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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와 개이강윤 언론인"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이보다 더 모욕적인 언사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기억으로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시절 진주의료원폐쇄 등 독단적 도정에 항의하는 지자체 의원에게 홍 지사가 비아냥대며 말했던 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짐작하다시피 뉘앙스는 이러하다. "아무리 그래봐야 대세는 변함없다"거나, "깜냥도 안되는 게 까불고 있다"는 류의 도발이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판하면서 이 말을 차용하기도 했고, 국민의힘 당직자가 처참하게 쪼그라든 자신들 모습을 한탄하듯 '기차를 향해 허탈하게 짖는 개'에 비유한 것도 떠오른다. 기차는 대개 강자나 다수를, 개는 소수 항의자를 지칭하는 걸로 여기고 사용하는 것 같다(물론 그 반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원칙이고 탈법이고 무시하고 내달리는 폭주기관차와, 비리를 감시하고 폭로하는 파수견 같은 경우). 그런데 한 가지 웃지 못할 상황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 기차가 기차로 들리지 않고 개로 들릴 때도 있다는 점과, 그 말을 쓸 입장이나 경우가 아닌데도 써서 빈축을 사기도 한다는 점이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그 지경에 이르면 실소를 넘어 '과연 저 사람의 사고체계가 정상적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배우자와 장모가 범죄혐의로 재판중이거나 피조사중인데도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비판자들이 하도 어이가 없고 답답한 나머지, "자신이 아직도 기차라도 된다는 말이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었다. 들머리에 예로 든 홍 전 지사와 달리, 기차가 '상식과 합리에 근거'해 달린다면, 기차를 이기거나 멈춰세울 개는 없다. 누가 봐도 개인데 자신을 기차로 착각하고,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처럼 무리수에 무리수를 더하며 결국은 민심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두번 세번 망신살 뻗치는 일이자, 스스로 묘 자리 파는 격이다. 우리 정치에 왜 이렇게 삭막하고 어처구니 없는 말이 횡행하게 됐을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상식과 합리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기둥이 훼손된 탓이다. 원칙과 약속을 위배한 결과는 쓰다. 그 쓴 결과 역시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기차가 폭주를 상징한다면 그 기차가 당연히 문제이고, 민심 모른 채 우스꽝스레 홀로 짖어대는 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식과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상식과 원칙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이미 국민들이 오래 전에 제시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 명령을 받드는 것이 공무 담임자들의 의무이자 숙명"이라는 점을 명심하면 된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개가 되는 일이 더 이상은 생기지 않기를, 그 민망함을 더 이상은 보지 않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공화국은 정치가 최소한 시민 수준의 절반 정도라도 따라와 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처참하기까지 한 주문인가. 정치학에서는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돼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우리는 촛불시민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치를 목도하고 있다. 21대 국회의 가장 큰 숙제다. 시민들은 여론 왜곡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는다. 초고속인터넷망과 휴대전화보급률이 압도적 세계 1위인 한국에서 더 이상의 여론조작이나 뉴스유통과정의 장난질은 통하지 않게 됐다. 통신이 발전할수록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지만, 결국은 시민들의 주체적이고도 탁월한 팩트체크에 걸렸고, 유포세력은 부메랑을 맞았다. 그러니 도도한 시대정신을 엔진으로 장착하고 달리는 기차에 멍멍 짖어대는 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구나 그 개가 자신을 기차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필설로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언론은 파수견이어야 하건만, 폭주기관차가 행세를 하고 있다. 검경개혁 못지 않게 언론개혁이 중요한 이유다.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움은 왜 우리들 몫이어야 하는가'라는 탄식을 하지 않는다. 왜? 시민들 잘못이 아니니까. "잘못의 책임은 잘못을 범한 자가 지라"는 게 시민들 명령이다. 이게 전 국민이 함께 받은 초고속 정치교양학습, 즉 촛불광장의 위대한 결과다. 세상 민심 모르고 짖어대는 개로 남기를 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런 개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은 시민들의 불가침 권리다. 그리고 KTX는 너무 빠르고 방음이 제법 잘 돼있어서, 개가 아무리 짖어도 들리지 않는다. 타봐서 다들 아시겠지만.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윤석열, '새 시대 맏형' 자격 있나"과거에는 안 그러셨잖습니까.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셨잖습니까." 원망인 듯 시비조로 들리는 이 말은 지난 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박 의원이 “너무나 윤 총장을 사랑하는 본 의원이 느낄 때 (윤 총장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말이 돌아왔다.  윤 총장은 박 의원을 쳐다봤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전체를 싸잡아 한 말로 들렸다. 불과 1년 전 정부·여당은 윤 총장을 '다시 없을 검찰총장'이라고 치켜세웠다.  윤 총장의 말을 듣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전 '구시대의 막내가 될 것인가, 새시대의 맏형이 될 것인가'를 두고 수없이 고민했다. 집권 후에도 이 고민은 그를 끊임 없이 괴롭혔다. 자신에 대해 워낙 박한 성격인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구시대의 막내'라고 번뇌했을지도 모른다. 국민이, 그리고 촛불정부가 2019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것은 그에게 '새시대 검찰의 맏형' 역할을 맡긴 것이다. 정무감각 없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댄 죄로 수년간 좌천됐던 검사의 한이나 풀어주자고 한 일이 아니다. 윤 총장은 이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을까. 그의 고민이 깊지 않음은 이번 국감 내내 확인됐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그 단면이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윤 총장은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정무직 공무원이다. 전국 검찰을 총괄하는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와 소추가 정치인의 지위에 떨어진다"고 했다.  검찰청법 8조가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 것은 정권의 검찰 수사개입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권을 전횡하는 제왕적 검찰총장을 견제·통제하기 위한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윤 총장의 발언은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지휘·감독'의 관계로 정립하고 있는 명시적 법규정에 반하는 해석으로 보인다.  더구나 추 장관과 각을 세워 국민이 불안한 상황에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아니다. 윤 의원 조차도 장관과 총장의 관계를 물은 것이 아니다. 국감에 참석한 검찰총장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이러니 항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진퇴 문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것도 신중하지 못했다. 임기 동안 소임을 다 하라는 임면권자의 말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절한 메신저'를 통한 지시가 있었다는 발언은 대통령과 검찰총장 사이에 비선라인이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내 뒤에 대통령이 있으니 더이상 흔들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힐 수 있다. 윤 총장이 정부·여당과 계속 갈등을 겪고 있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구시대 검찰의 막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새시대 검찰의 맏형'이기를 거부한다면 임면권자에 대한 불충이고,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추 장관 '지휘'가 불합리하고 위법하더라도 말이다. 임면권자는 이미 한 차례 의중을 보였다. 최기철 법조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