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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82년생 김지영’ 정유미 “논란 알지만 담담하게 영화로만”
“더하지도 않고 빼지 않아도 될 모습…내가 해야 할 듯 했다”
“여성으로서 차별? 있었지만 아마도 내가 잊어 버린 것 같다”
2019-10-21 10:50:57 2019-10-21 10:50:5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젠 좀 혼자 서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싶었단다. 배우 정유미는 꽤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과 연기력 그리고 흥행성을 두루 검증해 온 출중한 배우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검증의 단계는 더 남아 있는 듯싶었다. 단독 주연으로 출연을 결정한 작품에 투자가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아 엎어진 작품도 있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의 타이틀롤 김지영을 맡는다고 할 때 더욱 의외였다. 우선 동명의 원작 소설은 무려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였다. 무엇보다 이 원작은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에 기름을 부어 버린 작품 중 하나다. 다른 이유를 전부 차치하고서라도 배우로선 부담이 앞설 작품이다. 더욱이 제작 소식이 알려진 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 영화의 제작을 막아 달라는 희대의 청원이 올라가기도 했다. 도대체 ‘82년생 김지영이 무엇이길래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걸까. 배우 정유미는 담담하면서도 다른 이슈로 이 영화의 이슈가 부각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이게 정유미의 김지영이고 김지영의 정유미가 정리한 한 마디다.
 
배우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 숲
 
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뒤 며칠 후 서울 삼청동에서 정유미와 만났다. 상업 영화는 2017년 연상호 감독의 염력속 악역 홍상무이후 2년 만이다. 2년 동안 다른 길을 보지 않고 오롯이 ‘82년생 김지영한 편에만 집중했다. 사실 여러 편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었다. 실제 정유미의 성격이라면 이번 영화는 거절했어야 했단다. 그런데 이건 해야겠다싶었다고.
 
글쎼요. 제가 아직은 둘이 나와서 끌고 가는 작품에 부감이 있나 봐요. 사실 두렵기도 하고. ‘내 깡패 같은 애인그리고 홍상수 감독님 영화 빼곤 모든 작품이 멀티 캐스팅 영화였어요. 그런데 이번 시나리오는 읽자 마자 해야겠다싶었죠. 뭐랄까. 그냥 저 야만 할 것 같았어요. 내가 뭘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아도 되는 모습으로 가면 될 거 같았어요. 가장 자연스러운 정유미를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죠.”
 
우선 워낙 유명한 원작이기에 원작 소설을 읽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원작과 영화의 조금은 다른 결이 어떤 감성으로 다가왔는지도 궁금했다. 이 작품 자체이기도 한 김지영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로서 그가 해석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그대로 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지금의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굳이 생각까지 숨기려 들진 않았다.
 
배우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 숲
 
시나리오를 읽고 원작을 읽었어요. 이슈가 되는 지점도 알고 있었고, 불편해 하는 시각도 알고 있었죠. 원작과 영화가 결말은 좀 다른데 전체적인 톤이나 흐름 그리고 결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봤어요. 영화의 결말은 영화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 아닐까요. 영화의 역할이란 게 최대한 현실의 희망을 판타지로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게 의무라고 봐요. 그런 면에서 결말이 너무 마음이 들어요.”
 
프로 배우이기에 당연한 일이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보편성에 대한 얘기다. 반면 정유미는 보편적인 사람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사는 연예인이고 배우다. 배우라면 겪어 보지 못한 것은 겪은 것처럼 연기하는 가짜에 능숙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극단적으로 보편성이 강조돼 있기에 그것을 연기하는 입장에서 정유미와 같은 프로 배우로서도 쉽지는 않았을 듯싶었다.
 
전 당연히 그런 경험이 없죠. 그런데 이미 제 주변에 너무 많아요. 저희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결혼한 제 친구들. 친동생도 결혼을 했고. 그리고 감독님이 딱 워킹맘이세요(웃음). 정말 모르겠을 때는 시나리오와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감독님이 오전에 아이 학교에 일이 있으면 가셨다고 오후에 현장에 오셔서 촬영을 하시고 그랬죠. 참고할 만한 분이 바로 옆에 있어서 크게 혼란은 없었어요.”
 
배우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 숲
 
가슴 절절한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꽤 많다. 원작의 책은 비교적 드라이한 느낌이 강했다면 영화는 배우들의 감정선이 꽤 많이 녹아 들어서 공감지수가 더 높아졌다. 무엇보다 그런 느낌은 영화 속 김지영의 엄마 오미숙을 연기한 배우 김미경, 그리고 오미숙의 엄마이자 김지영의 외할머니를 연기한 배우 예수정의 존재감이 컸다. 정유미는 김지영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엄마와 외할머니로 빙의된 장면을 찍었을 때의 감정을 전했다.
 
우선 엄마로 빙의 될 때는 김미경 선생님의 연기를 참고한다기 보단 그냥 엄마가 되려고 했어요. ‘사부인, 나도 우리 딸이 보고 싶어요그 대사에서 마음이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죠. 외할머니로 빙의 되는 장면은 사실 예수정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선생님 괜찮으시면 이 장면만 읽어봐 주시겠어요라고. 촬영 전 그걸 녹음하고 그 감정을 느껴 보려고 노력했죠. 그 감정이 잘 녹아 들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궁극적으론 ‘82년생 김지영은 사람에 대한 얘기이고 삶에 대한 얘기라고 부르고 싶었다. 정유미 역시 어느 정도 공감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론 여성에 대한 영화이기고 여성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원작 역시 마찬가지다. 정유미 역시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김지영으로 살아본 느낌 역시 궁금했다. 배우 정유미가 아닌 김지영으로서의 삶. 어땠을까.
 
배우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 숲
 
전 아직 그런 차별의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의 현장도 여느 작품과 비슷했어요. 단 좀 색달랐던 건 제작자도 여성이시고 감독님도 여성이고 함께 하는 배우들의 대부분도 다 여성이에요. 물론 그런데도 특별한 게 없었단 점이 더 감사하죠. 아마도 제 기억 속에서 차별을 경험했지만 잊어 버린 게 아닌 게 싶어요. 제가 그런 걸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하고 싶었나 봐요. 김지영으로서의 삶도 비슷했어요.”
 
분명히 논란이 있을 것이다. 개봉도 하기 전 이미 평점 테러 논란까지 불거질 정도다. 책의 자체가 워낙 인기가 높았지만 그에 따른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책과 달리 더욱 접근성이 가까워진 영화로서의 ‘82년생 김지영은 어떤 식으로든 배우 정유미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고, 담담한 표정으로 이 영화의 감상법을 전했다.
 
배우 정유미. 사진/매니지먼트 숲
 
담담하게, 진짜 딱 그렇게만 봐주세요. 뭔가 마음 속에서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그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그걸 그대로 받아 들이시고 보시면 되지 않을 까요. 저나 공유 오빠 그리고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 모두가 그냥 ‘82년생 김지영은 극장에서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영화이길 바라고 작업을 했어요. 너무 많은 감정들이 담긴 영화이지만 그저 이 영화를 보시는 동안에는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딱 그런 시간이길 바랍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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