일지 괴물일지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재명의 비스트는 분명히 전무후무한 현실감을 만들어 냈단 점이다.
 
배우 유재명. 사진/NEW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은 질문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답변을 생각했다. ‘비스트한민태의 모습을 아직 지워내지 못한 듯했다. 그의 고민하는 모습에서 실제로 민태가 드리워진 느낌을 받았다. 여러 작품에서 유머스런 연기를 선보인 유재명이지만 실제로는 과묵하다 못해 말수가 거의 없는 고요한 성격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단다.
 
“(웃음) 다른 작품에서의 모습은 제 일이 만들어 낸 모습일 뿐이죠. 사실은 이번 비스트속 민태 같은 성격이랄까. 민태 같은 성격도 아니지만 좀 조용한 성격인 것은 맞아요.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해석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지점이 있고 그걸 재미로 끌어 낼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번 영화는 종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더욱이 민태란 인물의 바닥이 보이질 않았어요. 너무도 처절한 감정의 밑바닥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를 사로 잡은 비스트의 시나리오는 한 마디로 이상했단다. 요즘 그 이상함이란 단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인해 꽤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스트역시 상당히 이상했다. 기묘할 정도로 영화는 관객들의 시선과는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에는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사건의 해결 과정과 그 사건의 범인이 관심의 집중이 돼야 한다. 하지만 비스트는 다른 곳을 바라본다.
 
배우 유재명. 사진/NEW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르죠. 끊임없이 굴리고 또 굴리는 돌덩이처럼.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두 남자의 얘기라고 봤어요.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고.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한수. 반대로 주위 누구와도 교감 못하는 민태. 도대체 두 남자가 왜 그렇게 반목하게 됐을까.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 보단 한수와 민태가 관객과 주고 받는 눈빛과 태도 호흡이 그걸 설명하죠. 동전의 양면 같은 한수와 민태. 그 두 사람의 호흡을 따라가는 얘기에요.”
 
그 호흡의 핵심은 민태와 한수의 반목이다. 민태는 지독하게 한수를 미워한다. 한수는 그런 민태가 지독하게도 껄끄럽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가위로 도려내듯 정확하게 삭제가 됐다. 몇 마디 대사가 그들의 과거를 대신하는 전부가 됐다. 당연하게도 감독의 연출 의도이고 계산이다. 때문에 이들의 감정에만 관객들은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민태를 연기한 유재명의 시선에서 민태의 감정적 밑바탕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한수를 지독하게 꺾어 버리고 싶었을까.
 
글쎄요. 왜 민태가 한수를? 이유가 없죠(웃음). 그런 적 없으세요. 누군가 싫어 본 적. 그냥 싫은 거에요. 물론 영화에선 삭제된 장면이 있죠. 동료였고 라이벌이었고. 때문에 질투심이 있었고. 저 친구에겐 있는 데 내겐 없는 그것에 결핍을 느끼고. 그냥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지독하게 현실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인간 본성에는 분명히 야수성이 있다고 봐요. 그 야수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날 경우 민태 같은 모습이 되고. 또 한수 같은 모습이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 유재명. 사진/NEW
 
굳이 따지고 들자면 한수와 민태는 공격과 수비의 위치를 한 번씩 바꿔서 대결을 한다. 한 사건을 두고 대립을 하지만 그 끝에는 서로를 향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촬영 기간 동안 누군가에 대해 극한의 예민함을 유지한 채 지내야 했던 유재명 입장에선 민태의 심정이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었다. 한수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싫어해야 한다. 이건 사실 인간의 감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정말 다신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 경험이긴 하죠. 너무 힘들었어요. 시나리오 상으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뭐가 이렇게 깊고 어둡지란 생각만 들었어요. 제목이 비스트이고 야수에 버금가는 두 남자의 대결이고. 사실 처음 얘기하는 건데. 전 민태가 너무 불쌍했어요. 배우로서 희한한 경험이었는데. 왜 저렇게 질주하는 걸까. 좀 멈추면 안될까 싶었죠. 어느 순간 감정이 동화가 됐죠.”
 
영화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 지독함의 결정체는 사실 유재명 그리고 그의 상대역인 이성민 두 남자의 처절한 연기였다. 그리고 그 처절함의 동력은 지독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두 남자를 끝까지 밀어 붙인 이정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자리했었다고. 유재명은 연기란 테두리 안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에 우주전까지 겪어 본 베테랑이지만 이정호 감독의 스타일에는 혀를 내둘렀다.
 
배우 유재명. 사진/NEW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다 감독님의 계산이었어요. 우선 저희 현장에선 NG가 없었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두 인물의 감정에 정답이 없단 거죠. 현장에서 감독님이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는 걸 아주 좋아하세요. 유재명이 고민해 만든 게 1번이라면 이정호 감독이 고민한 건 2, 이성민 선배가 고민한 건 3. 그걸 다 찍으세요. 그리고 세 사람이 생각 못한 것 아니면 세 사람이 고민해서 만든 4번이 나오면 그걸 또 찍고. 그래서 테이크가 정말 많았어요. 고생했죠. 그리고 영화를 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렇게 배우들을 밀어 붙인 이유를.”
 
지독하다란 단어는 어느덧 영화 비스트의 상징성이 돼 버린 인터뷰 시간이었다. 유재명은 비스트이상하다고 표현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면서 지독하다란 단어로 해석하는 듯했다. 충분히 일리가 있고 그만의 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도 있었다. 만약 유재명이 영화 비스트의 한민태를 연기한 배우가 아닌 실제 한민태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배우 유재명. 사진/NEW
 
민태는 지독하게 현재만을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만약 제가 실제 민태라면? 글쎄요. 답은 하나였을 것 같아요. ‘내 생각이란 칼로 지금의 현재를 잘라 버리는 거죠. 그것 외에는 민태의 삶은 답은 없다고 확신해요. 그래야 비스트속 감정의 깊이와 어두움이 설명이 될 듯해요. 서사의 개연성? 앞뒤가 맞아야 하는 이유. 우리 삶이 개연성으로 흐르나요? 따지고 보면 우리 삶 자체가 비스트아닌가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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