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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축제의 뒷면과학자로 평생을 살았는데, 과학의 날에 대한 추억이 없다. 배고픈 이공계 대학원 시절, 과학의 날엔 특식이 나오지 않았다. 어린이 날엔 어린이가 선물을 받고, 어버이날엔 모든 어버이들이 꽃이라도 받는데, 과학의 날에 과학자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름 모를 정치인과 과학관료들이 모여 사진이나 찍는 날, 그게 과학의 날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4월21일 과학의 날은 박정희가 세운 과학기술처 설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가가 기념일을 정하고 기념하는 일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한국 사회는 과학을 기념하는 날로,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을 이용하던 독재 정권의 정부단체 설립일을 정했다. 즉, '국가에 종속된 과학'이라는 박정희 시대의 국정철학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과학자가 위대한 발견을 한 날도 아니고, 과학이 한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빛나게 된 날도 아니며, 기껏해야 이명박 정권에선 폐지되어 교육과학기술부로 전락했다가, 박근혜 정권에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을 얻었으며, 이젠 과학기술의 하위분류인 '정보통신'을 부처 이름에 버젓히 넣어버린 그런 조직이 설립된 날, 그게 한국 과학의 날이다. 이낙연 총리는,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이 "몇 가지의 '세계 최초'를 이뤘다"며 "이제 우리는 '세계 최고'도 이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학과 기술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인문학 정부의 총리는, 5G 등의 기술적 성취를 예로 들며, 이젠 국가적·사회적 문제들을 과학기술의 눈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인문학 정부 총리의 연설 어디에도, 과학기술인에 대한 존중과 권익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나라에서 과학기술인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의 부품이다. 과기정통부는 2045년을 위한 미래전략을 만들겠다며, '2045 미래전략위원회'를 출범했다. 반도체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정책의 로드맵을 그린다는 전략이다.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빠르고 예측불가능한 기술발전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한다는 건지도 의문이지만, 국가가 과학기술발전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관점은, 박정희 시절의 판박이다. 인문학 정부의 청와대는 아예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 등 3대 분야를 콕 찝어, 범 정부 차원의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가짜학회에 참석한 과기부 장관후보도 잡아내지 못한 인문학 정부가, 실리콘밸리도 장담하지 못하는 미래를 예측해, 겨우 3개 분야에 베팅을 했다. 도박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보통 한탕주의를 선호한다. 이에 질세라, 고용노동부는 무슨 통계자료가 근거인지도 모를 발표에서, 앞으로 10년간 이공계 및 의약계열 과학기술인재 8만명이 부족해진다고 말한다. 지금도 1년에 박사학위자 수 천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도대체 이런 통계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지난 20년간, 상업화된 대학이 만들어낸 학위공장에서, 박사들은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는데도, 여전히 관료주의는 수요공급조차 제대로 예측못하고, 다시금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을 암울한 미래로 내몬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엔 사람이 없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과학의 날은 11월10일이다. 이 날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과학기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고, 사회를 위한 과학의 책임 있는 이용을 강조하는 취지로, 1999년 부다페스트 세계과학회의가 체택한 날이다. 2018년 세계 과학의 날은 '과학은 인권'이라는 주제로 과학계 소수자인 여성에 대한 포용을 비롯해, 과학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인류 모두의 본질적 권리임을 강조했다. 발명왕 김용관이 과학데이를 시작한게 1934년이었다. 식민지 시기에, 과학지식의 보급을 통해 독립의 뜻을 이루려던 소중한 역사의 기록이다. 85년이 지난 지금 과학축제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행사의 민낯은, 여전히 국가주의의 늪에서 허둥대는 수준 낮은 과학대중화 행사일 뿐이다.  무의미한 과학축제의 뒤에서, 오늘도 한국의 연구자는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내야 한다. 지금 연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를 돌보지 않으면서, 허망한 미래예측으로 세금을 낭비하며, 주인공 없는 축제나 여는 정부에게 우리는 속지 않는다. 이공계 대학원은 텅비어가는 중이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미래를 그릴 수는 없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만연한 '직권남용'에 경종 울릴 판례를 기대하며“직권남용의 ‘남용’이다.” ‘성추행 후 보복성 인사권 남용’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측 변호인은 지난 18일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앞서 지난 달 11일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첫 재판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안태근 측은 특히 “직권남용은 판례를 검색해 봐도 60~70년 사이 46건이다. 기소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 와서 유독 많이 기소되는 건 ‘갑자기 공무원들이 직권남용을 많이 해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국정·사법농단’ 연루자들을 비롯해 각종 채용비리나 이재명 경기지사 등 전·현직 고위공직자들이 대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죄명으로 기소된 현상에 대해, 이전엔 처벌하지 않던 행위를 명목으로 여론에 편승하거나 정적을 밀어내기 위해 무리한 기소와 재판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이다. 지난해 우리사회에 ‘검사도 성폭력을 당한다’는 충격을 안기며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지언정 법리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행위에 1심이 실형을 선고해 법리오해가 있다는 항소 이유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53년 제정 이후 벌금형 추가 외엔 지금껏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 조항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1~9 등급을 매기고 철저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공직사회에서 상관의 명령 중 부하직원이 따를 의무는 어디까지이고, 국가정책을 움직이는 고위공직자의 지시 앞에서 ‘같은 급’이 아닌 말단 공무원이 자신의 청렴과 자존심을 지키면서 조직 분위기를 흐리지 않을 정도의 권리행사를 위한 명령 불복종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었을까. 행정직이 상관 집 강아지를 돌봤다거나, 머리가 좋아 장군의 자녀에게 개인과외를 하며 편안하게 군 복무를 마쳤다는 경험담이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변호인이 예로 든 ‘70년대’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기다. 하필 그 시절과 오늘을 비교해준 덕에 왜 요즘 직권남용죄 사건이 많아졌는지가 더 선명해졌다. 그때는 약자가 강자 앞에 ‘감히’ 주장할 수 없었던 의무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시대라는 의미다. ‘국정운영권 남용’으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시절에 했던 일’을 했을 뿐인데 감옥에 가게 돼 억울할 수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예전에 했던 일’을 반복한 건데 갑자기 ‘유죄’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거다. 임 전 차장과 안 전 국장 등 재판을 받는 판검사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판례를 줄줄 외우고 처벌의 전례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법부와 검찰 수뇌부들이 ‘이 정도면 법적으론 문제 될 것 없으리라’며 어련히 잘 피해 갔을 법망 아닌가. 이들을 법정에 세운 건 민심만이 아니라, 유명무실한 줄 알았지만 제정 이후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킨 법 조항의 힘이다.  일선 판검사는 잘 몰랐던 사법부와 검찰조직 ‘꼭대기’ 운영 과정에서 있었던 권리와 월권의 교묘한 경계를 입증해야 하는 검찰로선 부담이다. 전례 없는 판결을 써나갈 재판부도 고민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공직사회에 만연했던 직권남용을 근절하고, 민간까지 영향을 미쳐 상명하복의 직장문화 전반을 선진화 할 판례를 남길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직권남용에 경종을 울릴 전향적 판결을 바라 본다.   최서윤 사회부 기자(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