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사각지대 쿠팡)①숨 돌릴 틈도 사치…'쿠팡맨'의 고달픈 하루
택배 평균보다 많은 380건…쿠팡 기사의 벼랑 노동
1톤 탑차 안에서 이어지는 약 12시간의 '속도 게임'
2025-12-01 16:47:25 2025-12-01 18:04:31
 
[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정오를 갓 넘긴 시간.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복합물류센터 앞에는 이미 1톤 탑차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기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시동을 켠 채 차 문을 열어 두고 상자를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꽤 많아요." 김영수(가명·47)씨가 센터 문을 밀고 들어오며 중얼거렸는데요.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코드 스캐너를 켜고 손에 쥔 상자를 정리했습니다. 기자가 퇴근 시간을 묻자 김씨는 "퇴근은 정해진 게 아니죠. 물량 끝나야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센터 내부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하루 중반 같은 분위기였는데요. 천장은 높지만 공기는 답답했고 통로마다 박스 더미와 카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알림음이 반복해서 울렸고 기사들은 서로 말을 섞을 틈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복합물류센터. (사진= 이지유 기자)
 
"20초만 늦어도 일정 무너져요." 기사 박진호(가명·41)씨의 앱에는 배정 건수 382건이 떠 있었습니다. 언덕과 빌라가 섞인 난도가 높은 지역이었는데요.
 
박씨는 "한 건 1~2분이면 충분할 것 같죠? 그건 말도 안 되고요. 차 대고 호출하고 계단 오르고 사진 인증까지 하면 한 건마다 시간이 계속 밀려요. 20초만 꼬여도 하루가 흔들린다"고 전했습니다. 국내 일반 택배사가 하루 평균 250~300건을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쿠팡 기사들의 물량은 이미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물량이 많아 보인다고 해서 수입이 비례해 크게 오르는 건 아닙니다. 쿠팡 배송 노동자는 급여가 아닌 건당 수수료로 일하는데요. 주간 기준 단가는 보통 600원대 중후반, 일부 지역은 500원대 후반까지 내려가 있기도 합니다. 한 기사는 "예전 쿠팡맨 시절엔 건당 1000원 넘게 받았던 적도 있다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 한다"며 "단가는 떨어지는데 물량은 늘어나니까 겉으로만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에서 배송 상자를 운반 중인 한 기사의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옆 라인의 기사 최성민(가명·45)씨는 "하루 350건을 채운다고 해도 일당은 22만~25만원 남짓하다"며 "여기에 차량 유지비와 유류비, 보험료, 장비비 등 고정비만 월 150만~200만원이 빠져나가며 비수기에는 250만원도 못 벌고 기름값 오르면 바로 타격이 온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측은 "간혹 쿠팡 기사들 중 하루 350건 이상을 배정받아 과로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업계는 쿠팡의 개별 포장 방식 때문에 건수가 많아 보일 뿐, 실제로는 한 집에 여러 상품을 한 번에 배송하며 건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쿠팡 단가가 600원대라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며 고객 택배비 2300원이 전액 기사에게 지급되는 구조는 없고 일반 택배사의 평균 단가도 약 800원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쿠팡 다수의 배송 노동자들은 법적 지위상 특수고용직인데요. 연차도 유급휴무도 명절 수당도 없죠. 최성민씨는 "하루 쉬면 더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아파도 나온다"면서 "대체 기사를 부르면 본인이 비용을 내는데 하루 벌이보다 더 나간다"고 했습니다.
 
이날 센터 곳곳을 둘러봤지만 기사들이 쉴 공간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요. 복도 끝쪽에 책상 하나가 있었지만 상자 더미에 가려 접근도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 '블랙리스트'
 
취재 중 기사들이 가장 조심스러워한 말은 '블랙리스트'였습니다. 이도현(가명·34)씨는 "지연 배송이 반복되거나 고객 항의 들어오면 점수가 떨어진다. 어느 순간 배정량이 확 준다"며 "한 번 크게 지연됐는데 그다음 주부터 물량이 절반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이유는 아무도 안 알려주고 그냥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센터 간 기록이 공유된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 기사는 "다른 캠프로 옮겨도 찍혔다는 게 따라간다고 알고 있다"면서 "다들 그 얘기 쉬쉬하며 알고 있는 분위기인데 블랙 올라가면 아예 출근을 막히는 경우도 있고 해제 절차도 없다. 저는 아는 사람이 도와줘서 풀린 적이 있었는데 보통은 못 빠져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복합 물류센터 내 배송 작업 중인 쿠팡 차량 현장. (사진=이지유 기자)
 
이에 대해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측은 "블랙리스트는 존재할 수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라 회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줄 구조가 아니라는 설명인데요.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시한 '쿠팡CLS 야간 배송 종사자 실태조사'에서 유사한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응답자 1160명 중 66.1%는 쿠팡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고용직 '퀵플렉서'였는데요.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시간 26분, 월 평균 근무 일수는 23.2일. 폭우와 폭설 시에도 '배송 그대로 진행'이 77%에 이르렀습니다. 근무 불이행 시 불이익이 있다는 응답도 48.6%에 달했는데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책임과 리스크가 집중되는 구조가 통계로도 확인된 셈입니다. 
 
퀵플렉스의 실제 얼굴…"책임은 기사에게,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쿠팡 배송은 대부분 '퀵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됩니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행하는 택배노동자들의 전용 번호판 '배넘버' 없이 차량과 면허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진입 장벽은 낮죠. 하지만 그만큼 부담은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가장 큰 불만은 프레시백 회수인데요. 동반 회수는 100원, 단독 회수는 200원. 회수 후에는 직접 스캔과 분류까지 해야 합니다. 기사들은 "시간 많이 잡아먹는데 돈은 거의 안 되고, 그래도 해야 한다. 위에서 계속 압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에서 한 기사가 배송 상자를 운반 중이다. (사진=이지유 기자)
 
또 하나는 이형 화물 문제입니다. 고객에게는 1350~5600원의 이형 추가 요금이 붙지만 기사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일반 배송 단가와 같기 때문인데요.
 
CLS 관계자는 "장시간 노동은 업계 전체의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특수고용 노동자가 연차나 명절 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 지위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유통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내일 도착'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가 됐는데요. 하지만 그 속도는 장시간 노동, 물량 기반 수입, 휴식 부재, 대체 불가 구조, 보이지 않는 평판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기사들은 입을 모읍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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