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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과도한 부채는 기업을 비루하게 만든다
2020-05-26 06:00:00 2020-05-26 06:00:00
최근 들어 일부 재벌기업이 유동성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모두 한국의 주요 산업별 대표 기업이어서 안타까움과 우려를 자아낸다. 두산중공업과 대한항공이 대표적인 경우다.
 
두산중공업은 한국의 유일한 담수화플랜트 기업이다. 이 업체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모두 2조4000억원이 채권단에서 지원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두산중공업에 1조60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두산중공업은 자금난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채권단은 8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의 2019년 재무상황을 보면 이같은 파격적인 지원의 이유가 설명된다. 별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매출액이 3조7086억원인데 비해 부채는 7조9202억원에 이른다. 부채가 매출의 2배를 넘는 것이다.
 
감읍한 두산그룹은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산매각과 비용 감축 등으로 3조원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대한항공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 가운데 영구채 3000억원을 산은과 수은이 매입하는 방안도 들어있다. 영구채에는 주식전환 권리가 붙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향후 경영권 위협요인이 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금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도리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한항공이 이처럼 국책은행의 지원을 받게 된 직접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항공여객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열악한 재무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지난해 12조291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부채는 22조9399억원에 달한다. 매출보다 10조원 이상 웃돈다.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치명적 재무상태가 선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항공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의 하나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진해운을 잘못 처리한 결과 해운산업 붕괴라는 참사를 겪었다. 이런 흑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두 국책은행이 거액을 선뜻 지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 때문에 우선 1조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지키려면 이번 유상증자에서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지분에 걸맞는 금액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산을 더 매각하는 등 스스로 돕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호텔이나 기내식 사업은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런 것을 움켜쥐고 있어 봐야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전국에서 영화관을 운영하는 CJ그룹의 CJ CGV도 겉보기와 다르다. 하이투자증권의 김민정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CJ CGV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현재 844.5%에 이르렀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 1조464억원에 비해 부채는 그 2배에 가까운 2조479억원을 헤아린다.
 
이 회사는 이같은 부담을 해소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김 연구원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하반기에 실적이 개선되면 부채비율을 500% 수준까지 낮출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아직 알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영화관객 회복과 매출회복은 어렵고 신용등급도 지키기 어렵다. 따라서 추가 자구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과도한 부채가 해롭다는 것은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통해 이미 실감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재벌들은 아직 '부채의존' 경영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빚부터 내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필요하지도 않은 부동산까지 사들이는 등 맹목적으로 자산을 늘리고 본다. 그런 자산은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영정상화를 지연시킨다. 결국은 다시 내놓아야 한다.
 
과도한 부채의 위험성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위기가 터졌을 때 악몽처럼 드러난다. 자신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국가경제를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넣는다. 신천지교회나 이태원클럽처럼 치명적인 '위기 바이러스'의 온상이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걱정된다. 이들 외에 또 어떤 대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지 알 수 없다. 지금 고용도 어려운데 이들 대기업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무모한 '부채경영'에 경종을 크게 울릴 필요가 있다.
 
기업에 부채는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한계를 지키지 않으면 자유를 잃고 비루해진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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