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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용두사미’ 사법농단 1심…14명 중 3명만 유죄

3명만 ‘유죄’로 5년간 재판 일단락

2024-02-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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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유죄를 끝으로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이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고위직 판사 14명 중 3명만이 유죄를 받았습니다.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등 헌정사 초유의 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결과입니다. ‘용두사미’의 결과가 나온 데에는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사법농단’ 재판 5년 만에 1심 마무리…3명 유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판사 김현순 조승우 방윤섭)는 지난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30여개 혐의 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재항고 이유서 작성 지시 △통합진보당 지역구·지방의회의원에 대한 제소 방안 검토 지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이용한 정보 및 자료 수집 지시 등 10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그 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배소와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에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감수해 준 혐의, 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혐의 등은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선고를 끝으로 2017년 불거진 사법농단 사태의 1심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는 총 14명입니다. 이 중 1~2심에서 일부라도 유죄가 인정된 사람은 이 전 차장을 비롯해 3명에 불과합니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달 2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임성근·이태종·신광렬·조의연·성창호·유해용 법관 등 6명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벌금 1500만원)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은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입니다.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과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판부, ‘조직 아닌 ‘개인 일탈’…‘제 식구 감싸기’ 비판
 
이 결과를 두고 ‘시작은 요란, 끝은 초라’한 용두사미로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법농단 사태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부가 조직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법행정권을 광범위하게 남용하고 조직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입니다.
 
7년 전인 2017년 2월 이탄희 전 판사(현 민주당 의원)의 인사 발령 취소를 계기로 촉발됐으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 3대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전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일도 일어났지만, 5년이 넘는 재판 끝에 남은 결론은 그저 ‘개인의 일탈’이라는 겁니다.
 
전날 재판부는 “대부분 ‘임 전 차장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들이거나 예산에 관한 범행에 지나지 않다”,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이를 이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책임을 사법행정 내 서열 3위에 불과한 임 전 차장에게 떠넘긴 겁니다. 
 
심지어 재판부는 ‘사법농단의 책임을 임 전 차장 ‘개인’에게 넘기면서도 “소송만으로도 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죄로 판명된 범죄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범행들에 관한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했던 일종의 사회적인 형벌을 받았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만을 선고했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법원의 결론에 시민사회의 비판은 거셉니다. 참여연대는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사법적 책임이 고작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이어 또다시 법관 출신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도 “사법 독립을 중대하게 훼손한 범죄에 상응하는 엄격한 책임인정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법원 내 발생한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를 일부 법관의 일탈행위 정도로 축소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른 사법농단 재판의 경우 항소와 상고를 이어간 만큼 이 재판 역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법조계 내에서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하급심을 뒤집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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